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심리학자 레슬리 존(Leslie John)의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글을 약간 바꿔 자기 것처럼 발표한 사례를 읽고는 비윤리적이다라고 판단했다(John, L. K., Loewenstein, G., & Rick, S. (2014). Cheating more when the spoils are split.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123(2), 101–109.).
그런데 같은 상황을 자기 입장에서 상상하게 하자, 반전이 일어났다 자신의 글에 대해선 도덕 판단이 확연히 관대해진 것이다. 명백한 이중잣대다. 이른바 내가 하면 참고지만 남이 하면, 남이 하면 표절이다.
이런 태도를 심리학에서는 자기중심적 편향(egocentric bias)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이중잣대는 일부 나쁜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사실 우리 모두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심리적 반응이다.
왜 그럴까? 우리는 자신의 행동은 상황을 고려해서 판단하지만, 남의 행동은 결과만 보고 평가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내가 했을 땐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고 생각하지만, 남이 하면 '그건 잘못된거야'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도덕의 기준은 나에게만 느슨하다.
표절은 단순히 나쁜 행동을 넘어서, 경우에 따라선 법적 책임을 질 수도 있는 문제다. 우리는 남의 글을 베끼는 건 안 된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리는 매일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보고 배우고, 그걸 살짝 바꾸거나 엮어서 마치 내가 처음 떠올린 것처럼 표현하곤 한다.
그렇다면, 표절은 정말 도둑질일까? 아니면 학습의 한 방식일까?
아이는 따라 하며 배우고, 어른도 따라 하며 배운다. 심리학자 알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는 사람은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하면서 배운다고 설명했다. 이를 관찰학습(observational learning)이라 부른다(Bandura, A. (1977). Social learning theory. Englewood Cliffs, NJ: Prentice-Hall.). 아이들이 어른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따라 하며 자라듯, 어른도 글쓰기, 표현, 창작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흉내 내고 변형하면서 성장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표절을 하며 배우고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표절로 통해서 얻은 창작물에 느끼는 소유감이다. 심리학자 엔더 슈워츠(Endowment Effect 연구자들)에 따르면, 우리는 무언가를 자신의 소유라고 인식하는 순간, 그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Kahneman, D., Knetsch, J. L., & Thaler, R. H. (1990). Experimental tests of the endowment effect and the Coase theorem.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98(6), 1325–1348.). 내가 만든 디자인, 내가 생각한 문장, 내가 쓴 글이 남의 것보다 더 독창적이고 귀하다고 느끼는 이유다. 내가 만든 디자인은 독창적이라 느끼고, 내가 손 본 문장은 더 세련돼 보이며, AI가 만들어 준 문장도 내가 다듬으면 내 것이라고 착각한다.
이러한 소유감은 창작 동기를 높이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창작의 출처와 경계에 대한 왜곡된 믿음을 만들기도 한다. 실상은 타인의 아이디어나 표현에서 비롯된 것을 자신의 글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GPT나 미드저니 같은 생성형 AI가 흔해진 지금, 진짜 창작의 기준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를 조합한 결과를 창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GPT, 미드저니, 클로드와 같은 생성형 AI는 누구나 손쉽게 멋진 글, 그림,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AI는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표절 탐지기는 문장 구조와 단어 유사성을 잡아낼 수 있지만, 의도적으로 베낀 것인지 아니면 영감을 받은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AI는 인간처럼 창작의 맥락을 가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AI와 협업할 때, ‘내가 무엇을 선택했고 왜 바꿨는가’에 대한 자기 인식이 필수적이다. 결국 중요한 건 경계 짓기다. “남의 것을 가져오지 말라”가 아니라, “어디까지가 나의 목소리인가?”를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창작이란 완전한 무(無)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영향 속에서 자신의 언어로 정제하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저작권 교육은 단순한 법률 지식이 아니라, 자기 이해를 포함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흉내 내고 있는지, 무엇에 영감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서부터 나만의 색이 시작되는지를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창작은 인간의 특권이다. 하지만 그 특권은, 타인의 생각 위에 서 있는 나를 정직하게 이해할 때 더 빛난다. 표절의 잣대는 각각 다르다. 표절의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정체성을 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