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글의 댓글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한 번 완성한 글을 다시 보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다. 그런데, 내가 최근 쓴 글에 대한 댓글을 우연히 보았다.
댓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바껴야'-> 이 부분에서 신뢰가 사라집니다.
아차 싶어 바로 내용을 수정하고, 감사의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오타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떠올랐다. 나는 기업에서 교육 담당을 오래했었다. 강사를 섭외할 일도 많았다. 나는 내가 초빙한 연사들의 책을 꼭 읽었는데, 책을 읽다보면 오타나 비문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오타로 인해 전체 글의 신뢰감이 떨어졌다기보다는 오히려 인간미를 느꼈었다.
그렇다면, 같은 오타에 왜 어떤 사람들은 인간미를 느끼고, 또 어떤 사람들은 신뢰를 철회할까?
대표성 휴리스틱(Representativeness Heuristic)은 사람들이 어떤 대상을 평가할 때 전체 맥락보다 눈에 띄는 일부 특징을 통해 전체를 판단하는 심리적 경향이다. 이는 빠른 판단을 가능하게 하지만, 때로는 지나친 일반화로 이어진다. 글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독자들은 오타 하나를 단순한 실수로 보지 않고, 그 글 전체의 정성, 전문성, 신뢰성을 가늠하는 상징적 단서로 받아들인다. 눈에 띄는 실수 하나가 전체 글의 인상을 좌우할 수 있다. 이는 글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뇌의 인지적 효율성과 판단의 지름길(shortcut)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긍정적인 정보보다 부정적인 정보에 훨씬 민감하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이라고 부른다. 우리 뇌는 긍정보다 부정을 더 빨리, 더 강하게, 더 오래 기억한다.100문장이 아무 문제 없어도, 단 하나의 오타가 독자의 뇌리에 남는다. 심지어 오타는 눈에 더 잘 띈다. 왜냐하면, 우리의 뇌는 이상 징후를 자동으로 탐지하는 경보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생존 본능의 흔적이다. 인류의 조상은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좋은 것보다 위험한 것을 빨리 발견하는 능력이 중요했다. '이 풀은 맛있다'보다 '저 풀에는 독이 있다'를 더 빨리 기억해야 했다. 글 읽는 뇌도 마찬가지다. 좋은 문장 99개보다 이상한 문장 1개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
이건 글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맛집에서 9번 친절하게 대해도, 한 번 무뚝뚝하면 불친절한 집이 되어버리는 것과 똑같다. 긍정은 누적이 필요하지만, 부정은 한 번에 각인된다.
공식적이거나 지적인 글쓰기에서는 문법적 정확성을 사회적으로 기대한다. 이 기대가 무너질 때, 사람들은 규범 위반으로 해석하고, 더 강한 반응을 보인다.
우리는 글을 읽을 때 단순히 정보만 읽지 않는다. 동시에 그 글이 쓰인 형식, 문법, 어조, 표현 방식을 통해 글쓴이의 태도와 의도를 해석한다. 특히 공식적이거나 지적인 문맥에서는 맞춤법과 문장을 지켜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이 깔려 있다. 그래서 오타는 ‘정보 오류’가 아니라, ‘규범 위반’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할까? 심리학에서는 규범 위반(social norm violation)에 대한 반응이 단순 오류보다 더 강하게 나타난다고 본다. 왜냐하면 규범은 단지 형식이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가르는 무언의 계약이기 때문이다.
1966년, 사회심리학자 엘리엇 아론슨(Elliot Aronson)은 한 가지 단순한 질문을 품고 있었다.
“완벽한 사람은 모두에게 매력적으로 보일까?”
그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흥미로운 실험을 설계했다. 참가자들에게 인터뷰 영상을 보여준다. 영상 속에는 매우 유능한 남성이 등장한다. 하버드 출신, 퀴즈 대회 수상자, 학생회 활동까지 뛰어난 전형적인 엘리트였다.
