“여보. 회사 다녀올게”
잠든 남편과 아이가 깰까 봐 살짝 속삭이고는 노트북 가방을 움켜쥔 채 집을 나섰다. 물론 회사로 가지 않는다. 회사는 너무 멀거니와 주말까지 회사에서 일하고 싶진 않다. 아니, 사실 일을 하고 싶지 않다. 이럴 거면 주 5일제는 왜 하는 건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카페 문을 연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노트북을 켜고는 영수증에 적힌 wi fi 비밀번호를 누른다. 커피를 기다리며 아이 생각을 해본다. 남편도 오늘은 좀 쉬어야 할 텐데 아이를 맡긴 게 못내 마음이 무겁다. 가족끼리 맘 편히 밥 먹은 지가 언제더라- 시어머니 손에서 자란 아이가 나의 존재를 잊을까 두렵다. 커피가 나왔다. 다른 방도가 없다. 조금이라도 큰 집으로 이사를 가려면, 아이의 학비를 한 푼이라도 더 모으려면 나의 주말은 마땅히 반납돼야 한다. 노트북을 부릅 바라본다. 어제 까인 기사를 손봐야 한다. 고개를 한 바퀴 돌려 목을 풀고는 심호흡을 해본다-
“여보- 윤이 우는데..”
엇,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가본다.
‘나 회사 다녀올게. 윤이 우유 좀 부탁해’
식탁 위 우유병에 붙은 포스트잇을 본다. 젖병을 열고는 윤이 입에 물렸다. 조용해졌다.
어젯밤에 어떻게 들어왔더라- 골치가 지끈거린다. 속이 너무 쓰리다. 외국인 바이어와의 중요한 미팅에 한국의 술자리 문화를 일러주기 위해 하필 내가 투입됐다. 소맥을 몇 잔을 말았는지.. 1차가 끝나고 술집에서 나왔을 때 내 소맥에 기분이 좋아진 외국인이 이렇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서울의 야경은 너무 뷰티풀 해요. 왜죠? why?”
뭐라 했더라. 지금은 대답할 수 있겠다. “야근 때문이요-”라고.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냉장고를 여는데 ‘깨톡’ 소리가 난다. 심상치 않다. 마지못해 확인해 본다.
대머리 부장
보고서 다시 올릴 것 1
오늘까지! 1
확인 안 해?! 1
고작 그거 마시고 뻗은 거야? 1
알겠습니다-라고 두드리고는 폰을 소파에 던진다. 냉장고에서 생수통을 꺼내 벌컥벌컥 마시고는 천장을 바라보다 주말에도 회사를 나간 아내 얼굴을 떠올려 본다. 아내를 위해, 윤이를 위해. 나의 주말은 마땅히 반납돼야 한다.
“딸랑~”
열심히 두드리는 자판 너머로 한 남자의 실루엣이 아른거린다. 주변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어서 이 기사를 마무리하고 남편과 뜨끈한 쌀국수를 먹을 테다- 더욱 자판의 속도를 올려본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저 남자의 실루엣이 좀 이상하다. 배가 나온 것은 이해가 되는데 등도 불룩한 것이. 잠시 일을 멈추고 바라본다.
배 쪽에는 아이가 안겨져 있고 등에는 누가 봐도 큰 노트북이 들어있을 것 같은 백팩이 매어있다.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우리는 동시에, 외치고 만다.
“여보!”
하-
쌀국수는 꽝! 다음 기회에..
*스터 웍스(stu(dy)+works)
; 스타벅스와 같은 카페에서 업무나 과제를 하는 현대인을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