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미술과 법

1_미술과 법의 지난 이야기

1_01. 그것은 표현의 자유와 규범 간 충돌에 관한 이야기다.

by 김두만

1_01. 그것은 표현의 자유와 규범 간 충돌에 관한 이야기다


비록 헌법은 예술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지는 않지만,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판시한 바 있다.

“예술은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유로서 창작 소재, 창작 형태 및 창작 과정 등에 대한 임의로운 결정권을 포함한 모든 예술 창작활동의 자유를 그 내용으로 한다.”(헌법재판소 1993. 5.13, 91헌바17.)

하지만 이러한 예술의 ‘비(非)규정성’은 곧 그 다층적인 성격을 반영한다. 예술의 정의는 언제나 열려 있고,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어쩌면 이러한 논란과 질문 자체가, 예술이 여전히 사회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예술은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던진다.




예로부터 ‘미(美)’를 추구하거나 ‘진리’를 탐구하는 예술 행위는 때로는 국가나 사회로부터 박해와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예술은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된 표현의 행위이자, 공동체와 시대를 반영하는 사회적 징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 표현이 너무 앞서거나, 너무 낯설거나, 너무 직접적일 때 사회는 당황했고, 때로는 억압하거나 통제하고자 했다.

그러나 예술은 침묵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방식으로 되돌아올 뿐이었다.


예로부터 ‘미(美)’를 추구하거나 ‘진리’를 탐구하는 예술 행위는 때로는 국가나 사회로부터 박해와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근대 이후 예술은 자연을 숭배하거나 교회의 권위에 복무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오직 예술 그 자체를 위한 자율성과 독립성을 추구하게 된다.


쇼펜하우어(Schopenhauer)나 니체(Nietzsche)가 “예술과 음악을 통한 고통의 극복”을 말하며 인간 본성과 의지의 관계를 강조했듯, 예술은 국가나 사회의 규율 이전의 현상이며, 법과 언제나 긴장 관계에 놓일 수 있다.



쇼펜하우어와 니체는...

쇼펜하우어는 음악이 우리 마음속 원초적 의지(will)를 그대로 반영하며, 다른 예술보다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보았었다. 따라서 “음악은 고통으로부터 임시적으로 해방시킨다”라고 하며, 음악을 통해 의지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며 지식의 순수한 주체로 머물 수 있다고 설명했었다.

또한, 니체는 "창작이 곧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이라 말하며, 예술창작을 통해 고통을 값진 의미로 전환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위대한 고통의 훈련만이 그간 인류의 향상을 만들어냈다”고까지 했다.



예술은 미적 표현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며,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로 정의되는 ‘자유’의 본질을 품고 있다. 예술은 인간의 순수한 본성을 탐구하는 활동으로, 결코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예술의 ‘자유’에 대한 이해는 고대 철학에서도 두 흐름으로 갈려왔다.


예술은 미적 표현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며,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로 정의되는 ‘자유’의 본질을 품고 있다. 따라서 예술은 인간의 순수한 본성을 탐구하는 활동으로, 결코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예술의 본질은 고대 철학에서도 뚜렷하게 갈라진 시선을 보여줘 왔다.

플라톤은 예술을 ‘모방(미메시스)’이라 보며, 그것이 진리에 대한 그림자에 불과하고 인간의 이성을 흐리는 것으로 보아 예술을 경계했으며, 『국가』에서 시인을 이상국가에서 추방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예술이 인간 정서에 기반해 ‘카타르시스(정화)’를 가능케 한다고 보았고, 인간다움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서 예술의 가치를 인정했다.



이처럼 예술을, 진리를 왜곡하는 환상으로 볼 것인가, 인간을 이해하게 하는 고귀한 모방으로 볼 것인가는 시대를 넘어 반복되어 온 물음이며, 오늘날 우리가 예술의 자유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하는 논의 또한 이러한 철학적 흐름 위에 놓여 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술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인정하는 데에는 이러한 철학적 논의의 연속선상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에 국가는 예술을 바라보는 데 있어 획일적인 기준이 아닌 중립과 관용의 태도를 요구받는다.


