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림 Jul 31. 2019

싱겁게, 결혼

섹스 마니아인 인혁과 유미는 서로가 서로의 섹스파트너이다. 대체로 서로의 애인이 없을 때, 즉 서로의 섹스파트너가 없을 때 서로가 서로의 섹스파트너가 된다. 이렇게 지낸지는 5년쯤 되었고 이것은 둘만의 비밀이어서 둘의 같은 대학 동창들은 전혀 모르는 일이다. 동창들은 인혁과 유미가 별로 친하지도 않다고 여기고 있고, 이 둘은 대개 애인이 있었으므로 둘 사이를 연결해줘야겠다고 추진한 바도 없었다. 실제로도 둘이 친한지는 모르겠다. 둘의 관계 맺음은 습관이거나 관성이 아닐까.


서로가 서로의 집에 침입하는 열쇠는 ‘나 헤어졌어’라는 문자 한 통으로, 그 문자를 받은 사람이 그 문자를 보낸 사람의 집에 자연스럽게 찾아가 함께 밤을 보낸다. 물론 ‘나 애인 생겼어’라고 하면 그 사람의 집에 침입할 수 없다. 서로는 서로의 섹스 철학에 깊은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사실 이런 세상에 이렇게 마음 맞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궁한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동창 민수의 결혼식을 다녀온 날 밤, 현재 애인이 없는 인혁의 집에 유미가 찾아와 둘은 섹스를 했다. 보통은 섹스를 하고서 말이 없는 둘이었지만 그 날은 유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자신이 결혼을 해도 지금과 같은 관계를 유지하겠냐는 것이었다. 인혁은 결혼이 무슨 상관이냐고 되물었다. 지금까지도 애인이 있는 상태에서 우리는 섹스를 해왔고 애인이 남편이나 부인으로 대체된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냐는 논거를 덧붙였다.


        아이가 있다면 상관이 있지 않을까?


아이가 생겼냐고 인혁이 물었다. 유미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가 있어도 상관은 없지 않으냐, 오히려 상관이라는 것은 네가 집에서 나오기가 어려워질 거라는 사실 정도가 있겠는데 그것은 지금처럼 밤에 만나는 것이 아니면 된다. 이를테면 동창회나 등산모임이나 계모임이나 머 아무튼 너와 내가 만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모임을 만들어서 어떻게든 섹스를 하면 된다. 네가 집에서 나올 수 있는 구실만 잘 만들면 되지 않겠냐.


        아니, 그래서 결혼을 한다고?  


그러고 보니 유미가 결혼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자기 혼자 너무 떠들었다 싶었다. 유미는 자신이 여자인 것이 싫다고 했다. 여자니까 남자인 너보다 걱정이 더 많은 것 아니냐 결혼에 대한 압박도 심하고 임신도 늘 조마조마하다. 너는 그저 섹스를 플레이로만 하지 나는 그러고 싶어도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유미가 웬일인지 오늘따라 말이 많았다. 나는 피임을 철저히 한다. 그거는 우리 사이의 철칙 같은 거 아니냐. 따지듯 물었는데 그런 인혁의 말이 유미의 귀에 닿지가 않는 듯했다.

        

        나 임신했어. 개새꺄.


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인혁은 유미에게 축하한다 해야 할지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를 몰라 끙끙 앓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농담으로


       우리 당분간은 섹스 못 하겠다 그지?


라고 해버렸다. 유미는 황급히 옷을 입고는 인혁의 집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다 멈춰 서서는 인혁을 쳐다봤다.


        나 지금 만나는 사람 여자야.


유미는 떠났고 인혁은 여자와 여자 사이에 아이가 생길 수 있는 확률에 대해 고민했다. 지식인에 물었더니 그것은 먼 미래에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곰곰이 생각을 하던 인혁은 유미에게 문자를 보내고서 침대에 누웠다.  


        ‘나 헤어졌어’


사는건 참 싱겁다는 생각을 인혁이, 했던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고 싶다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