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미생>에서 선차장은 전형적인 ‘구조 주도형(initiating structure)’ 리더다. 업무 일정은 철저하게 관리되고, 팀원들에게는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며, 감정보다는 결과가 우선이다.
출처: TVN
그녀의 리더십은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차갑고 불편한 상사로 묘사된다. 팀원들은 그녀를 피하거나, 뒤에서 수군거리기 일쑤다. 그런데, 같은 방식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남성 리더는 같은 대우를 받지 않는다.
최근 조직 심리학의 연구는 이 질문에 명쾌한 해석을 제공한다.
같은 리더십 행동이라도, 성별에 따라 내면적·사회적 비용이 다르게 작동한다.
심리학이 밝혀낸 진실은 리더십 행동 그 자체보다 ‘성별과의 불일치’가 심리적 고갈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 같은 현상을 이론과 실험으로 설명한다.
리더십은 크게 두 가지 행동을 구분할 수 있다.
- Initiating Structure (구조 주도): 목표 제시, 기대 설정, 피드백 제공 등의 남성적 리더 역할
- Consideration (배려 행동): 공감, 존중, 따뜻함 등의 여성적 리더 역할
여성 리더가 ‘구조 주도적 행동’을 할 경우, 성고정관념 위협(Stereotype Threat)이 촉발되어 심리적 탈진을 유발하고, 이로 인해 리더십 행동과 몰입이 감소한다.
자신의 행동이 성별과 맞지 않아서 평가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여성 리더가 명확히 지시하거나 피드백을 줄 때, '너무 까칠해 보일까?', '여자 리더가 왜 이렇게 공격적이야?', '너무 남자처럼 군다'와 같은 암묵적 성 고정관념(stereotype)에 부딪히게 된다. 이로 인해 리더 본인은 성역할에 대한 위협(stereotype threat)을 느끼며, 자신의 행동을 끊임없이 자기 검열하게 되고, 심리적 탈진(depletion)에 빠진다.
구조적 행동이 남성에게는 자연스러운 역할이지만, 여성에게는 다음과 같은 비용을 유발한다.
- 성역할에 대한 긴장감:“내가 너무 세게 말한 건 아닐까?”“여자 상사로서 이건 지나친 걸까?”
- 리더로서 자기효능감 저하:“나는 팀을 이끄는 데 적합한 사람일까?” “조직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 결과적으로 탈진: 내면의 불안, 과잉 모니터링, 관계의 단절로 회피나 침묵과 같은 회피적 리더십 행동
출처: Lin, S. H. J., Woodall, J. P., Mitchell, M. S., Chi, N. W., & Johnson, R. E. (2025). The gendered nature of leader behaviors: Navigating stereotype threat from conservation of resources and gender role perspectives.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이 연구는 미생의 선차장이 겪는 내적 갈등과 정확히 일치한다.
선차장은 탁월한 실무능력과 책임감으로 팀을 이끈다. 그러나 그녀는 동료의 지지도, 팀원의 인정도 받지 못한 채 혼자 싸운다. 이는 연구가 밝힌 핵심 맥락과 맞물린다.
여성 리더가 구조적 행동을 할 때, 팀원들의 지지(follower support)가 있을 경우, 탈진 효과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출처: Lin, S. H. J., Woodall, J. P., Mitchell, M. S., Chi, N. W., & Johnson, R. E. (2025). The gendered nature of leader behaviors: Navigating stereotype threat from conservation of resources and gender role perspectives.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만약 선차장이 조직 내 누구로부터도 “그 기준 덕분에 명확해졌어요.” “선배님 스타일이 저는 좋아요.”라는 지지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이런 지지의 부재가 결국 그녀를 고립시키고, 피로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구조적 리더십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선차장이 힘든 이유는 방식이 아니라 그녀의 성별과 행동 사이의 불일치였다. 여성 리더에게는 “심리적 과세”가 붙는다. 같은 행동이라도 '여자라서 더 예민해'와 같은 인식이 무의식 중에 작동할 때, 그녀는 리더십 행동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정서적 자원을 소모한다.
리더십은 팀이 함께 만드는 것이다. 팀원이 던지는 긍정적 피드백이 여성 리더의 내면에서 탈진을 회복시키는 회복 자원이 된다.
우리는 여성 리더가 성공하려면 ‘차가워지거나 남자처럼 되어야 한다’는 잣대를 들이민다. 하지만 선차장 같은 리더가 심리적 자원을 고갈하지 않고, 자기다운 방식으로 구조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하려면, 팀과 조직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그녀가 싸우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것, 그녀의 리더십이 혼자가 아니라, 함께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1. 리더의 행동이 ‘성별 고정관념’에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때로는 남성 리더의 배려 행동도 위협일 수 있다. 리더십 개발 시, ‘행동 자체’보다 ‘내면의 반응’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2. 리더 개인이 아닌, 팀원들이 제공하는 ‘사회적 지지’가 핵심이다.
“팀장님, 그 방식 좋아요”라는 짧은 피드백이 심리적 자원 회복의 핵심 자원이 된다. 리더십 행동과 감정소진 사이의 연결고리를 조직이 인식하고 개입해야 한다.
3. 리더십 행동과 감정소진 사이의 연결고리를 조직이 인식하고 개입해야 한다.
조직은 팀 차원의 리더 피드백 구조를 설계하고, 리더십 행동의 심리적 비용을 감지하고 완충할 수 있는 문화적 기제를 갖춰야 한다.
리더십의 평등은 기회에서만이 아니라, 심리적 자원 비용에서도 논의되어야 한다. 구조적 행동을 하는 여성 리더에게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그 행동, 당신에게도 심리적으로 안전한가요?”,
“당신이 그렇게 행동해도 괜찮다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조직 안에 있나요?”
조직이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리더십 지원은 심리적 비용 없는 리더십 행동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