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중에 라디오를 듣곤 하는데, 오늘은 테토녀와 에겐남이 궁합이 좋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저 대중문화적 밈인 줄 알았는데, 나름 심리학 전문가라는 사람이 나와서 하는 말이니 그냥 흘려 들을 수가 없었다.
“남성형 여성과 여성형 남성이 오히려 더 잘 맞는다.”
아주 고전적인 융의 아니마-아니무스 이론이라도 들고나올 줄 알았는데, 이론적 근거도 없는 안타까운 설명을 들으면서 심리학 전공자로서 한 번 짚어보려 한다.
'비슷해야 잘 살까 VS 서로 달라야 잘 살까'라는 논쟁은 심리학에선 상당부분 정리가 됐다.
과연 사람은 비슷해야 오래 가는가, 아니면 서로 다를수록 더 끌리고 더 오래 갈 수 있는가? 그리고 테스토스테론 기반의 여성(테토녀)과 에스트로겐 기반의 남성(에겐남)이라는 구도가 실제로 심리학적으로 궁합이 좋은 구조라면, 그 작동 원리는 무엇일까?
“사람은 자신과 닮은 사람에게 끌린다.”
“아니야, 정반대라서 끌리는 거야.”
연애를 다루는 심리학에서 가장 자주 맞붙는 이 두 명제는 오랜 기간 연구자들의 논쟁 주제였다. ‘유사성 가설(Similarity Hypothesis)’과 ‘상보성 가설(Complementarity Hypothesis)’은 각기 다른 시점과 조건에서 관계 만족도와 안정성을 설명해왔다.
심리학자 Donn Byrne는 1971년 <유사성-매력 가설(Similarity-Attraction Hypothesis)>을 제시하며, 사람들이 자신과 유사한 가치관, 태도, 세계관을 가진 상대에게 더 매력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후 수많은 연구로 지지되었으며, 특히 다음과 같은 심리적 요인이 작동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 인지 부조화의 최소화: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과의 상호작용은 스트레스를 덜 유발
- 사회적 정체성 강화: 상대를 통해 ‘나 자신’의 정당성과 소속감이 강화됨
- 예측 가능성: 갈등 상황에서도 의사결정 패턴이 유사해, 충돌을 줄이고 회복이 빠름
현실의 연인 간의 관계를 연구한 Schwartz(1994)는 가치관이 유사한 커플일수록 장기 만족도와 갈등 회피 능력이 높다고 밝혔다.
반면, Winch(1958)는 다른 접근을 제시했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상보적 관계가 오히려 장기적인 관계 유지에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 가설은 특히 다음과 같은 심리기제에서 지지를 받는다.
- 자기 확장(Self-Expansion): Aron & Aron(1996)은 관계를 통해 개인이 ‘더 나은 자신’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관계 지속의 핵심 요인으로 보았다.
- 역할 분화에 따른 안정감: 한 사람이 잘하지 못하는 부분을 상대가 보완해줄 때, 역할갈등이 줄고 상호의존성이 증가
- 자기 효능감 보완: 내가 감정에 약할 때 상대가 정서적 안정망이 되어줄 경우, 전체 시스템은 더 강력해짐
이를 검증한 Gottman의 부부 연구에서는 성격의 유사성보다 대화의 방식과 회복탄력성이 관계 유지에 더 중요하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현대 관계 심리학의 결론은 명확하다.
1. 관계 초반의 끌림은 대개 유사성에 기반한다.
2. 장기적인 만족감과 성장 가능성은 상보성에서 비롯된다.
3. 그리고 무엇보다, 관계의 안정성과 회복력은 정서 조율 능력과 상호 존중의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
즉, 사람은 처음엔 자신과 비슷한 신념과 가치관, 성격에 끌린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의 차이를 얼마나 잘 해석하고 보완할 수 있는가가 그 관계의 지속성과 확장성을 결정짓는다.
이제, 이 이론적 기반 위에서 테스토스테론 기반 여성(테토녀)과 에스트로겐 기반 남성(에겐남)을 들여다 보자. 전통적인 성역할 구도를 뒤흔드는 이 조합은 ‘다름이 피로가 아니라 동력’이 되는 궁합이다.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과 같은 성호르몬은 인간의 의사결정, 감정처리, 사회적 행동의 패턴에 깊게 관여한다. Baron-Cohen(2003)은 이를 바탕으로 <시스템화 뇌 vs 공감 뇌(Systemizing vs Empathizing Brain)> 모델을 제시했다.
- 테스토스테론은 문제 해결, 규칙 찾기, 분석적 사고와 관련된 시스템화(systemizing)를 강화하고,
- 에스트로겐은 정서 감지, 관계 조율, 공감력을 향상시키는 공감(empathizing) 기능을 촉진시킨다.
이 관점에서 보면, 테토녀와 에겐남은 서로 다른 인지-정서 기반을 가진 대표적인 상보적 조합이다. 거기에 이 둘의 조합은 단순한 보완을 넘어 기존 성역할 구도의 역전이라는 점에서 심리적으로 더 주목할 만하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에게 쉽게 끌리지 않는다. 단호하고 직선적인 여성, 지나치게 감정적인 남성은 여전히 ‘낯설고 다루기 어렵다’는 인상을 준다. 우리 안에는 여전히 무의식적인 성역할 기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남성은 결단력 있고 행동 중심일 것, 여성은 섬세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날 것이라 기대한다. 이처럼 성별에 따라 특정한 행동을 요구하는 사회화된 스키마(social schema)는 상대를 평가하는 초기 단계에서 강하게 작동한다.
