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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는 공감이 담겼고, '우리'에는 의미가 있다.

by 박진우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내러티브 관점(narrative perspective)은 오래전부터 중요한 주제였다. 사람들은 동일한 사건을 “내가 했다(I)” 혹은 “그가 했다(he)”처럼 서로 다른 시점으로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시점의 차이가 단순한 문체의 변화가 아니라 인지 수준(construal level)을 바꾼다는 것이다.


Zachary Niese(2025)의 연구는 이를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 1인칭 시점으로 제시된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세부적 해석을 촉진했고,

- 3인칭 시점은 더 추상적·원리 중심 해석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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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Niese, Z. A. (2025). He sees the forest, I see the trees: Narrative perspective shifts how abstractly people construe a text.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이처럼 작동하는 이유는 해석수준이론(Construal Level Theory, Trope & Liberman, 2010) 때문이다. 사람들은 심리적 거리(시간, 공간, 사회적 거리 등)가 멀수록 추상적이고, 가까울수록 구체적으로 해석한다.



한국어라는 언어적 맥락


하지만 영어 기반의 이 결과를 한국어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1. 주어 생략(Null subject language)

한국어는 대명사 주어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 영어: "I learned from my mistake."

- 한국어: “실수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이처럼 1인칭 표지가 약하므로, 단순히 I vs he 대비가 뚜렷하지 않다.


2. 집단주의 문화와 언어 습관

한국어는 개인보다는 '우리'를 강조하는 언어 습관이 있다(예: '우리 집', '우리 회사'). Hofstede의 문화 차원 이론에서 한국은 상대적으로 집단주의 성향이 강하며, 이는 언어에도 반영된다.


3. 정서적·관계적 거리의 강조
한국어 화법에서는 존칭, 겸양어, 간접 표현을 통해 심리적 거리를 조정한다.


따라서 영어 기반 연구에서 강조된 1인칭(I)과 3인칭(he/she)의 대비는 한국어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한국어는 주어를 자주 생략하고, 대명사보다는 ‘우리’라는 포괄적 표현을 선호하며, 존칭·겸양·간접 표현을 통해 정서적 거리를 조정하기 때문이다.


즉, 한국어 조직 커뮤니케이션에서는 '나 vs 우리'의 대비가 더 중요하다. 나(저)는 공감과 진정성을 이끌어내는 언어, 우리는 집단 정체성과 비전을 강화하는 언어로 기능한다.



조직 커뮤니케이션의 적용 원리


한국어 조직 커뮤니케이션에서는 내러티브 시점을 다음과 같이 재해석할 수 있다.


나/저:
구성원과의 심리적 거리 단축 → 공감, 진정성, 인간적 연결 강화
(예: “저도 처음에는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매일 시도하면서 배웠습니다.”)


우리:

심리적 거리를 넓히며 집단 정체성, 비전, 원칙을 강조
(예: “우리 조직은 실패를 자산으로 삼아 성장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어 조직문화에서 '우리'는 사회정체성 이론(Tajfel & Turner, 1986) 에서 설명하는 in-group identity의 강화와 연결된다.


4. 전략적 조합: 공감에서 비전으로

따라서 조직 메시지는 두 가지 시점을 순차적으로 연결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 도입부(1인칭)

“저는 이런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 심리적 안전감과 공감대 형성


- 전환부(우리)

“이 경험을 통해 우리 팀이 배운 것은…” → 개인 경험을 집단 지혜로 확장


- 결론부(우리 조직)

“우리 조직은 앞으로 이렇게 나아갈 것입니다” → 비전·정체성 내재화


이는 해석수준이론의 관점에서도 구체적 경험(근접 거리) → 추상적 가치(원거리)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여주기


조직 리더십 메시지의 본질은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 나/저는 나무처럼 구체적이고 친밀하다.

- 우리는 숲처럼 추상적이고 집단적이다.

한국어적 맥락에서 리더는 '저'와 '우리'를 오가며, 구성원에게는 공감의 다리를 놓고 동시에 비전의 나침반을 제시해야 한다. 효과적인 조직 커뮤니케이션은 언어의 인칭 선택이 곧 전략이다. 한국어적 맥락에서 진정성 있는 리더십 메시지는, 결국 <나에서 우리로 이어지는 서사> 속에서 가장 빛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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