그런데 조건은 두 가지로 나뉜다. 조건 A에서는 그 엘리트가 끝까지 차분히 인터뷰를 마친다. 조건 B에서는 그 엘엘리트가 마지막에 커피를 쏟는 실수를 한다. 실험 결과, 사람들은 실수한 사람(B)에게 더 큰 호감을 보였다. 같은 실수라도, 능력이 있다고 전제된 경우엔 그것이 인간미를 더해주는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완벽하게 보이던 사람의 작은 허술함은 거리감을 좁히고, 경쟁심을 누그러뜨리고, 친근감을 높인다. Pratfall Effect가 작동하려면 반드시 전제조건이 있다. 탁월한 능력이나 신뢰감이 먼저 확보되어야 한다. 무명 작가가 오타를 내면 실수가 아니라 실력 부족으로 간주되지만, 이미 인정을 받은 작가가 오타를 내면 인간미로 재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독자들은 지나치게 정제된 콘텐츠에 피로감을 느낀다. 오타는 때로 기계가 아닌 인간이 쓴 글이라는 신호가 된다. AI의 글은 오타가 없다. 그래서 오타를 결점이 아니라 진짜 사람이 쓴 글이라는 흔적으로 받아들인다. 너무 매끄럽고 완벽한 글이 오히려 의심스럽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이 진정성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우리는 점점 더 포장되고, 가공된 정보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SNS에는 꾸며진 삶으로, 뉴스에는 의심스러운 메시지가 넘친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더욱 “날것 그대로의 표현”을 귀하게 여긴다. 오타는 바로 그 ‘날것’의 징후다. 결점의 흔적이 있을 때, 사람들은 오히려 그 안에서 진심을 찾는다.
물론, 진정성 프레임은 적절한 수준의 비완벽함을 통해 작동한다. 오타 하나는 인간미지만, 오타 다발은 무지고 결례다.
글의 맥락, 글쓴이와의 심리적 거리, 플랫폼의 특성 등에 따라 관용의 기준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SNS 글이나 블로그 글은 공식 문서보다 훨씬 더 관대하게 평가된다. 오타가 허용되는지 아닌지는, 글의 질이 아니라 장르의 문제다. 사람들은 오타 자체보다 ‘그 글이 어디에,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쓰였는가’를 바탕으로 그 실수를 허용할지 말지를 판단한다. 이것이 바로 맥락 의존적 관용(Contextual Tolerance)이다.
분석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언어적 정확성에 예민하다. 반대로 맥락 중심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내용과 의도에 더 집중한다.
완벽주의(Personal Standards) 성향이 높은 사람일수록 작은 실수를 신뢰의 결함으로 인식한다. 관용성과 정서적 안정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오타에 덜 민감하다.
글쓴이를 이미 신뢰하거나 좋아한다면 오타는 인간미와 친근감의 표식으로 보이고, 신뢰하지 않는 상태라면 결함의 증거로 해석된다.
① 심리적 거리(Psychological Distance): 심리적 거리가 먼 잘 모르는 전문가가 썼다고 기대할 때는 기능적 완벽성을 기대하지만, 친밀한 사람이 썼다고 생각하면 감정과 진정성을 더 중시여긴다.
② 플랫폼의 규범 기대(Normative Framing): 보고서, 논문, 뉴스 기사 등은 정확성의 규범이 내재된 플랫폼에서는 작은 오타도 규범 위반으로 간주되지만, 인스타그램, 블로그, 커뮤니티 등의 표현 중심의 플랫폼에서는 감성, 공감이 우선시된다.
③ 글의 기능적 목표(Function): 정보 전달 글은 신뢰 확보가 목적이기 때문에 오타는 신뢰 침해하지만, 감성적 글은 공감 유도가 목적이기 때문에 오타는 인간미 부여 기능을 한다.
결국 오타는 객관적인 오류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철저히 주관적이다. 독자의 기대, 맥락, 성향, 감정 상태에 따라, 같은 오타로 신뢰를 상실하거나 불쾌함이 되기도 하고 인간미와 친밀감의 표식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텍스트를 읽는 게 아니라, 그 텍스트를 통해 자신의 판단 기준과 정서 상태를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