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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트롤리 딜레마가 보여준 인간의 도덕 선택

by 박진우

트롤리 딜레마를 아는가? 질주하는 전차, 선로 위 다섯 명의 인부, 그리고 손잡이를 쥔 당신. 선로를 바꾸면 다섯 명이 살고, 한 사람이 죽는다. 이 손잡이를 당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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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은 1967년 필리파 푸트(Philippa Foot)가 제안한 이래 인간의 도덕성을 탐색하는 대표적인 실험이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상상 속에만 머물렀다. 당신의 선택은 실제로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위험 없는 도덕을 말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최근 벨기에 겐트대학교의 심리학자 Wouter Bostyn 연구팀은 이 상상의 한계를 현실에 구현했다(Bostyn, D. H., Gouwy, M.-C., De Craene, E., Vanmechelen, C., Scheirlinckx, J., Tissot, T. T., Van Severen, R., van den Bogaard, D., Waterschoot, M., Geenen, F., Depauw, H., Coenye, J., Taquet, J., Xu, X., Dierckx, K., Van Damme, S., Van Hiel, A., & Roets, A. (2025). Beyond hypothetical trolleys: Moral choices and motivations in a real-life sacrificial dilemma.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29(5), 834–849.).


가상적 상황이 아니라, 진짜 희생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행동할까?


연구진은 실제 전기충격을 동반한 현실의 희생 딜레마(real-life sacrificial dilemma) 실험을 설계했다.


실험: ‘진짜로’ 고통을 줄 수 있는 버튼


실험은 세 명의 피자(사실은 연구 조력자)와 함께 시작됐다. 두 사람은 전기충격 장치에 연결되어 있고, 세 번째 사람은 다른 장치에 연결되어 있다. 이제 실험에 참가한 당신은 선택을 해야 한다.

“당신은 두 사람에게 짧지만 고통스러운 전기충격을 가할 수 있습니다. 혹은, 한 사람에게 더 강한 전기충격을 주어 그 두 사람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전류의 세기는 통제되었지만, 참가자들은 충격음을 듣고, 희생자들의 얼굴을 보고, 고통의 표정을 직접 마주했다. 누군가의 고통이 눈앞에 존재하는 상황이다. 철학 교과서 속의 전차를 현실에 마주한 셈이다.


참가자들의 첫 번째 선택: 대부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첫 번째 시도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두 사람의 고통을 막기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대신,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다. 이는 전형적인 의무론적(deontological) 판단이다. 우리의 도덕적 직관은 ‘행동보다 방관이 덜 나쁘다’는 믿음에서 작동한다. 그런데 이 실험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두 번째 선택: 33%는 결정을 바꿨다


잠시 후, 참가자들은 다시 같은 선택을 마주했다. 이전과 같은 구조, 같은 희생자들. 하지만 이번에는 누가 충격을 받을지가 달랐다. 놀랍게도, 약 3분의 1(33%)의 참가자가 처음과 반대의 선택을 했다. 처음에는 버튼을 누르지 않았던 사람이 이번엔 눌렀고, 처음에 눌렀던 사람은 이번엔 가만히 있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답했다.
“아까는 A가 고통을 받았으니, 이번엔 B가 받아야 공평하죠.”
“같은 사람이 계속 당하는 건 불공평하잖아요.”
“한 사람에게만 모든 고통이 몰리면, 그건 정의롭지 않아요.”


즉, 이들은 더 많은 사람을 구하려는 계산, 최대다수의 최대행복(utilitarian choice)이 아니라, 고통 분배의 공정성(fairness)을 기준으로 판단했다. 사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도덕적 동기가 있다.

인간의 세 가지 도덕적 동기


1. 공평성(Fairness): 고통의 균형을 맞추려는 본능


사람들은 단순히 결과를 비교하지 않는다. 누가 얼마나 고통받았고, 고통이 균등하게 나뉘었는가를 고려한다. 사람들은 '한 번 고통을 받은 사람은 다시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태도를 보인다. 이는 공리주의와 의무론의 중간 어딘가에 있다.

‘최적의 결과’보다 ‘도덕적 균형’을 중시하는 것이다. Bostyn은 이를 도덕적 회계(moral accounting)라고 부른다. 한 번 해를 끼쳤다면, 다음엔 선을 행해야 도덕의 장부가 맞춰진다는 심리적 계산이다.


2. 책임 회피(Responsibility avoidance): “이번엔 내 손을 더럽히지 않겠다.”