이에 따라 “국가가 특정한 활동을 예술로 인정하고, 그에 대해 특별한 보호를 부여하는 일이 자의적이어서는 안 되므로, 더욱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라고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이와 관련해, 헌법재판소는 예술의 자유에 대한 과잉 제한이 위헌이라는 판례를 내린 바 있다.


<관련 판례>

A 씨는 초등학교 주변에서 극장을 인수해 운영하였다. 이는 교육환경 보호를 명분으로 한 법률 조항에 위반되는 행위였고, 이에 대한 위헌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헌법재판소는 해당 조항이 학교의 보건·위생 및 학습환경 보호라는 목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장 운영자의 직업의 자유 및 예술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보아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 판례는 극장이라는 공간의 장소적 의미와 기능에 비추어 볼 때, 그 운영자 역시 ‘예술 표현의 자유’를 누린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예술작품의 보급, 배포 등의 행위 역시 예술 표현의 자유에 포함되며, 음반 제작자나 예술 출판자 또한 예술의 자유로부터 보호받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 참조: 미국 판례의 흐름: 영화와 예술 표현의 자유

미국에서도 예술 표현의 자유는 역사적으로 법적 보호를 받아오지 못했다.


1915년의 Mutual Film Corporation v. Industrial Commission of Ohio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은 만장일치로 영화는 헌법의 보호를 받는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입장은 1952년, Burstyn, Inc. v. Wilson, 343 U.S. 495***판결에서 뒤집혔다.


이른바 ‘기적의 결정’(Miracle Decision)으로 불리는 이 판결은, 검열관이 “신성모독적(sacrilegious)”이라고 판단한 영화의 상영을 금지할 수 있도록 허용한 뉴욕주 교육법 조항이 수정헌법 제1조에 위반된다고 판시했다. 이로써 영화 역시 ‘언론 및 표현의 자유’의 보호 대상에 포함되며, 예술 표현에 대한 헌법적 보호가 본격화되었다.


요약하면, 예술은 본질적으로 법 이전의 현상이며, 사회나 국가의 획일적 기준에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 예술 표현의 자유는 단지 개인의 창작 행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회와 대중에게 어떻게 공유되고 보급되는지에 이르기까지 헌법적 보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이러한 자유는 공공의 질서와 충돌할 때 어떻게 조화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지속해서 성찰해야 할 영역이다.




예술을 국가가 규정할 수 있을까?

한때 예술은 ‘국가의 것’이었다.


고대 궁정예술이 그랬고, 20세기 초 나치 독일이나 소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가가 ‘이것이 예술이다’라고 선언하고,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억압하거나 제거했었던 역사도 있다. 이런 시대에는 예술은 자유로운 표현이 아니라, 체제의 장식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다를까?


헌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예술의 자유도 기본권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그 자유는 무제한이 아니다. 헌법 제21조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타인의 명예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라고 제한을 건다. 예술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1950년대에는 시사만화 한 컷 때문에 벌금형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영화나 음악 같은 예술 표현은 오랫동안 검열 대상이었고, ‘예술도 헌법의 보호를 받는다’라는 기준이 자리 잡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바우사건.JPG 경무대 똥통사건 만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고방우영감 링크<https://archive.much.go.kr/archive/go/search.do>


우리나라의 경우, 1996년, 이른바 ‘1차 영화검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영화법상의 공연윤리위원회 사전심의를 사전 검열로 판단, 전원 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 판결은 영화뿐 아니라 음악, 가요, 그림, 소설 등 모든 예술 표현이 언론·예술·학문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본 최초의 본격적인 판단이었다.


중요한 점은, 예술이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창작자의 내면이 드러나는 표현 행위이기 때문에, 일반적 표현보다 더 깊은 헌법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이 판결 이후 정부는 1997년 공연윤리위원회를 해체하고 자율등급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사전 검열 요소는 일부 남아 있었고, 여러 차례 후속 판결을 통해 제도가 정비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이것은 예술이고, 저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할 수 있는가.



예술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창작자의 내면이 드러나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더욱 깊은 헌법적 보호가 필요하다.