그런데 이런 스키마를 깨는 사람을 마주할 때, 그 낯섦은 대개는 거리감과 불편함을 먼저 유발한다. 성역할 하지만 일부에게는 이 예상 밖의 성향이 오히려 인지적 주목(attentional salience)을 만들어낸다. 반전에 기반한 기대 위반(expectation violation)은 다수에게 이질감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드물게는 ‘이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차별적 인상 형성(differentiation-based attraction)으로 전환되며, 반전에 기반한 기대 위반(expectation violation)은 다수에게 이질감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드물게는 ‘이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차별적 인상 형성(differentiation-based attraction)으로 전환되며, 관심과 호감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관심과 호감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테토녀와 에겐남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으로 보이는 조합이 아니다. 그러나 특정한 심리적 조건, 즉 기존 스키마를 넘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차이를 통해 관계를 확장하는 특별한 매력이 될 수 있다.
다름이 언제나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름은 대부분 혼란이나 거리감을 유발하기 쉽다. 하지만 그 차이가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방식으로 반복된다면, 그 낯섦은 점차 신뢰 가능한 차이로 해석되기 시작한다. 테토녀가 갈등 상황에서 언제나 감정보다는 문제 해결을 우선시하고, 에겐남이 일관되게 감정의 흐름을 먼저 다루자는 태도를 보인다면 처음엔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그들의 반응은 이제는 예측 가능한 패턴으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의 일관성은 단순한 태도가 아니라,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이라는 생물학적 기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상대방은 더 쉽게 안정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결국, 낯선 반응조차도 예측 가능한 반복이 될 때, 관계는 심리적 안정감을 회복하게 된다.
대부분의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역할 피로’를 겪는다. 한쪽이 계속 감정을 챙기고, 한쪽이 계속 결정을 내리다 보면 각자의 에너지가 고갈되고, 불균형이 피로로 누적된다. 하지만 테토녀와 에겐남 조합은 그 역할 구조 자체가 호르몬 기반의 기능적으로 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안정적이다. 양쪽 모두 자신의 자연스러운 성향에 맞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왜 나만 이런 역할을 떠맡아야 하지?”라는 불만이 줄어든다.
성숙한 관계는 '닮음보다 분담'에서 온다. 심리학적으로, 지속 가능한 관계의 핵심은 에너지의 순환과 분산에 있다. 모든 역할을 둘 다 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대가 확실히 잘하는 영역을 믿고 맡길 수 있다면, 그 신뢰는 단순한 서로 돕는 관계를 넘어,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정서적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기능적 결핍을 해결해 주는 것이 핵심이다. 냉정한 판단력과 따뜻한 공감력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가장 정교한 두 축이다.
아래는 CARAT 학습자를 위한 글입니다.
- 테토녀는 대개 높은 자기효능감을 보인다. 문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방향을 설정하며, 감정에 압도되지 않는다.
- 에겐남은 자기효능감이 중간 이하라도, 감정 조절 능력과 감정적 회복력은 뛰어날 수 있다. 공감과 수용, 정서적 지지라는 다른 방식의 회복 전략을 사용한다.
이 둘은 위기 대응 방식이 다르지만 상호 보완적이다. 테토녀는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가려는 힘을, 에겐남은 그 상황에서 감정을 안정시키고 사람을 지키는 힘을 낸다.
- 테토녀는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하고 인정받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로 인해, 상대의 존중이 결여되면 금세 냉각될 수 있다.
- 반면 에겐남은 조직신뢰가 높을수록 관계에서의 ‘정서적 헌신’을 강화한다. 관계에서의 심리적 안전지대가 중요하다.
테토녀는 “내가 유능한 사람으로 존중받고 있는가?”를, 에겐남은 “이 관계가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인가?”를 본다. 이 둘이 서로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다면, 관계는 매우 안정적으로 굴러간다.
- 테토녀는 자기성장(GS)에 집중되어 있다. 나의 역량을 증명하고 넓혀가는 과정에 몰입한다.
- 에겐남은 타인성장(GO)에 민감하다. 상대의 감정, 속도, 성장 과정에 공감하며 지원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관계의 갈등을 “누가 옳은가”의 문제로 만들지 않고, “어떻게 함께 성장할 수 있는가”로 전환할 수 있는 기제를 제공한다.
- 테토녀는 ES(형평민감성)가 낮거나 중간일 경우, 관계 내 형식보다 실질적 기여와 효율을 우선한다.
- 에겐남은 오히려 감정적 공정성이나 배려의 균형을 더 예민하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 다르게 형평성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감정적 갈등이 발생할 여지는 있다. 하지만 서로가 “내가 맞다”는 주장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관점 전환이 작동하면 이 불균형은 점차 해소된다.
- 테토녀는 P나 M이 중간 이상일 경우, 일 처리에서는 명료하지만, 관계 내 정서적 갈등에는 냉정할 수 있다.
- 에겐남은 N(신경증성)이 높을 경우, 감정 과잉해석 또는 회피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이 조합은 정서적 충돌에 더 취약할 수 있으나, 회복 전략(R)과 정서조율 능력(A)이 높다면, 이 잠재적 위험 요소는 오히려 관계의 심화 지점이 된다. 즉, "싸우되 무너지지 않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테토녀와 에겐남은 단순히 "성역할을 뒤집은 조합"이 아니라, 서로의 인지적 장점과 정서적 역량을 정확히 보완해주는 구조를 가진다. CARAT 관점에서 보면 이 둘은 기능 기반 분화형 커플이다. 상대가 못하는 걸 내가 할 수 있고, 내가 불안할 땐 상대가 나를 붙잡아줄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서로를 바꾸지 않되, 서로 덜어주고 채워주는 관계는 CARAT을 이해하면 더 깊게 발전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