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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Feb 02. 2023

내 잘못이 아닌데도 사과를 해야 할까?

세계적 학술지에서 찾은 직장생활 꿀팁

 당신은 회사에서 향후 경영계획에 관한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 중이다. 관련 통계 장표는 발표 직전에 다른 팀원이 작성해서 급히 포함되었고, 당신은 해당 통계를 잠깐 인용해서 발표할 계획이다. 그러나 담당 임원은 통계의 오류를 발견하고 다그치기 시작한다. 잘못된 통계 자료를 제공한 것은 당신 탓이 아니지만, 현재 프레젠테이션을 책임지는 유일한 사람은 당신이다. 이 경우, 본인 잘못이 아닌데도 임원에게 사과를 해야할까? 사과하는 순간, 프레젠테이션의 책임자인 당신은 앞으로 어떤 커다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는가?


최근 사과(apology)와 관련한 아주 흥미로운 연구가 Journal of Organizational Behavior에 게재되었다. 상하이 교통대학 안타이 비즈니스 스쿨의  시커 리(Shike Li) 교수 등이 발표한 "When apologizing hurts: Felt transgression and restoration efforts" 제목의 논문이다. 논문의 제목처럼 사과가 상처가 될 때가 있다. 모든 사과가 아니라 뭔가 잘못된 사과일 때가 그렇다. 그런데, 이처럼 잘못된 사과로 인해 상처받는 쪽이 사과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사과를 하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이 이 논문의 백미다. 언제 그럴까? 자신이 잘못한 일이 아닌데도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이 그렇다. 


그렇다면, 자신의 과오가 느껴지지 않은데도 하는 사과는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까?


이전까지 사과에 관한 심리학의 많은 연구들은 사과가 대인관계 갈등을 해결하고 피해자의 용서와 당사자 간의 화해를 이끌어내는 것과 같은 긍정적인 영향력을 증명해 왔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다소 억울하지만 잘못을 저지른 누군가를 대신해 사과하는 것 역시, 잘못을 저지른 사람과의 신뢰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감수할 가치가 있다. 그런데, 리 교수 등의 연구진은 직장이라는 환경에서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리 교수는 사람들이 직장에서 사과할 때는 일반적인 사회 맥락에서 사과할 때와는 다른 심리적 반응과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직장에서 사과는 말로 주고 받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후속 대책까지 마무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직장에서 만일 잘못한 일이 없이 사과해야 한다면 책임의 범위가 매우 커질 수 있다. 


리 교수의 연구를 보면, 직장에서 사람들은 잘못한 일이 없는데 사과해야 할 때, 가장 눈에 띄는 심리적 반응은 분노(anger)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분노를 크게 느낄수록 개선 노력을 하지 않았다. 결국 잘못한 일이 없는데 사과해야 하는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조직 성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출처: Li, S., Radivojevic, I., Jain, K., & Conrad, C. (2022). When apologizing hurts: Felt transgression and restoration efforts. Journal of Organizational Behavior. 



논문의 세부적인 내용을 몇 가지 더 살펴보자. 조직에서 사과하는 일은 남성이 더 많았을까, 아니면 여성이 더 많았을까? 연구진은 남성이 사과할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남녀의 차이가 발생하지 않았다. 다음은, 친밀한 사이에서 하는 사과와 친밀도가 떨어진 사람에게 하는 사과 사이에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사과를 받는 사람이 친밀한 관계라면 잘못한 일이 없는 상황에서 사과해야 할 때조차도, 오히려 분노가 줄고 문제해결이나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은 더 열심이었다. 마지막으로 직급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은 어떤 차이를 보였을까?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직급이 높은 사람들은 잘못한 일을 사과할 때, 죄책감은 더 크게 느꼈지만 문제해결을 위한 회복 노력은 직급이 낮은 사람들에 비해 덜했다. 이점은 시사점이 크다. 왜냐면, 직급이 높을수록 문제해결을 위한 역량과 자원이 더 많기 때문이다. 직급이 높은 사람들이 더 많은 역량과 자원이 있음에도 사과를 주고 받는 상황에서 문제해결 노력을 덜한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만일 당신 조직이 갈등회피문화가 강하다면, 사과가 일상화될 가능성이 높다. 더 큰 갈등으로 번지기 전에 빨리 사과부터 하는 것이 좋다고 주변에서 종용하는 분위기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갈등회피 문화일수록 사과 후에 갈등해결노력이 충분하지 못할 가능성 역시 크다는 데 있다. 우선 사과부터 던져놓고 회복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조직은 사과조차도 하지 않은 조직에 비해 실질적으로 나은 게 없다. 이런 조직은 표면상으로만 갈등이 눈에 띄지 않을 뿐, 책임지지 않은 일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난다. 


갈등회피문화가 강할수록 잘못한 일이 없는데 사과해야 하는 일이 많다. 사과를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문화는 잘못을 바로잡고 성과를 개선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고 죄책감을 느낀 상태에서 분노의 감정이 없을 때 비로소 개선 노력을 기울인다. 따라서, "사과부터 해"라고 종용할 것이 아니라, 현재 잘못된 현상이 어떤 원인으로 생긴 것인지 열린 토론이 필요하다. 


이 글의 맨 앞의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임원은 오류를 발견하고 다짜고짜 다그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담당자는 먼저 사과를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누구라도 이 상황에선 사과부터 던지겠지만, 이후에 생긴 분노로 인해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은 충분히 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임원의 리더십이 아쉽다. 통계 수치가 잘못됐다면 다그칠 것이 아니라, 원인 파악 우선이다.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있어야  문제해결 노력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 더, 서로 친밀한 관계일수록 잘못하지 않은 일에 대해 사과해야할 때, 분노의 감정은 덜하고 회복 노력은 더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결국, 구성원 서로가 서로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존중하는 친밀한 관계가 만들어질 때, 다소 억울한 상황에서조차도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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