이러한 입장은 비단 우리 헌법재판소만의 해석이 아니다. 예술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의는 국제적으로도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독일 헌법재판소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술은 예술가의 경험과 감정을 형상화하는 자유로운 창조 행위이다. 그것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예술가의 인격이 드러나는 표현이다.”



예술은 형식으로 딱 잘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의미의 덩어리다.


그래서 법적으로도 하나의 고정된 정의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형식적 정의, 실질적 정의, 개방적 정의 등 다양한 개념이 동시에 쓰이고, ‘예술인지 아닌지’ 애매할 땐 “의심스러울 땐 예술로 본다(in dubio pro arte)”라는 원칙을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결국 예술은 국가가 정하는 게 아니다. 예술은 창작자와 사회가 함께 만들어 가는 공간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어떤 예술은 여전히 “이게 왜 예술이냐?”는 비난을 받고, 예술 표현은 언제나 대중과의 온도차, 사회적 괴리를 마주하게 된다.






예술가는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질문을 던진다.

동적평형_1.png 김두만, Dynamic equilibrium (동적 평형), (70x34cm), 2024.


<작품설명>

법은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기 위해, 보이지 않는 긴장 속에서 균형을 조율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동적 평형’이라는 이름의 중립 — 법이 지켜야 할 가장 근본적인 자세다.
그리고 이 중립의 미덕은, 단순한 무감각이나 방관이 아니라, 끊임없는 조율과 응시 속에서 중심을 잡으려는 ‘중용의 태도’와 닿아 있다. 그래서 나는 이 개념을 시각적으로 풀어내 보고자 했다.


〈Dynamic Equilibrium〉 (70x34cm, 2024) 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연의 질서와,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에너지 사이에 ‘DYNAMIC EQUILIBRIUM’이라는 문구를 중심축으로 두고,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으려는 긴장과 균형의 흐름을 담아낸 작업이다.


‘중용’이란, 고요한 정적이 아니라,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 중심을 지키려는 행위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법은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기 위해, 보이지 않는 긴장 속에서 균형을 조율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동적 평형이라는 중립의 자세가 필요해야 할 것이다.


* 이명구, “예술의 자유에 대한 헌법적 보장과 한계”, 법학논총 제17권, 한양대학교 법학연구소, 2000, 13면; P. Häberle, Freiheit der Kunst im Verfassungsstaat, AöR Bd.110, 1985, S.577-619.

** 손상식,“학교 주변 극장 운영은 위법인가”, 동아일보, 2015.01.01.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50101/68865506/1>, (2022.4.30. 방문).

*** 236 U.S. 230 (1915). 이에 대해서는 <https://supreme.justia.com/cases/federal/us/236/230/> 참조.

**** 1958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시사 만화 ‘고바우 영감’으로, 작가 김성환 화백이 당시 이승만 정권을 풍자했다가 즉결심판을 받아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해당 만화에서 “경무대(대통령 관저)에서 똥을 퍼나온다”는 풍자적 장면이 문제가 되었고, 김성환 화백은 곧바로 경찰에 연행되어 재판을 받았다. 결과는 벌금형이었지만, 이는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민감성이 여전히 큰 시기였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한국에서 예술이 자유롭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국가 검열과 예술의 자유가 충돌하던 1950년대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관련문서 참조: https://namu.wiki/w/%EA%B2%BD%EB%AC%B4%EB%8C%80%20%EB%98%A5%ED%86%B5%20%EC%82%AC%EA%B1%B4

***** 1996년 '1차 영화검열 사건' (93헌가13·91헌바10). 1) 사전 검열 금지 원칙 확립: 헌법 제21조 제2항(언론·출판의 자유 및 검열 금지)에 따라, 영화의 제작과 상영은 표현·예술·학문의 자유가 모두 보호되는 행위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2) 공연윤리위원회의 역할: 당시 공연윤리위원회가 영화 심의를 사전 검열로 간주, 헌법 위반이라고 전원일치로 판결했다. .3) “사전 심의 = 검열”의 기준 제시① 행정 주체가, ② 사전 심의하며, ③ 그 결과가 강제력을 가지고 있을 경우 해당 심의는 ‘검열’로 간주한다는 법리 기준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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