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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나쁜 기분을 느끼고 싶어한다.

by 박진우


나쁜 감정은 무조건 피해야 할 대상일까?


많은 조직이 직원의 감정을 다룰 때 긍정 정서에만 주목한다. “웃어야 행복하다", "행복한 직원이 성과를 부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슬로건은 이제 대부분의 기업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실제로 사람들은 일상에서 의도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찾아가는 선택을 자주 한다. 짜증나고 화가 나는 뉴스를 일부러 찾아 클릭하고, 퇴근길에는 슬픈 음악을 들으며 외로운 감정에 몰입하기도 한다. 이성적으로 보면 아무런 생산성도 없고, 기분만 더 나빠질 수 있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 인간은 부정적 감정 경험에 끌린다.


그 이유는, 이러한 나쁜 감정이 단지 불편한 느낌이 아니라, 생존과 적응에 필요한 경고 시스템으로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슬픔은 상실 상황에서 사회적 지지를 요청하고, 에너지를 절약하며, 의미를 재정비하도록 설계된 반응이다. 불안은 잠재적 위협에 대한 주의력과 회피 전략을 발동시키는 선제적 대비체계로 작동한다. 분노는 부당함을 감지하고 사회적 경계선과 자원 분배의 공정성 문제를 수정하도록 진화했다. 이처럼 부정적 감정은 생존을 위한 정보 처리 도구이자, 행동 방향을 조정하는 생물학적 내비게이션이었다.


그런데, 많은 조직은 <긍정 정서 = 몰입과 성과>라는 등식을 전제하고, 분노, 불안, 슬픔과 같은 감정은 업무에 방해되는 요소로 간주한다. 그래서 조직 내 구성원들은 부정 감정을 억압한다. 이는 결국 감정 노동(emotional labor)과 탈진(emotional exhaustion), 그리고 심리적 이탈(disengagement)로 이어지기 쉽다. 정말 나쁜 감정은 조직 성과에 해로운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 감정을 잘 다루는 법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심리학의 연구는 부정 감정은 억눌러야 할 문제가 아니라, 맥락에 따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심리 자원이라는 것이다.


감정의 도구적 기능: 부정적 감정도 전략이다


이스라엘 히브루 대학교의 심리학자 마야 타미르(Maya Tamir) 교수는 2008년, 감정 선택의 기능적 측면을 밝히기 위해 일련의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단순히 ‘기분이 좋은 상태’를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성공적인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감정 상태를 전략적으로 선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참가자들은 실험에 앞서 두 가지 유형의 과제 중 하나에 무작위로 배정되었다.

- 전투 게임(Fight game): 공격적이고 경쟁적인 환경

- 협동 게임(Cooperation game): 타인과의 협력이 필요한 환경


과제를 수행하기 전, 참가자들은 자신이 어떤 음악을 듣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었다.

- 분노를 유발하는 음악 (속도가 빠른 헤비메탈 음악)

- 기분을 좋게 만드는 음악 (밝고 경쾌한 멜로디)


실험 결과, 전투 게임 참가자들은 분노를 유발하는 음악을 의도적으로 더 자주 선택했다. 반면, 협동 게임 참가자들은 긍정적 감정을 유도하는 음악을 선호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반드시 분노나 행복 상태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과제 수행에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감정을 일부러 유도하려 했다는 것이다.


타미르 교수는 도구적 감정조절(Instrumental Emotion Regul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감정을 수동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 달성에 필요한 감정 상태를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조절한다. 즉,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지는 것보다 성과를 낼 수 있는 감정을 선택한다.


조직심리학: 감정은 성과의 자원이다.


모든 상황에서 긍정 감정이 최적은 아니다. 오히려, 특정 감정은 그 자체로 상황 적응적(adaptive)이다. 감정은 필요한 행동을 유발하는 기능적 역할을 한다.

- 분노는 부당한 처우나 불공정한 상황에 맞설 수 있는 자극제가 되며,
- 슬픔은 상실과 실패를 의미 재구성과 성장의 계기로 전환하게 하는 내면적 정화(catharsis)를 유도하며,
- 불안은 예기치 못한 리스크를 사전에 감지하고 대비하는 주의력을 높이는 신호로 작용한다.


