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05
백련교를 발견했어. 아니, 다리 한가운데 걸린 백련교라 적힌 팻말을 발견했어. 백련교라니, 하하.
수차례 방문해서 시선을 뒀던 곳인데 왜 다리의 이름을 이제야 봤을까. 보고 싶은 것만 보는구나-. 그것이 인간.
백련교라는 이름을 보고 나니 홍제천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어. 홍제천 양 가쪽으로 산책로가 있고 그 산책로 한가운데 시냇물이 흐르는데 그 시냇물 한가운데 큼지막한 기둥들이 쿵. 쿵. 자리를 잡고 있지. 그 기둥들의 상단에는 그림이 걸려있어. 어떤 그림은 베를린 거리 풍경, 어떤 그림은 에곤 쉴레의, 누가 봐도 에곤 쉴레의 여인 그림. 기둥 아래 자신의 발목 정도만 잠길 정도의 시냇물 위에서 보호색을 띤 오리 한 마리가 자신의 날갯죽지를 한참 동안 쪼더라고. 문득, 백련교라 이름 지은, 아마도 구청 소속일, 직원의 얼굴을 상상하게 됐어. 왠지 여성일 거 같고, 왠지 또 나이 지긋한 할머니일 거 같더라고. 곱디 고운 마음을 소유한 할머니. 온갖 민원에 절절매시면서도 홍제천 다리 이름을 짓는 자신만의 시간에는 수줍게 웃고 계셨을 것 같은-.
할머니는 아이야. 인생을 한차례 통과한 아이. 새로운 게 없지만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난 할머니가 좋아. 할머니가 다리의 이름을 지었으면 좋겠어. 가능하다면 더 많은 것들의 이름들을, 지어주셨으면 좋겠어. 난, 내 이름이 싫어.
내 이름을 지어줘요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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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밖 테이블에서 책을 읽어. 한여름이니 조금 땀이 나지. 하지만 카페 안으로 들어가진 않아. 난 에어컨 바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거든. 아니, 에어컨 바람이 싫다기보다 추운 게 싫어. 여름은 추워. 돈 많은 공간들은.
난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 그는 필시 가난한 자들의 겨울을 모르는 자거든. 한겨울에 뜨거운 보일러 온수가 나오지 않는 세면대에서 고양이 샤워를 해보지 못한 자. 한겨울에- 내 동지가 죽지는 않았나 하며 해도 뜨기 전 새벽, 길바닥에서 밤을 지새운 경찰 버스 앞 싸구려 비닐을 들춰보는 짓을 해본 적 없는 자. 그런 욕망을 가져본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는 자. 그런 사람과 나눌 대화가 뭐가 있겠어.
내가 만날 사람과는 수다를 떨고 싶어. 수다가 행복한 사람-. 수다가 떨고 싶어 얼른 퇴근하고 얼른 눈을 뜨고, 쉴 새 없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싶어. 어떤 문장은 녹음을 하고서, 너무 좋아 계속 들었어요라며 고백을 하겠지. 그런 사람을 위해서라면 바닷속에 잠겨 죽어도 좋으리. 그런 죽음이라면, 그런 죽음을 각오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주세요-
마음 말고요, 심장이요. 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