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강연에서 첫인상 효과를 설명한 적이 있다. 첫인상 형성은 말콤 글래드웰의 블링크에서는 2초라고 했지만, 실제 실험에서는 1/10초면 충분하다는 주장을 소개했다(Willis, J., & Todorov, A. (2006). First impressions: Making up your mind after a 100-ms exposure to a face. Psychological science, 17(7), 592-598.).
실험 설계는 매우 간단하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컴퓨터 모니터에 1/10초 동안 깜빡이는 사진을 보고 그 사람의 특징(정직성, 호감도, 공격성, 매력도, 유능함 등)을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사진을 오래 본 사람들이 평가한 결과와 비교해 보는 것이다. 찰나의 시간에 형성된 인상이 상대적으로 긴 시간 사진을 본 사람들의 평가와 유사하다면 두 집단은 비슷한 답을 내놓을 것이다.
실험 결과, 1/10초면 인상이 형성되었고 비교적 긴 시간 사진을 보고 형성된 인상과 거의 동일했다. 얼굴 생김새에 바탕을 둔 첫인상은 매우 빠르게 형성된다.
이 설명을 들은 한 참가자는 잠재의식 광고에 대해 물었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 형성된 인상이 실제 구매행동에도 이어질 수 있지 않냐는 질문이었다.
인상 형성과 구매 행동 간의 간극이 너무 크기 때문에 잠재의식 광고로 사람을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답을 했다. 그리고 이참에 잘못 알려진 잠재의식 광고에 대해 글을 써보기로 했다.
서브리미널(잠재의식) 광고 신화의 출발점은 잘 알려진 1950년대의 영화관 실험이다. James Vicary라는 마케팅 컨설턴트가 “Hungry? Eat Pipcorn”을 1/300초씩 삽입했더니 판매가 급증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훗날 인정했듯, 그 실험은 조작이었다. 이후 수십 년간의 연구는 일관된 결론을 내렸다. 초단기 메시지가 사람의 행동을 조종한다는 증거 없고, 특히, 장기적 행동 변화는 일어나지 않으며, 대중적 믿음은 과장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신화가 퍼졌을까?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설명하기 어려울 때,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서사를 더 쉽게 받아들인다. 통제감 상실이 음모론적 사고를 활성화한다는 연구(Whitson & Galinsky, 2008)는 이를 잘 설명한다.
사람들이 서브리미널 광고나 보이지 않는 힘을 쉽게 믿는 심리는 가짜 뉴스가 확산되는 메커니즘과 거의 같다. 핵심은 통제감이 무너질 때 생기는 인지적 불편감이다. Whitson & Galinsky(2008)이 보여주듯,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내가 뭔가 중대한 정보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우리는 우연한 자극에서도 패턴을 강제로 읽어내려 한다. 그 순간, 복잡한 현실을 단 하나의 원인으로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서사가 강력한 위안을 제공하면서 쉽게 믿음의 대상으로 바뀐다.
가짜 뉴스도 마찬가지다. 정보가 넘친다고 통제감이 높아지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주장, 불일치, 전문가의 상반된 해석이 난무할 때 그저 단순하고 일관된 설명을 찾는다. 그 설명이 비합리적이어도,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면 믿어버린다. 결국, 신화든 가짜 뉴스든, 사람들은 정보의 정확성보다 정서적 안정감과 통제감 회복을 우선시하면,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서브리미널 광고가 허구라고 해서 무의식도 허구인 것은 아니다.
현대 인지신경과학은 오히려 무의식적 처리가 매우 실재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Pessiglione et al.(2007)의 유명한 실험이 있다. 사람들에게 지각되지 않을 만큼 짧게 코인 이미지를 제시하면, 참가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fMRI에서 도파민 보상 시스템이 활성화되어 실제로 더 강하게 레버를 누르려 한다. 즉, 무의식은 자극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도 동기 수준을 조정한다. 하지만 이 조정은 어디까지나 미세한 조정이지 완전한 조종이 아니다.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고, 효과는 짧고 작다.
Karremans(2006)는 이를 더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Lipton Ice’라는 브랜드를 서브리미널로 노출하면, 목마른 사람에게만 구매 의도가 증가한다. 하지만, 목마르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 영향이 없다. 즉, 무의식적 자극은 이미 존재하는 욕구와 일치할 때만 작동한다.
첫인상 효과를 처음 언급한 심리학자는 Robert Zajonc다. Zajonc(1980, 1984)는 정서 우선성(affective primacy) 이론을 제시했다. 핵심은 단순하다. 정서적 반응은 인지적 해석보다 먼저 처리되며, 초단기 노출(수 ms)도 호감도/비호감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정서가 먼저 반응한다면, 광고로 사람 행동도 조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Zajonc는 정서적 태도(좋다/싫다) 수준에서의 자동 반응을 설명한 것이지, 복잡한 의사결정을 조작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신경과학연구는 이를 지지한다. 편도체(amygdala)는 10~30ms의 저해상도 자극에도 반응(Whalen, 1998)하지만, 이 반응은 원초적 신호에 불과하고, 복잡한 판단·행동은 전전두엽과의 상호작용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잠재의식 혹은 짧은 시간 동안 노출된 고아고는 초단기 정서 반응을 일으킬 수 있지만, 행동 조종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정서적 자동반응은 어디에 활용할 수 있을까?
정서 반응을 조종의 도구가 아니라 환경 설계의 원리로 바라보면, 정서적 자동반응은 매우 유용하다.
1. 반복 노출 → 친숙성 → 호감 증가(mere exposure effect)
- 로고, 색상, 톤의 일관성은 신뢰감 형성하기 때문에 조직의 메시지 톤&매너도 같은 원리에서 설계해야 한다.
2. 정서적 톤이 내용보다 먼저 소비됨(thin slice judgment)
- 첫 30초의 표정이나 톤이 신뢰감에 결정적일 수 있기 때문에 발표, 면접, 커뮤니케이션에서 첫인상 효과를 특히 중요시 해야 한다.
3. 정서 상태에 따라 사고방식이 바뀜(affective priming)
- 긍정 정서는 창의적 사고, 확장적 사고에 영향을 주고, 부정 정서는 분석적 사고, 위험 감지력 증가시킨다.
무의식은 조작의 대상이 아니라, 환경 설계의 원리에 활용되어야 한다
무의식적 혹은 잠재의식의 조작은 당신의 행동을 조종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정서적 톤과 친숙성, 연상 기제가 당신의 인지적 접근 방식에는 영향을 준다.
무의식은 숨겨진 절대적 조종자가 아니라 빠르고 자동적이며, 정서 중심의 처리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이해하면 우리는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 리더십, 직원 경험(employee experience)을 설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