부정적 감정은 무조건 억제하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특정한 맥락에서는 업무 성과와 판단력, 관계 회복에 기여하는 정신적 도구(psychological instrument)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조직은 감정을 단순히 관리(manage)하거나 통제(control)하려는 시도를 넘어서, 업무 맥락과 개인의 목표에 맞게 조율(modulate)하고 전략적으로 활용(utilize)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부정 감정이 상황에 따라 성과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심리적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의 다양성(Emodiversity)이 조직에 주는 혜택


조직 내에서 지나치게 긍정 정서만 강조하면 오히려 정서적 불균형을 초래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대학교(Barcelona University)의 조르디 쿠어드박(Jordi Quoidbach) 교수는 37,000명 이상의 데이터를 분석한 대규모 연구(2014)에서, 감정의 다양성(emodiversity)이 높은 사람일수록 정신건강과 삶의 만족도가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모든 감정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훨씬 더 건강하고 유연하게 일한다.


감정의 다양성이 높은 사람들은 슬픔을 느낄 때, 그 감정을 잘 들여다보고 정리할 줄 안다. 불안을 느끼면, 이를 신호로 삼아 준비를 더 철저히 한다. 분노를 억누르기보다, 차분하게 표현하며 관계의 선을 지키도록 한다. 이런 사람들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을 쓰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다. 스트레스에도 강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구성원이 불편한 감정을 느껴도 괜찮다고 느끼는 곳, 그리고 그 감정을 안전하게 꺼내고, 함께 다룰 수 있는 분위기가 있는 곳이 결국 더 건강하고 회복력 있는 팀이 된다. 중요한 것은 불편한 감정을 없애는 게 아니라, 다룰 수 있는 힘이다. 감정을 숨기게 하는 조직은 단기적으로는 조용할지 몰라도, 정서적 유연성과 회복력을 잃게 된다. 다양한 감정을 존중하고 표현할 수 있는 조직일수록, 스트레스에도 강하고 관계도 깊다.


부정적 감정은 도전과 정체성 강화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부정적인 감정을 감내하거나 버텨야 할 것으로 여기지만, 심리학은 정반대의 시선을 제시한다. 감정은 단지 일시적인 기분이 아니라, 자기 탐색과 성장의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올린 칼리지 오브 엔지니어링(Olin College of Engineering) 심리학과 조나단 아들러(Jonathan Adler)의 연구(2016)는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사람들이 슬픔, 상실, 후회 같은 감정을 경험할 때, 단순히 고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성찰하고 정체성을 재구성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즉, 부정 감정은 피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의미를 되찾고 자기 개념(self-concept)을 확장하는 계기가 된다.


조직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피드백을 받을 때, 실수를 했을 때, 관계가 어긋났을 때 불편한 감정을 경험한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야말로 자신의 역할, 가치,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조직 내 자기 인식(self-awareness) 수준이 높은 리더일수록 이 감정들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는다. 불안, 분노, 실망 같은 감정이 올라올 때, 이를 성장의 신호로 해석하며 내면을 정돈하려 한다. 그들은 감정에 매몰되지도, 회피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런 감정과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며 의미를 추출하는 데 익숙하다.


보코니 대학교 레머스 일리예쉬(Remus Ilies) 교수의 연구(2005)에 따르면, 자기 인식이 높고 정서적으로 진정성(authenticity)을 지닌 리더는 감정 교류에서 늘 긍정적인 모습을 유지하려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정직하게 공유하며 신뢰를 형성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리더는 구성원에게도 자기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탐색해볼 수 있는 정서적 공간을 허용하며, 팀의 심리적 안전감과 회복탄력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긍정 강박이 조직에 미치는 부작용도 크다


많은 조직에서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자'는 메시지가 당연한 문화처럼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항상 밝아야 한다는 기대는 오히려 구성원에게 감정을 억제하도록 강요하며, 조직 내에 만성적인 정서 노동(emotional labor)을 유발한다. 문제는 이런 감정 연출이 반복될수록, 구성원은 내면의 감정과 외부 표현 사이에 괴리감(dissonance)을 느끼게 된다. 이런 조직의 구성원들은 정서적 고갈(emotional exhaustion; 감정을 연출하는 데 에너지를 소모한 결과, 회복이 어려운 탈진 상태), 심리적 분리(disengagemen; 조직과의 정서적 연결이 느슨해지며, 무관심과 거리두기가 증가), 냉소주의(cynicism; 진짜 감정을 표현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 속에서, 조직 전반에 불신과 조롱이 스며듦)가 만연할 가능성이 높다.


