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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더 도덕적인데, 왜 리더가 되면 달라질까?

by 박진우

여성은 남성에 비해 더 윤리적이다


심리학의 다수 연구는 여성이 남성보다 윤리적 판단에서 일관되고 정직한 경향을 보인다고 말한다. 개인적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상황(black lies)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훨씬 자주 거짓말을 한다. 여성은 동일한 조건에서도 타인에게 피해가 간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동해, 자기이익보다 도덕적 원칙을 우선하는 경향을 보인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도덕적 민감성(moral sensitivity)이라 부른다. 여성은 도덕 규범의 존재를 더 빨리, 더 강하게 인식한다.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여성의 도덕적 민감성(moral sensitivity)이 남성보다 높은 이유는 도덕이 단순한 추상적 규범이 아니라 생존 전략(survival strategy)으로 발달했기 때문이다.


1. 협력 기반 생존전략: 공동체 유지의 필수 조건


여성은 임신, 출산, 양육이라는 높은 신체적 부담을 지녔기 때문에 안정적 협력 네트워크가 생존의 핵심이었다. 남성은 위험을 감수하는 경쟁전략(risk-taking competition)으로 자원 접근을 늘렸다면, 여성은 관계적 안정(relational stability)을 확보해야 했다.


이에 따라 여성은 다음과 같은 심리적 특성을 발달시켰다.

- 신뢰 위반에 대한 높은 민감성: 관계 붕괴는 곧 생존 위협이었기 때문에, 거짓·기만·불공정에 더 강한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 사회적 조화와 공정성 추구: 협력의 지속을 보장하기 위해 도덕적 규범(social norm) 을 감시하고, 이를 위반하는 행동을 제지하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즉, 여성의 도덕적 민감성은 착해서가 아니라, 집단의 결속을 유지하기 위한 생존 메커니즘이다.


2. 양육과 공감의 진화: 타인의 정서 신호에 대한 예민함


여성의 도덕 판단은 종종 공감(empathy) 과 연관된다. 인류의 조상 사회에서 자녀 생존율을 높이려면 타인의 감정과 필요를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신경과학적으로는 거울뉴런 시스템(mirror neuron system)의 활성 차이가 이를 뒷받침한다. 여성은 타인의 고통·불공정·비난에 대한 정서적 반응(amygdala–insula circuit)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구조는 도덕적 공감(moral empathy)으로 연결된다. 여성은 타인의 피해를 보는 것만으로도 죄책감(guilt)이나 불편감이 촉발되고, 따라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부정직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성의 높은 도덕 민감성은 공감능력의 진화적 부산물이며, 이는 양육과 사회적 돌봄을 중심으로 형성된 기능이다.

3. 성 선택과 평판 관리: 도덕은 신호(signaling)


진화심리학자 David Buss와 Geoffrey Miller는 도덕성이 사회적 신호(social signal)로 작용한다고 설명한다. 남성은 지위와 자원을 과시(signal of dominance)하는 방향으로 경쟁했다면, 여성은 신뢰와 배려를 보여주는 방식(signal of trustworthiness)으로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여성에게 도덕적 평판은 짝 선택(mate selection)과 동맹 형성(coalition building) 모두에서 결정적이었다. 도덕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여성은 육아 파트너로, 협력 파트너로 더 선호되었고, 결과적으로 도덕적 감수성에서 사회적 성공으로 이어서 생존과 번식의 경로가 강화되었다. 이처럼 여성의 높은 도덕 민감성은 사회적 평판을 지키는 적응적 전략(adaptive strategy)으로 발달했다.


그렇다면, 여성 리더가 많을수록 조직은 더 도덕적이 될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리더가 된 순간, 윤리의 방향이 바뀐다.


최근 The Leadership Quarterly에 게재된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교 Kerstin Grosch 교수 등의 연구는 여성이 리더가 되어도 더 윤리적일 것이라는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주사위 실험(die-rolling task)을 통해 거짓 보고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참가자는 자신이 본 숫자를 직접 입력하는데, 높은 숫자를 입력할수록 보상이 커지는 구조였다. 이후, 같은 대상에게 이번엔 팀의 리더로서 다른 두 명의 보상까지 함께 결정하도록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개인적 상황에서 남성의 26%가 부정직하게 보고하고 보상을 획득한데 반해, 여성은 단 5%만이 부정직하게 보고했다. 그런데, 리더의 역할을 맡기니 달라졌다. 리더 상황에서 남성은 32%로 거의 변화가 없었지만, 여성은 달랐다. 24%로 무려 5배 가까이 증가했다. 혼자선 정직했던 여성이 리더가 되자 부정직률이 급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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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드라마틱한 변화에 대해 연구진은 이를 윤리적 반전(ethical reversal)이라 표현했다.


왜 이런 반전이 일어나는가?

1. 역할 전환: 나에서 우리로


리더가 되는 순간, 여성은 개인적 정직보다 조직적 책임의 관점으로 이동한다. Eagly & Karau(2002)의 Role Congruity Theory에 따르면, 여성은 리더 역할에 들어갈 때 좋은 리더는 팀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를 강하게 내면화한다. 여성은 자신이 정직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지만, 자신이 정직해서 팀이 손해 보면 더 큰 죄책감을 느낀다. 즉, 리더십의 역할이 여성의 도덕 프레임을 개인 중심에서 관계 중심으로 재구성한다. 이때 윤리는 정직성이 아니라 책임감으로 바뀐다.

2. 도덕적 정당화: 선한 거짓말


Gino 등(2013)의 연구를 보면, 여성은 거짓말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 죄책감이 사라진다고 보고한다. 여성이 친사회적 동기를 갖게 되면, 팀의 이익을 위한 거짓말을 도덕적으로 정당화(moral justification)하는 경향이 높다. 이러한 현상을 prosocial dishonesty(친사회적 부정직)라고 한다. 여성은 자신의 거짓말로 모두가 이익을 본다면, 옳은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즉, 부도덕이 아니라, 도덕의 재정의다. 여성 리더는 도덕의 기준을 개인의 정직에서 공동선(common good)으로 이동시킨다.


3. 사회적 기대


인상관리(impression management) 요인도 있다. 여성 리더는 사회적 평가에 더 민감하다. 이 연구의 후속 실험(Study 2)에 따르면, 여성 리더의 부정직성은 팀원들도 거짓말할 것이라는 신념이 있을 때 강해졌다. 즉, 여성 리더는 자신이 사회적 규범을 어기는 게 아니라, 이미 팀에 존재하는 규범을 따르고 있다고 느낀다. 다들 거짓말을 하니까 자신도 팀을 위해 그래야 하고, 리더가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이라 여긴다.


이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도덕적 의사결정의 성차(gender gap)가 아니다. 오히려 윤리적 리더십은 개인의 성향보다 역할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정직한 개인도 성과 압박과 집단 책임이 결합된 리더 역할을 맡으면 도덕적 유연성을 발휘하게 된다. 그래서 윤리적 리더십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정직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직함이 유지되도록 설계된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리더의 윤리는 리더의 성격이 아니라 구조가 만든다.


여성은 본래 남성보다 도덕적이다. 그러나 리더가 되는 순간, 도덕의 초점이 ‘자신’에서 ‘팀’으로 이동한다. 그 결과, 정직의 가치는 ‘공동의 이익’이라는 이름 아래 재해석된다. 이를 타락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만큼 리더십은 현실적이다. 현명한 리더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언제, 왜 거짓말을 하는지 알고 스스로의 행동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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