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림 Aug 05. 2022

오늘은

220805


백련교를 발견했어. 아니, 다리 한가운데 걸린 백련교라 적힌 팻말을 발견했어. 백련교라니, 하하.

수차례 방문해서 시선을 뒀던 곳인데 왜 다리의 이름을 이제야 봤을까. 보고 싶은 것만 보는구나-. 그것이 인간.


백련교라는 이름을 보고 나니 홍제천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어. 홍제천 양 가쪽으로 산책로가 있고 그 산책로 한가운데 시냇물이 흐르는데 그 시냇물 한가운데 큼지막한 기둥들이 쿵. 쿵. 자리를 잡고 있지. 그 기둥들의 상단에는 그림이 걸려있어. 어떤 그림은 베를린 거리 풍경, 어떤 그림은 에곤 쉴레의, 누가 봐도 에곤 쉴레의 여인 그림. 기둥 아래 자신의 발목 정도만 잠길 정도의 시냇물 위에서 보호색을 띤 오리 한 마리가 자신의 날갯죽지를 한참 동안 쪼더라고. 문득, 백련교라 이름 지은, 아마도 구청 소속일, 직원의 얼굴을 상상하게 됐어. 왠지 여성일 거 같고, 왠지 또 나이 지긋한 할머니일 거 같더라고. 곱디 고운 마음을 소유한 할머니. 온갖 민원에 절절매시면서도 홍제천 다리 이름을 짓는 자신만의 시간에는 수줍게 웃고 계셨을 것 같은-.


할머니는 아이야. 인생을 한차례 통과한 아이. 새로운 게 없지만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난 할머니가 좋아. 할머니가 다리의 이름을 지었으면 좋겠어. 가능하다면 더 많은 것들의 이름들을, 지어주셨으면 좋겠어. 난, 내 이름이 싫어.

내 이름을 지어줘요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

카페 밖 테이블에서 책을 읽어. 한여름이니 조금 땀이 나지. 하지만 카페 안으로 들어가진 않아. 난 에어컨 바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거든. 아니, 에어컨 바람이 싫다기보다 추운 게 싫어. 여름은 추워. 돈 많은 공간들은.


난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 그는 필시 가난한 자들의 겨울을 모르는 자거든. 한겨울에 뜨거운 보일러 온수가 나오지 않는 세면대에서 고양이 샤워를 해보지 못한 자. 한겨울에- 내 동지가 죽지는 않았나 하며 해도 뜨기 전 새벽, 길바닥에서 밤을 지새운 경찰 버스 앞 싸구려 비닐을 들춰보는 짓을 해본 적 없는 자. 그런 욕망을 가져본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는 자. 그런 사람과 나눌 대화가 뭐가 있겠어.


내가 만날 사람과는 수다를 떨고 싶어. 수다가 행복한 사람-. 수다가 떨고 싶어 얼른 퇴근하고 얼른 눈을 뜨고, 쉴 새 없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싶어. 어떤 문장은 녹음을 하고서, 너무 좋아 계속 들었어요라며 고백을 하겠지. 그런 사람을 위해서라면 바닷속에 잠겨 죽어도 좋으리. 그런 죽음이라면, 그런 죽음을 각오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주세요-

마음 말고요, 심장이요. 심장.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