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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힘들다", 이 한마디가 아이의 수면을 바꾼다.

by 박진우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부모. "오늘은 진짜 힘들다…"라는 말이 무심히 흘러나온다. 그런데 이 말이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자녀의 수면 시간과 몸의 호르몬 리듬까지 흔들 수 있다면 어떨까?


최근 콜로라도 주립대학교 산업조직심리학과 킴벌리 프렌치(Kimberly A French) 교수 등은 이 질문을 연구했다. 연구진은 '<알로스테틱 부담(allostatic load)—스트레스가 몸에 축적되는 부담>이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도 전이(crossover)되는가?'라는 주제를 실험적으로 파고들었다(French, K. A., Smith, C. E., Lee, S., & Chen, Z. (2025). Can allostatic load cross over? Short-term work and nonwork stressor pile-up on parent and adolescent diurnal cortisol, physical symptoms, and sleep.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연구 설계: 가족의 일상을 8일간 추적


연구팀은 131쌍의 부모–청소년을 모집했다. 참가자들은 8일 동안 매일 같은 절차를 따라야 했다.


- 일일 스트레스 보고: 아침과 저녁, 부모와 자녀 모두가 전일 동안 겪은 직업/학교 스트레스 사건과 비직업(가정, 친구, 경제, 일상적 충돌 등) 스트레스 사건을 기록했다. 연구팀은 이를 stressor pile-up (스트레스 누적)으로 점수화하여, 하루뿐 아니라 최근 며칠간의 축적 효과까지 반영했다.


- 코티솔 채취: 연구 참여자들은 매일 여러 차례 타액 샘플을 채취했다. 기상 직후, 점심 무렵, 저녁, 잠들기 전 네 차례였다. 이를 통해 코티솔 일주기 곡선(diurnal slope), 즉 아침에 높게 시작해 저녁에 낮아지는 호르몬 리듬을 계산했다. 신체 증상 기록 두통, 복통, 피로감, 근육통 등 일상적 신체 증상을 자기보고 방식으로 기록. 수면 평가 매일 수면 시간과 주관적 수면 질을 보고했다.


이는 단발적 설문이 아니라, 가족 단위로 ‘스트레스 → 생리 반응 → 수면’의 일상 궤적을 실시간 추적한 것이다.


뜻밖의 연구 결과


- 부모의 직장 스트레스 → 부모 자신의 신체 증상 증가,

- 청소년 자녀의 스트레스 → 자녀 자신의 두통·피로 등 증상 증가.


여기까지는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부모의 비직업 스트레스가 높을수록 자녀의 수면 시간 단축이 관찰되었다. 반대로 청소년의 스트레스가 부모의 수면 패턴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즉, 스트레스의 교차효과(crossover)가 확인된 것이다. 특히 수면에서 이 효과가 두드러졌다.


수면: 가장 민감한 가족 스트레스 지표


연구 전반에서 가장 일관되게 나타난 교차효과는 수면이었다. 부모의 스트레스는 자녀의 수면 시간을, 자녀의 스트레스는 부모의 수면 질을 민감하게 흔들었다.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가족 시스템 안에서 스트레스 전이의 신호등 역할을 하고 있었다. 스트레스는 개인의 몸에만 남지 않고, 가족 내 공동의 생리적 리듬을 흔든다. 부모와 자녀는 각자 다른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것이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연결된다. 따라서 스트레스 관리는 개인 차원을 넘어, 가족 단위의 회복 루틴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스트레스가 가족 안에서 전이된다는 사실은 다소 무겁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 발견은 오히려 실천적 메시지를 전한다. 스트레스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그 영향을 최소화하는 작은 습관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집에 돌아와 무심코 “오늘 힘들다”라고 말하는 대신, “오늘은 이런 일이 있어서 좀 지쳤어. 잠깐 쉬면 나아질 것 같아”라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자녀는 단순한 불안보다는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자녀 역시 짜증이나 불면으로 반응할 때, 부모가 “왜 그래?”라는 훈계 대신 “오늘 어떤 일이 있었어?”라고 묻는다면 대화의 문이 열린다.


또한 연구팀이 강조했듯이, 수면은 가족 스트레스의 가장 민감한 지표다. 그렇기에 가족 전체가 함께 지키는 저녁 루틴이 중요하다. 10분 정도의 짧은 산책, 잠들기 전 하루를 돌아보는 대화, 일정한 취침 기상 시간을 맞추는 습관은 단순한 생활 관리가 아니라 가족의 생리적 리듬을 조율하는 장치가 된다. 더 나아가, 집에 들어오면서 서로의 에너지 상태를 “오늘 나는 7 정도로 피곤해”처럼 수치로 표현하거나, 시험 기간의 자녀가 “나 지금 긴장이 8이야”라고 말하는 연습을 한다면 가족은 서로의 신호를 빠르게 알아차리고 조율할 수 있다.


결국 스트레스 관리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단위의 회복 루틴을 설계하는 일이다. 작은 말 한마디, 함께하는 저녁 습관, 서로의 피로도를 나누는 대화가 부모와 자녀 모두의 몸과 마음을 가볍게 만든다. 연구가 보여주듯, 스트레스는 집 안에서 전이될 수 있지만, 동시에 회복 역시 전이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리듬을 함께 만들어갈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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