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직에서 기억되는 말 VS 잊히는 말

by 박진우

MIT의 단어 기억 실험이 말해주는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략


최근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에 게재된 MIT 연구진의 논문은 기억에 오래남는 말의 원리를 밝혀 흥미롭다. 연구진은 2,222개 단어를 대상으로 두 차례 대규모 인식 기억 실험을 수행했다. 참가자 1,300여 명에게 단어를 빠르게 제시하고,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동일한 단어가 다시 나타나면 ‘봤다’고 반응하도록 했다(Tuckute, G., Mahowald, K., Isola, P., Oliva, A., Gibson, E., & Fedorenko, E. (2025). Intrinsically memorable words have unique associations with their meanings.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


연구 결과, 전반적인 정확도는 약 80%로 높았지만, 단어마다 기억률 차이가 극명했다.

예를 들어, pineapple(파인애플) 같은 단어는 대부분이 정확히 기억했지만, happy(행복한)나 light(빛/가볍다)와 같은 단어는 쉽게 잊혔다.




연구의 결론은 명확하다. 동의어가 많거나 의미가 모호한 단어는 기억에서 희석되고, 특정 의미와 일대일로 연결된 단어는 오래 기억된다. 이 발견은 조직 내 학습과 커뮤니케이션에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MIT연구진이 들려주는 레슨을 조직 운영과 리더십에 활용해 보자.




1. 모호한 언어가 학습과 기억을 방해한다.


실험에서 happy 같은 단어는 잘 기억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joyful, glad, cheerful 등 수많은 동의어가 경쟁하면서 특정 기억 흔적(memory trace)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pineapple 같은 단어는 대체 불가능한 의미만 지니기 때문에 참가자들이 거의 잊지 않았다. 조직에서 흔히 쓰이는 “성과”, “혁신”, “협업”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알고 있는 말이지만, 각자가 떠올리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학습 효과와 기억 지속성이 낮다. 반면에, “OKR”, “6시 데일리 미팅”처럼 특정 맥락에 고유하게 연결된 표현은 오래 남는다.


연구의 첫번째 레슨: 모호하고 멋져 보이는 단어 대신, 구체적이고 고유한 표현을 사용하라.


2. 핵심 메시지는 ‘고유명사화’ 하라.


연구는 또 다른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light처럼 여러 의미를 가진 단어(다의어)는 기억이 흔들렸다. 한 번은 '빛'이라는 의미로 저장되고, 다음에는 '가볍다'로 인식되면, 뇌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처럼 여러 의미가 얽힌 단어는 학습에서 쉽게 사라진다. 반대로 pineapple처럼 단일 의미에만 연결된 단어는 거의 모든 참가자가 반복을 정확히 인식했다.

조직 커뮤니케이션에서도 마찬가지다. “Digital Transformation” 같은 추상적 구호는 다의적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X 프로젝트”처럼 고유한 이름을 붙이면, 팀원들이 쉽게 기억하고 공유한다.


연구의 두번째 레슨: 핵심 메시지를 브랜드화하고, 고유명사처럼 정착시켜라.


3. 단어 선택이 기억의 지속성을 좌우한다.


실험 데이터에 따르면, 동의어 수가 적은 단어는 그것만으로 전체 기억 정확도를 크게 예측할 수 있었다. 실제로 연구진이 통계 모델을 돌린 결과, 단어 빈도나 친숙성보다 동의어 수가 더 강력한 예측 변수였다.



이는 조직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메시지가 구체적일수록, 구성원들은 더 오래 기억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 “문제를 해결합시다” → “노션에 기록하고, 24시간 안에 1차 답변 합시다.”

- “고객 중심으로 일합시다” → “모든 보고서 첫 줄은 고객 이름으로 시작합시다.”


연구의 세번째 레슨: 단어 선택은 단순한 표현 문제가 아니라 학습 지속성을 결정한다.


4. 리더의 커뮤니케이션은 언어의 구체성과 고유성에 달려 있다.


MIT 연구에서 확인된 패턴은 리더십 언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동의어가 많거나 다의적인 말은 잊히고, 구체적이고 고유한 말은 남는다.

- “우리는 고객을 존중한다” (너무 일반적, 금방 잊힘)

- “고객 불만은 24시간 내 전화 회신” (구체적, 오래 기억됨)

실험에서도 happy와 light는 놓쳤지만, pineapple은 거의 모든 참가자가 기억해냈다. 리더의 메시지가 pineapple처럼 “대체 불가능한 언어”로 다가갈 때, 팀원들은 더 잘 기억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연구의 네번째 레슨: 리더의 설득력은 카리스마보다, 말의 고유성에 달려 있다.


MIT 연구가 조직에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기억에 남는 언어는 고유하고, 모호하지 않으며, 대체 불가능하다. 조직 학습과 커뮤니케이션의 성공 여부는 결국 “얼마나 구체적이고 고유한 언어를 남기느냐”에 달려 있다. 리더와 조직은 이제 추상적 구호 대신, 구성원들이 함께 기억할 수 있는 pineapple 같은 고유하고 구체적이며 대체 불가능한 언어를 만들어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왜 그녀는 리더가 된 후에 더 지쳐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