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율이 가장 높은 연차는 ‘1년차 이하’(48.6%)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2년차(21.7%), ▲3년차(14.6%), ▲5년차(5.1%) 등의 순으로, 연차가 낮을수록 퇴사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었다. 특히, 1년차 이하의 최근 1년 간 평균 퇴사율은 27.8%로 집계됐으며, 이는 전체 직원의 평균 퇴사율 보다 9.9%p 높은 수치였다. 퇴사자들이 밝힌 퇴사 사유로는 ▲이직(41.7%, 복수응답), ▲‘업무 불만’(28.1%), ▲‘연봉 불만’(26.2%), ▲‘잦은 야근 등 워라밸 불가’(15.4%), ▲‘복리후생 부족’(14.8%), ▲‘상사와의 갈등’(14.6%) 등이 많았다(출처: https://www.outsourci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85403).
최근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의 1년 평균 퇴사율은 20%에 이른다. 이른바 '대퇴사의 시대(great resignation)'다. 대퇴사의 시대가 나타난 가장 큰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직장인들이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주변의 죽음을 지켜 보면서 의미 있는 일을 찾고자 진로를 바꾸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진단하고 있다. 대퇴사의 시대에 이어 '조용한 사직(quite quitting)'도 유행이다. 조용한 사직은 실제로 퇴사는 하지 않았지만, 직장에서 최소한의 업무만 하고 적극적으로 몰입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대퇴사의 시대와 조용한 사직은 미국에서 시작된 용어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진행 중이다.
위 기사에서 보듯, 우리나라 기업들도 높은 퇴사율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 중 입사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신입사원이나 신규 입사자의 퇴사율이 가장 높다. 이들의 퇴사 이유를 살펴 보면, 퇴사 사유 1위로 응답한 '이직'은 퇴사의 대안이지 퇴사를 결심한 원인으로 보긴 어렵기 때문에,'업무 불만'이 주요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업무 불만은 업무량과 같은 양적 특성과 업무 적합도와 같은 질적 특성을 포괄한 개념인데, 중소기업의 직원들은 업무량에 관한 불만이 크고, 대기업의 직원들은 자신의 비전과 업무가 맞지 않음을 호소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와 같은 현상을 보고 해법을 찾는다면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조직 구성원 개개인이 원하는 커리어를 조직에서 지원해 업무 만족도를 높인다면 퇴사율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개인 경력개발을 지원하는 것은 주요 퇴사 사유인 업무 불만을 줄여 퇴사율을 낮추는 좋은 대안처럼 여겨질 수 있다.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하면 업무 몰입도와 업무 만족도가 높아질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직 연구를 통해서 본 진실은 이러한 예측과 전혀 다르다. 킹스 칼리지 런던 비즈니스 스쿨 조직 행동학 교수인 비브케 도덴(Wiebke Doden) 박사 등의 연구진은 개인 경력 개발보다 조직 내 경력 개발 시스템이 퇴사율을 낮추는 데 더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도덴 박사 등은 다국적 기업의 본사가 많은 스위스의 대기업과 중견 기업의 HR 매니저에게 컨택해 602명의 신규 입사자 자료를 받아 분석했다. 연구자들은 개인 경력개발을 중시하는 직원들이 조직 경력개발 위주의 직원들에 비해 직무 만족도나 퇴사 의도가 다른지를 분석하기 위해 조사 대상 기업들의 신규 입사자들의 경력개발 성향을 확인했다. 신규 입사자들 중 일부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경력개발을 하려는 의지가 강했고(self-centered career orientations) 나머지 사람들은 조직 내 경력개발 시스템을 따르는 경향이 강했다(organization-centered orientations).
연구자들은 이들의 업무 만족도와 퇴사 의도를 일회성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라,처음 입사했을 때, 6주 후, 3개월 후, 6개월 후, 1년 후 이렇게 총 다섯 번에 걸쳐 직무 만족도(job satisfaction)와 이직의도(turnover intention) 추이를 종단적으로 분석했다.
먼저 직무 만족도 추이를 살펴 보자.
출처: Doden, W., Pfrombeck, J., & Grote, G. (2023). Are “job hoppers” trapped in hedonic treadmills? Effects of career orientations on newcomers' attitude trajectories. Journal of Organizational Behavior, 44(1), 64-83.
위의 그래프에서 실선은 조직 중심의 경력개발에 대한 선호가 높은 그룹이고, 점선은 개인 중심의 경력개발의 선호가 높은 그룹이다. 자신이 원하는 일 중심으로 경력개발을 하는 것이 더 높은 직무 만족을 보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두 그룹의 차이가 거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논문의 제목이 "Are “job hoppers” trapped in hedonic treadmills?"다. 많은 직장인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직장을 옮기지만, 일종의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s)' 안에서만 돌고 도는 것이다. 쾌락의 쳇바퀴 안에서 직장인들은 직장 생활에서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끊임 없이 추구해 이직을 하지만,조직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 비해 더 만족스럽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두 그룹의 이직 의도는 어땠을까?
개인 중심의 경력개발 의지가 강한 사람들의 이직 의도는 조직 중심의 경력개발 그룹에 비해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졌다. 현 직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하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시간이 지날수록 조바심이 커진다. 특히 현재가 괴로울수록 현직장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면 분명 더 만족스러울 것이라는 막연한기대가 커지는 것을 막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개인 중심의 경력개발 그룹이 현 직장에서는 조직 중심의 경력개발 그룹과 직무 만족도 측면에서 유사할 수 있지만, 만약이전 직장과 비교한다면, 훨씬 더 행복해진 것은 아닐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에 새로운 직장에 적응할 때는 개인 중심 경력개발 그룹과 조직 중심 경력개발 그룹의 차이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전 직장과 비교한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옮긴 개인 중심의 경력개발 그룹의 만족도가 조직 중심의 경력개발 그룹에 비해 크게 높지 않을까?
그래서 연구진들은 이전 직장과 현 직장에서의 직무 만족도 변화 추이를 연구했다.
개인 중심의 경력개발 그룹이 이전 직장에서 낮은 직무 만족도를 보이다가 이직 초기에 직무 만족도가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1년여 시간이 지나니 조직 중심의 경력개발 그룹과의 만족도 차이가 없어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헤매는 것은 쾌락의 쳇바퀴 내에서 달리는 일이라는 사실이 다시 증명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일에 대한 집착이 현실의 만족감을 지속적으로 높일 것으로 착각한다. 현실의 만족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일을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개 어떤 일을 좋아해서 잘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하고 꾸준히 해야 잘할 수 있다. 물론, 무턱대고 꾸준히 열심히 하는 것보다 목표를 정하고 좋은 코치의 지도와 피드백을 받는 과정(deliberate practice)이 있다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HR은 개인 중심의 경력개발 지향성이 높은 직원들이 새로운 조직으로 이직한 첫 해 동안, 직무 만족도는 감소하고 이직 의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이들에게 맞춤형 경력개발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현실을 직시하도록 해 개인 경력개발에 대한 높은 기대를 낮추고 조직 경력개발 시스템 내로 유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조직 내 경력개발의 매력이 높다는 증거와 실증 사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경영층이 경력개발제도 개선에 앞장 서고, 현장의 리더가 당장의 업무 성과보다 경력 개발에 더 높은 우선 순위를 부여할 수 있어야 대퇴사 시대와 조용한 이직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