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s don’t come easy to me
“Words don’t come easy to me
This is the only way for me to say I love you…”
— F.R. David, 1982
이 노래가 발표된 지 40년이 넘었지만, 제목은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심리학자들에게는 말이다. 최근 독일 울름대의 엘리자 알트가센(Elisa Altgassen) 교수팀은 이 제목을 그대로 빌려와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Altgassen, E., Schittenhelm, C., & Wilhelm, O. (2025). Words don’t come easy: How lexical difficulty of items and vocabulary of subjects (not) affect personality assessment.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만약 사람들이 성격검사 문항의 단어 뜻을 잘 모른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성격검사는 대부분 이렇다.
"나는 꼼꼼한 편이다."
"나는 변덕스럽지 않다."
그런데 '변덕스럽다(capricious)'라는 단어의 뜻을 정확히 모르면 어떻게 될까? 많은 사람은 대충 감으로, 혹은 중간쯤에 체크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과연 그럴까?
연구팀은 5,000개가 넘는 독일어 형용사 중에서 성격을 묘사하는 228개를 골랐다. 각 단어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제로 사람들이 아는지를 객관식 어휘 테스트로 확인했다.
예를 들어, considerate (사려 깊은)은 쉬운 단어, polemic (논쟁적인, 공격적인)은 어려운 단어로 분류됐다.
그리고 같은 단어들을 성격검사 문항으로 제시해, "이 형용사는 당신을 얼마나 잘 설명합니까?”라고 물었다. 결과는 명확했다. 난이도가 높은 단어일수록 정답률이 급격히 떨어졌고, 약 4분의 1 정도는 단어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답했다.
연구자들은 이제 Big Five(외향성, 신경성, 개방성, 성실성, 친화성) 검사를 ‘쉬운 단어 버전’과 ‘어려운 단어 버전’으로 나눠 실시했다.
예를 들어, 외향성 문항이라면 이렇다.
- 쉬운 버전: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 어려운 버전: “나는 convivial한 성향을 지닌다.”
그리고 참가자의 어휘력 수준도 함께 측정했다. 분석 결과는 놀라웠다. 쉬운 단어 세트는 기존의 Big Five 구조와 잘 맞았지만, 어려운 단어 세트는 완전히 별도의 요인(factor) 으로 묶였다.
어려운 단어들은 응답자의 성격을 반영하기보다 어려운 단어들끼리 일관되게 답하는 패턴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모르는 단어에 체계적 응답경향(Systematic Response Tendency)을 보인 것이다.
쉽게 말해, '모르니까 일단 긍정으로 답하자', '모르지만 대충 중간쯤 하자' 와 같은 무의식적 습관이 점수 패턴을 바꿔버린 것이다.
연구진들이 각 성격 요인의 ‘어려운 단어 요인’끼리의 상관을 분석했더니, 전혀 다른 영역(예: 외향성 vs 성실성)인데도 서로 강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결국, 어려운 단어는 '성격'이 아니라 '모르는 문항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측정한 셈이다. 그리고 대개는 긍정적인 반응 경향을 보였다.
왜 사람들은 어려운 단어에 긍정적으로 반응할까?
Cognitive Authority(인지적 권위)가 있다. 사람들은 단어가 어렵거나 기술적으로 들릴수록 그 문장을 더 “신뢰할 만하다” “전문적이다” “정확할 것이다”라고 평가한다.
인지적 권위 → 순응적 반응(Aquiesence)의 연결 메커니즘
인지적 권위가 순응적 반응으로 이어지는 데는 3 단계가 있다.
1. 낯선 단어를 마주함 → 인지 부하(cognitive load) 발생.
2. 의미 추론 실패 → 출처 기반 신뢰(heuristic): '전문가가 만든 문항이니 맞겠지.'라고 생각
3. 권위 신호에 순응적 반응(heuristic compliance) → ‘그렇다’ 혹은 ‘중간 이상’으로 응답.
모르는 단어가 지식적 위계를 만들어내고, 그 위계가 자동적 신뢰로, 다시 동의 반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인지적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사회적 단서를 활용(heuristic cueing)하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일상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회의에서 “시너지”, “패러다임 시프트”, “서브옵티멀” 같은 용어가 등장하면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해도 고개를 끄덕이는 반응을 보인다. 보고서에서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와 같은 학술 용어를 쓰면 내용이 정확히 이해되지 않아도 전문적이라고 느껴지는 반응을 보일 수 있다. HR 진단문항에서 “조직 내 윤리적 정합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조절을 수행한다”라는 문항에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좋은 말 같아서 동의하는 응답이 나올 수도 있다.
이 연구의 결론은 팝송 제목 그대로다.
“Words don’t come easy.”
단어는 쉽지 않다. 성격검사뿐 아니라, 리더십 진단, 조직몰입, 가치관 설문 등 모든 자기보고식 검사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그대로 존재한다.
많은 기업이 인성검사나 역량진단, 조직문화 진단 문항을 만들 때 좀 더 고급스럽게, 지적으로 보이게 하고 싶어 한다. 보고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연구는 이렇게 말한다. 단어가 어려워질수록, 측정은 정교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해력의 차이’가 ‘성격의 차이’로 오해받는다. 따라서 좋은 문항이란 짧고, 명확하며, 문화 및 언어적 편향이 최소화된 문항이다. 즉, ‘똑똑해 보이는 단어’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더 과학적이다.
F.R. David 노래의 한 구절처럼
“Words don’t come easy to me,
this is the only way for me to say I love you.”
단어를 찾는 일은 늘 어렵다. 심리검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정말 알고 싶은 건 사람의 성격이지, 그 사람이 얼마나 어려운 단어를 아는가가 아니다. 그러니, 다음에 누군가에게 성격검사를 건넬 때 이렇게 물어보자.
이 문항, 정말 당신이 ‘이해한 그대로’ 답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