처음에 버튼을 눌러 충격을 준 사람은, 다음에는 행동을 피했다.

“지난번엔 내가 했으니, 이번엔 가만히 있겠다.” 이것은 도덕적 부담을 분산시키려는 심리적 방어다.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가해자에서 관찰자로 되돌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엇이 정의로운 행동이냐보다 누가 책임지느냐에 더 민감하다.


3. 고통 분산(Shared suffering): “한 사람이 크게 아픈 것보다, 여러 사람이 조금씩 아픈 게 낫다.”


한 사람의 극심한 고통은 보는 이에게 강렬한 정서적 반응을 유발한다. 그에 비해 여러 명이 약하게 고통받는 상황은 심리적으로 덜 고통스럽다. 참가자들은 결과의 총량(total pain)이 아니라 분포(distribution) 에 반응했다. 고통이 분산될수록 덜 나쁘다고 느낀 것이다. 이는 인간의 판단이 이성적 계산보다 정서 조절 장치(emotional regulator)에 가깝다는 증거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Bostyn은 세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1. 가설적 사고와 실제 행동의 괴리

사람들은 가설 속에서는 논리로, 실제 상황에서는 감정으로 판단한다. 전류의 소리, 표정, 신음소리 등 구체성이 정서를 끌어올린다. 그래서 계산보다 공감이 앞서고, 원칙보다 균형이 중요해진다.


2. 도덕적 균형 회복(moral equilibrium)

인간은 도덕적 회계장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 한 번 빚을 졌다고 느끼면, 다음에는 그 균형을 맞추려 한다.


3. 직접적 행위의 부담(direct agency)

실험에서 충격은 직접 버튼을 눌러야 발생했다. 물리적 행위는 정서적 책임을 수반했다. 이 책임의 무게가 사람들을 공평성과 회피의 전략으로 이끌었다.


조직심리학에서 본 희생의 심리


이 연구는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문제이기도 하다. 리더는 종종 희생적 결정(sacrificial decision)을 내려야 한다. 예산 삭감, 인원 감축, 전략 변경 등 누군가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선택이다. 이때 리더는 대개 공리주의적 판단을 내린다.

“전체를 살리기 위해 일부를 희생시킨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구성원들은 다른 프레임으로 본다.
“고통을 나눴는가?”, “그 과정은 공평했는가?”

구성원들은 효율보다 공정한 고통 분배(fair pain-sharing)를 정의로 인식한다. 즉, 도덕적 수용성(moral acceptance)은 논리적 계산이 아니라 감정에서 결정된다.


이 관점은 CARAT의 형평민감성 요인과도 연결된다. 형평민감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단순한 보상-성과의 불균형보다 ‘누가 더 많이 희생했는가’, ‘고통이 공정하게 나뉘었는가’에 더 민감하다. 그렇기에 조직 변화 시, 리더가 성과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면 이들은 그 결과보다 감정적 불공정성에 반응한다.


반대로, 조직기반자긍심이 높은 구성원들은 자신이 조직의 일원으로서 ‘공동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고 느낄 때 이 희생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한다. 즉, ‘함께 견디는 고통’이 신뢰를 만든다.


조직이 위기 속에서 신뢰를 잃는 이유는 ‘누가 손해를 봤느냐’가 아니라, ‘그 손해가 얼마나 공평했느냐’에 있다. 리더가 책임을 회피하거나, 특정 집단만 지속적으로 희생된다면 조직의 ‘도덕적 균형’은 깨진다. 리더십의 핵심은 옳고 그름의 판단이 아니라 고통의 분배 설계(distribution of pain)일 수 있다.


리더는 고통을 포함한 감정의 분배를 설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리더가 그 고통 속에 얼마나 스스로를 포함시키는가가 중요하다. 이것이 조직의 도덕적 균형을 유지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다.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과 조직 신뢰(trust)의 출발점이 여기에 있다.


인간은 계산기가 아니라, 감정의 균형추다


트롤리 문제는 인간을 계산하는 존재로 그렸다. 하지만 실제의 인간은 균형을 추구하는 존재다. 인간은 수학적으로 옳은 선택보다 정서적으로 평형을 이루는 선택을 원한다. ‘누가 더 많이 아팠는가’, ‘나는 얼마나 책임을 졌는가’ 이 감정적 균형이 맞아야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인간에게 정의는 논리의 산물이 아니라, 고통의 공정한 분배다. 그리고 리더십은 이러한 감정의 작동법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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