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교육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조언 중 하나는 부하직원을 잘 도와라이다. 리더의 도움 행동이 전이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최근 홍콩성시대학 경영대학원 김주형 교수 등은 리더의 도움 동기(Helping Motive)가 때로는 직원의 자율감을 위협하고, 조직시민행동(OCB)을 낮추며, 심지어 부정적 행동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Kim, Joohyung & Yoon, Soohyun & LePine, Jeffery & Wang, Danni & Waldman, David. (2025). Supervisor Meddling: How Supervisor Helping Motives Can Invite Negative Employee Behaviors—And the Moderating Role of Perspective‐Taking. Personnel Psychology.).
즉, 잘해보려는 리더일수록 팀의 몰입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다수의 기업에서 상사-직원 대응(dyadic) 데이터를 수집했다. 각 상사는 자신이 도움을 주려는 정도(Helping Motive)를, 직원은 상사의 행동을 어떻게 인식하고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보고하였다. 측정 변수는 다음 세 가지였다.
1. Supervisor Helping Motive: 상사가 직원을 돕고자 하는 정도
2. Employee Negative Behavior / OCB: 직원의 부정적 행동(회피, 냉소)과 조직시민행동(자발적 협력, 책임감)
3. Employee Perspective-Taking: 직원이 상사의 입장을 이해하고 상황을 맥락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정도
연구 결과는 놀라웠다.
상사의 도움 동기가 높을수록, 직원의 OCB는 유의하게 낮아졌다. 즉, 도움을 많이 주는 상사일수록 직원이 자발적으로 돕거나 협력하려는 행동이 감소했다. 또한, 상사의 도움 동기가 높을수록, 직원의 부정적 행동은 증가했다. 상사가 도울수록 직원들은 냉소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부하직원의 관점수용(Perspective-Taking)능력은 이 부정적 관계를 완충했다. 상사의 개입이 불편하게 느껴지더라도, 직원이 상사가 왜 개입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때, 부정적 반응이 약화되었다.
윗쪽 그래프는 상사의 개입이 직원의 상사지향 조직시민행동(Supervisor-Directed OCB)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관점수용이 낮은 직원(점선)은 상사의 개입이 커질수록 OCB 점수가 꾸준히 감소하는 기울기를 보인다. 이는 상사가 자신을 믿지 않는다라는 해석으로 이어지는 전형적 반응이다. 리더의 도움을 통제 행위로 인식하면서, 굳이 상사를 위해 자발적으로 더 도울 필요가 없다는 심리적 철수(disengagement)가 발생한다.이로 인해, '내가 뭘 해도 상사가 다 간섭할 텐데'라고 생각하며 방관적 순응상태로 바뀐다.
반면, 관점수용이 높은 직원(실선)은 반대로 상승 기울기를 보인다. 이들은 상사의 개입을 ‘감시’가 아닌 ‘책임 분담’으로 해석한다. '팀장도 부담을 느끼고 있구나', '이 상황에선 함께 대응해야겠구나' 라는 인식이 OCB를 높인다. 리더의 개입이 불편하기보다 지원으로 읽히며, 상사를 향한 협력과 충성행동이 촉발된다. 즉, 관점수용이 높을수록 도움은 관계적 유대감으로 전환된다.
아래쪽 그래프는 상사의 개입이 직원의 반생산적 직무 행동(CWB: Counterproductive Work Behavior), 특히 상사에게 향하는 부정적 행동(Supervisor-Directed CWB)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관점수용이 낮은 직원 (점선)의 경우, 개입이 늘어날수록 CWB 점수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기울기를 보인다. 리더의 도움을 '불필요한 간섭', '자율성 침해', '과잉관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는 조직심리학적으로 심리적 리액턴스(reactance), 즉, 자율을 침해받았을 때 발생하는 반발의 전형적 패턴이다.
자신에게 결정권이 없다면, 최소한 수동적으로 저항하겠다는 태도로 형식적 순응, 정보 은폐, 늦은 보고, 무의욕적 태도 등으로 표출한다. 즉, 통제가 강화될수록 보이지 않는 반항이 자라난다.
관점수용이 높은 직원(실선)은 상사의 개입을 상사도 자신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리더의 개입이 자율 침해로 느껴지지 않고, 조직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정서적 의미로 전환된다. 불만 대신 공감이, 저항 대신 책임감이 강화된다. 즉, 관점수용은 반발을 협력으로 전환시키는 인지적 완충장치다.
연구의 핵심은 도움이라는 행위가 아니라, 그 도움을 직원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있다. 상사의 개입이 '나를 믿지 않는다', '내 일을 빼앗는다'로 인식되는 순간, 자율감은 붕괴된다. 자율감(Self-determination)은 인간의 내적 동기 구조의 핵심이며, 이게 무너지면 조직시민행동(OCB)처럼 자발적 협력 행동이 급감한다.
그러나, 만약 직원이 상사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면(예: 마감 압박, 외부 리스크 등), 동일한 개입을 지원(support)으로 해석한다. 이때 부하직원의 관점수용(perspective-taking)은 도움과 간섭을 구분 짓는 인지적 완충장치로 작동한다.
같은 행동이라도 '왜'를 이해하면 간섭이 아니다. '왜'를 모르면 리더의 진심도 통제가 된다.
이 메커니즘은 한국 기업에서 더욱 뚜렷하게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권위주의적 문화에서는 상사가 대신 해주는 행동이 돌봄으로 포장되기 쉽다. 그러나 개인의 자율성이 중요해진 MZ 세대에게 그 행위는 불신의 신호로 해석된다. 상사의 의도는 도움 행동이지만, 부하직원은 불신으로 해석해 책임을 회피하거나 냉소적 태도를 보일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의견에 대해 가치감을 못느낄 수 있어 창의성이 저하되고 무력감을 느낄 수도 있다.
조직문화가 수직적일수록, 도움의 순수성은 왜곡되고 통제의 상징으로 바뀌기 쉽다. 이것이 바로 Supervisor Meddling의 증폭 메커니즘이다.
이 연구는 도와주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도움을 ‘행동’으로 하기보다 ‘맥락과 의미’로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더가 개입하기 전, 다음 세 가지 질문을 반드시 던져야 한다.
1. 이 개입은 누구의 필요에서 비롯된 것인가? 팀의 필요인지, 나의 불안감 때문인지 점검하라.
2. 이 도움은 부하직원의 자율을 침해하지 않는가?대신 해주기가 아니라 함께 하기로 설계하라.
3. 구성원은 나의 의도를 이해하고 있는가? 관점수용을 가능하게 하는 설명, 즉 '왜 지금 개입하는가'를 명확히 말하라.
이 세 가지 루틴만으로도, 도움은 통제가 아닌 심리적 지지(psychological support)로 전환된다.
Supervisor Meddling 연구는 리더십의 본질을 재정의한다. 리더십이란 자신이 직접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팀원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즉, help less, support more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