슬픔을 드러내면 팀 분위기를 해친다는 암묵적 압력을 받고, 분노를 표현하면 감정 기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씌워지는 조직은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정서적으로 폐쇄된 공동체가 된다. 슬픔과 분노를 허용하지 않는 조직은 위기를 감지하지 못하는 조직이 되기 쉽다.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은 점점 더 자기 검열을 강화하고, 문제를 공유하지 않으며, 심리적 거리감을 유지하는 방어적 협업 상태에 빠지기 쉽다.


감정을 넘어 성격을 이해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성격지능(Personal Intelligence)


현대 조직에서 리더는 더 이상 단순한 감정 관리자(regulator)가 아니다. 감정을 넘어선 심리적 패턴, 즉, 성격과 감정, 행동 경향성을 이해하고 조율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때 핵심이 되는 역량이 바로 성격지능(Personal Intelligence)이다. 성격지능은 정서지능의 창시자인 존 메이어(John Mayer) 교수가 제안한 개념으로, 자신과 타인의 성격 특성, 감정, 동기, 행동 패턴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 정보를 기반으로 사람의 반응을 예측하고, 정서적, 대인적 전략을 조율하는 능력이다.


성격지능이 높은 리더는 팀원의 감정 상태만을 관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감정의 기저에 있는 성격적 메커니즘에 관심을 갖는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불안을 성과 압박으로, 또 다른 사람은 회피한다. 성격지능이 높은 리더는 이처럼 구성원의 반응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적합한 접근법을 설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구성원은 높은 자기기준성과 완벽주의 경향 때문에 반복적인 피드백에 민감할 수 있다. 반면 또 다른 구성원은 낮은 자기통제력 때문에 감정을 쉽게 표출하고 감정적 오해를 유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모든 구성원에게 같은 방식으로 '감정을 잘 다루자'라고 말하는 것은, 리더십이 아니라 정서 통제 요청에 불과하다. 성격지능은 감정을 넘어서 사람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상황에 맞게 반응을 설계하는 리더십의 정교한 형태다. 이는 조직 내 심리적 안전감, 팀 내 감정 조율력, 개인-조직 적합성을 높이는 핵심 리더십 자산이기도 하다.


감정을 통제하는 리더는 구성원의 침묵을 만들지만, 성격을 이해하는 리더는 구성원의 신뢰를 이끌어낸다.

조직에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 CARAT


감정은 행동의 순간적 반응이고, 성격은 행동의 지속적 경향이다. 하지만 실제 조직에서는 이 둘 중 하나만으로는 구성원의 실제 적응 방식, 회복력, 인간관계, 갈등 반응, 성장 태도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바로 이 틈을 메우기 위해 개발된 것이 CARAT(Core Attributes of Readiness and Attitude Test)이다. CARAT은 단순히 ‘성격이 어떻다’거나 ‘감정이 예민하다’는 진단을 넘어, 개인이 조직 안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일하고, 갈등을 다루고, 성장하려 하는지까지 포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즉, 감정과 성격의 교차지점에서 실제 행동을 설명하는 통합적 심리모형인 셈이다.


예를 들어, CARAT을 이해하면, 단순히 ‘불안하다’고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성장 압력으로 전환하는 회복탄력성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자기중심적’이라 평가받는 구성원이 실제 이기적인지 아니면, 조직 내 자기기반자긍심이 낮아 방어적으로 반응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타적인 태도’를 보이더라도, 그것이 진정성에서 비롯된 것인지, 인정 욕구에서 비롯된 것인지 등 심층적 기제 수준의 분석이 가능하다.


CARAT은 리더가 팀원들의 감정 반응을 그저 조절하려 드는 것이 아니라, 각 구성원이 가진 성격적 기반과 심리적 리듬을 이해하고, 이에 맞춰 리더십을 조율하도록 돕는 도구다. 기존의 성격검사들이 그 사람 자체를 설명하는 데 그쳤다면, CARAT은 '그 사람이 조직 안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성장하며, 충돌하는가'를 예측하고 대비하게 해주는 실천적 진단 도구다. 조직 내 개인-상황 적합성(person-environment fit)을 예측하고 설계하려면, CARAT 수준의 통합적 진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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