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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Mar 12. 2023

짝퉁을 입으면 짝퉁 인생이 되기 쉽다

명품을 입는다고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짝퉁을 입으면 거짓 인생을 살기 쉽다.


사람들이 짝퉁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록 짝퉁이라도 명품의 이미지를 차용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긍정적 신호를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보내기 위함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행동을 '자기 시그널링(self-signaling)'라고 한다. 자기 시그널링이란 자신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를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 신호를 감추고 긍정적 신호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것이 자명하므로 자기 시그널링은 주로 긍정적 신호 보내기에 집중하는 사회적 전략이다.


그런데, 자기 내면에 있는 긍정성은 자기 자신은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알기 어렵다. 이럴 때, 명품은 타인이 쉽게 알아차리게 만드는 좋은 신호 전달 매개가 된다. '나는 세련미와 교양이 넘치는 사람이에요.' 라고  외치고 다닐 필요 없이 명품 옷을 입고, 럭셔리 시계를 차고, 고급차를 모는 것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자기 시그널링의 대표적 사례가 십수년 전의 현대자동차 그랜저 광고다. 물론, 그랜저는 제네시스가 있기 때문에 현대차 내에서도 명품급은 아니지만, 이 광고는 그랜저가 참 괜찮은 차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자기 시그널링이라는 심리적 기법을 잘 녹여낸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출처: 현대자동차


그런데, 자기 시그널링에 사용하는 물건이 진품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품과 가품을 구분하는 구체적 지식이 부족하다. 실제로 상급 가품의 경우, 전문가도 육안으로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다. 그러니, 명품을 활용한 자기 시그널링 과정에서 타인이 판별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 하지만, 자기 자신은 분명히 알고 있다. 짝퉁을 입고 있는 나는 진실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출처: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108025858g



결국, 짝퉁은 타인에게 보내는 시그널은 긍정적일 수 있으나,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시그널은 부정적이다. 이런 모순된 신호가 인간의 내면에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무엇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누군가를 속이고 있다는 감정, 즉, 도덕성엔 부정적 효과가 명백하다는 점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조직심리학자인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프란체스코 지노(Francesca Gino) 교수 등은 재미있는 실험을 진행했다.

지노 교수 등의 연구진은 여대생들을 모집해 명품 끌로에 선글라스를 쓰게 했는데, 그 중 일부에게는 모조품이라는 정보를 전달했다. 대부분의 심리학 실험 설계가 그렇듯 사실, 여대생들이 착용한 선글라스는 모두 진품이었다. 이후, 학생들은 렌즈의 선명도나 디자인의 멋스러움 등 선글라스의 질을 평가하는 마케팅 연구에 참여했고, 이어 선글라스를 그대로 착용한 상태에서 곧바로 후속 실험에 들어갔다.



출처: Gino, F., Norton, M. I., & Ariely, D. (2010). The counterfeit self: The deceptive costs of faking it. Psychological science, 21(5), 712-720.


후속 실험은 학생들이 난수표와 같은 숫자표 중에서 숫자의 합이 10인 숫자를 찾는 것이었는데, 정답 문항당 50센트를 받는다는 안내도 함께 받았다. 5분 동안 문제를 푼 다음, 제출한 답안에 대해 정답을 확인하는 절차 없이 학생들 스스로 몇 문제를 맞췄는지 보고하면 상금은 즉시 지급되었다. 그런데, 이런 류의 문제를 제한된 시간 내에 많이 풀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아래 예문을 풀어 보자. 정답은 이어지는 글 이후에 공개하겠다.


예문)


아무리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라도 해도 5분 동안 20문항 중에 평균 6~7개의 정답을 맞추는 난이도였지만, 짝퉁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고 믿었던 학생들은 달랐다. 무려 71%가 부정을 저질렀다. 반면에, 진품을 착용한 학생들이 부정행위를 한 비율은 30%에 불과했다. (위 예문에서 정답은 6.46과 3.54다.)


사람들은 짝퉁을 착용하면 거짓된 자아를 보이기 쉽다. 그래서 이 논문이 제목이 the counterfeit self다. 실험에서 하나의 결론은 명백했지만, 하나는 불분명했다. 짝퉁 착용이 자기 스스로에게 진실되지 못한 사람이라는 부정적 신호를 보낸다는 점은 명백했다. 그런데, 진품을 쓴다고 진실된 사람이라는 신호가 보내는지는 불분명했다.


과연, 짝퉁이 부정적 신호를 유발한 효과가 컸을까, 진품의 긍정적 신호 효과가 컸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지노 교수 등은 100명의 여대생을 새로 모집했다. 이번엔 진품 그룹, 가품 그룹(실제론 진품) 외에 선글라스에 대해 어떤 정보도 받지 않는 통제 집단을 추가했다. 이들 모두는 선글라스의 질을 평가하는 가짜 목적의 마케팅 조사에 참여한 다음, 바로 수학 문제 풀기에 들어갔다.


짝퉁 선글라스를 착용한다고 믿었던 가품 그룹의 경우 부정행위를 한 비율은 70%, 진품 그룹은 30%에 불과했다. 이전 실험과 같은 결과다. 그런데, 선글라스에 관한 정보를 받지 않은 통제 그룹의 경우, 부정 행위 비율은 42%였다. 진품 그룹과 비교하면 12%포인트 차를 보이기 때문에 겉보기엔 차이가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통계적으로는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었다. 결국, 진품을 착용하면, 더 정직해진다는 결과는 얻지 못했던 것이다.


진품 착용이 우리의 진정성이나 진실됨을 높여주지는 못하지만, 짝퉁을 쓰는 것은 거짓됨을 높이기엔 충분하다. 명품을 위조한 짝퉁 뿐만 아니라, 학력이나 경력 위조, 논문 표절 등 짝퉁에 관대한 사회는 우리 안의 거짓된 자아를 조장하는 최적의 환경이다. 심지어, 삶의 많은 영역을 위조한 사람이 진짜 명품을 두르고 나타나 환호를 받기도 한다. 이 사람이 사용하는 명품은 거짓을 진실로 포장하는 전형적인 시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행위가 얼마나 치졸한 것인지 본인만이 알 뿐,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명품과 짝퉁을 구분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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