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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쏭 Aug 09. 2022

1킬로미터를 달리는 법

How to run 1km

퇴사를 결심할 무렵 나는 인생에서 하고 싶었던 버킷 리스트 중 몇 가지를 같이 시작했다. 퇴사가 그리 특별한 도전이 아닌 아주 자연스러운 변화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그중 하나다 달리기이다. 

학창 시절부터 나는 장거리 달리기를 아주 싫어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운동은 좋아하지만 달리기는 늘 제외된 운동을 했다. 트레이드밀에서 오래 걷기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조금 과장해서 1m만 뛰어도 심장이 밖에서 뛰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숨을 거의 쉴 수가 없고 한 걸음을 떼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는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안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못 한다고 생각했던 무언가를 해낸다면, 다른 종류의 도전을 할 때도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한참을 그랬다. 한걸음 한걸음 떼는 그 순간들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매번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과 싸웠다. 달리는 걸 그만 둘 이유는 백만 가지가 되고 멈추는 건 너무나도 쉬웠다. 그렇게 1킬로미터를 뛰기까지 몇 번을 달리고 서고를 반복했는지 모른다. 


초보에서 시작


도저히 혼자는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쯤 지인을 통해 한 러닝 크루를 알게 되었다. 2-30대로 구성된 힙한 모임은 아니었지만, 4-50대 중년 여성으로 구성된 이 달리기 모임이 나에게는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다. 멤버가 유사한 나이대로 구성되어 있으니 '내가 뒤쳐지진 않겠지?'라는 생각에 가입을 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첫 체력 테스트하는 날 나는 좌절했다. 첫 레벨 테스트는 트랙 8바퀴 3.2km를 돌면서 시간을 체크하는 것이었다. 초반에 전력질주로 선두로 나갔던 나는 거의 꼴찌 그룹으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3.2km를 완주한 시간은 25분을 넘었다. 


"아니!!! 이 아줌마들이 왜 이렇게 잘 달리지?" 마스크를 쓰고 달리는데도 숨이 차 보이지도 않았다. 달리기 고수들을 보면서 부러워했다. 그리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오기 같은 게 발동했다. 그러나 달리는 능력은 오기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나는 그 모임에서 가장 초보 단계의 사람들과 같이 훈련을 시작했다. 운동을 전공한 남편은 한 마디 더 거들었다. "내가 전공자로 이야기해줄게. 원래 맨 몸으로 하는 운동일수록 타고난 신체능력을 극복하지 못해! 당신은 달리기와는 거리가 먼 몸을 타고난 거야!" 정말 초보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느낀 이 '초보'의 느낌이 딱히 좋지는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기 어려울 것 같고, 숨은 턱까지 차 오르고 딱 신입사원 때 회사 일을 할 때 벅찬 그 느낌이었다. 


나의 스타트업 이민 초창기에 얼마 동안은 이 느낌과 비슷했다. 내가 그동안 배우고 익숙하게 일을 처리한 방식들이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고 전혀 다른 세상에서 익숙하지 않은 도구들로 싸워야 하는 게 딱 초보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동시에 내가 다시 할 수 있다는 아드레날린 같은 것도 나왔다. 그때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던 나의 모습을 투영해서 많이 생각했다. 


맞아!! 나 처음에 1 킬로미터도 못 뛰었잖아! 스타트업 세계에 '적응'이란 걸 해 내야 '성공'을 말할 수 있어. 일단 적응을 해야 해! 달리기라는 새로운 세상에 내 몸을 맞추는 것처럼!


걷뛰 전략


내가 1 킬로미터도 채 달리지 못하고 걷다 달리다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코치가 다가왔다. 그리고 한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지금부터 1킬로미터를 나누어서 걷기와 뛰기를 반복하라고 했다. 오롯이 달리는 건 그다음 단계라고 말이다. 걷뛰 전략은 아주 심플하다. 1킬로미터를 100미터 단위로 나누어서 걷기와 뛰기를 반복한다. 1단계는 900 미터를 걷고 100m를 뛴다. 2단계는 800미터를 걷고 200미터를 뛴다. 이렇게 100미터를 걷고 900미터 뛰기를 완성하면 자연스럽게 1 킬로미터를 완주할 수 있다.


"말도 안 돼 이게 된다고!!"


이 작은 성공 경험이 나를 계속 뛰게 했다. 결국 나는 이 크루들과 10킬로미터를 완주했다. 어느 순간 나도 마크스를 쓰고 숨을 헐떡이지 않는 그 멤버들 사이에서 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처음 하는 일은 누구나 서툴다. 잘 되지 않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경력이 있는 우리는 시간이 없고 팔리는 '얼굴'이 있기 때문에 그 잘 되지 않음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이직하거나 직업을 바꾼 당신은 다시 초보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힘을 적당이 빼고 걷뛰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적응하기 전에 스스로 포기할 수 있다. 


1킬로미터를 10번 달리면 10킬로미터가 되는 이 간단한 산수를 너무나 쉽게 잊고 산다. 


단거리 목표


커리어의 변화에 있어서도 1킬로미터에 집중해야 한다. 내가 1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다면, 조금씩 늘리는 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멀리 내다 보고 견고한 어떤 목표를 세울 수 있다면 가장 좋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러기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럼 안 된다고 포기해야 할까?  억지로라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할까?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참 많이 들고 가령 그 목표가 잘 못 된다면 나는 헤어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떠나고는 싶지만, 바꾸고는 싶지만 그 목표 지점이 명확하지 않다면,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 아니라 1킬로미터 앞의 목표를 세우기를 추천한다. 그 1킬로미터가 모이면 10킬로미터가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읽은 [일하는 마음]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비슷한 생각이 적혀 있어서 깜짝 놀랐다. 저자도 달리기와 관련해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첫 번째 이직을 준비하던 중 저자는 직장인이 아닌 그 무언가로 살고 싶었는데 100% 바꾸기는 어려워서 자신만의 1킬로미터 트랙을 만들고 어떻게 다르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것들로 채웠다고 한다. 


단거리 목표가 채워지면 장거리 목표는 자연스럽게 맞춰진다. 

중요한 건 방향만 맞추어 가면 된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변화의 순간을 제공하거나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를 바랐다. 그럼 나는 몇 번의 1킬로미터를 뛰었을까? 이직 후 1년 3개월 정도가 시간이 지났으니 10번 정도는 뛴 느낌이다. 여전히 나는 모자란 부분이 많고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관점에서는 의미 있는 시작을 한 것 같다.  


여러분의 1킬로미터는 어떻게 만들어 갈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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