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이 문장은 오래도록 조직 교육 현장에서 거의 신화처럼 반복되어왔다. 칭찬만 잘하면 사람의 동기가 살아나고, 성과가 오르고, 팀 분위기가 좋아진다는 서사다.
하지만 실제 조직에서 리더로 일해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절반만 맞는 이야기인지 이미 알고 있다.
- 칭찬해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 칭찬했는데 오히려 부담스러워하거나 뒤로 물러나는 사람들
- 진심이 왜곡되어 ‘형식적’이라고 느끼는 순간들
또 하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에서 말하는 칭찬 10계명을 외우고 다니며 실천하는 사람도 없다.
진정성 있는 칭찬을 하려면 이 10계명을 늘 실천하고 살아야 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도 성경의 10계명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살지는 않는다. 문제는 칭찬에 진심이 부족해서도, 빈도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심리학에서 칭찬의 효과는 구조적으로 결정된다. 바로 Salience × Relevance, 이 두 축의 결합이다. 10계명까지 필요없다. 단 두 요인만 이해하면 된다.
칭찬이 실제로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필터를 통과해야 한다.
1. Salience: 칭찬이 선명한가? (Feature Integration Theory(Treisman & Gelade, 1980))
칭찬은 구체적이고, 선명하고, 명확해야 한다. 어떤 행동이, 어떤 순간에,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를 정확히 짚어야 주의를 끌 수 있다.
칭찬을 들었을 때, 상대의 주의가 즉각적으로 걸리는지가 중요하다. Feature Integration Theory(Treisman & Gelade, 1980)에 따르면, 인간은 시각, 청각, 언어적 정보 중 대비되는 특징에 자동적으로 주의를 쏠린다. 특정한 색, 크기, 위치, 형태가 주변 정보와 달라지면 주의는 자연스럽게 그 지점에 고정된다. 이는 칭찬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모호한 표현(“좋았어”, “잘했어”)은 주변 소음처럼 흐려진다. 반면, 특정 행동, 맥락, 결과를 명시한 표현은 주변 언어적 환경에서 튀는 특징을 가진다.
“오늘 회의 막판에 네가 제시한 ‘리스크 재정의’ 한마디가 팀의 논의를 정리했어.”
→ 구체적 행동 + 특정 순간 + 명확한 결과 = 높은 Salience
따라서 칭찬에서 Salience를 확보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구체적 순간 + 구체적 행동 + 구체적 결과를 말하면 된다. 이렇게 Salience가 높아지면, 칭찬은 주의 필터를 확실하게 통과해 의미 처리 단계로 이동한다.
하지만, 이걸로 부족하다.
2. Relevance: 그 말이 내 이야기인가?(Craik & Lockhart, Levels of Processing(1972))
칭찬이 선명하다고 해서 상대가 행동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그 칭찬이 ‘나의 가치·강점·정체성’과 연결될 때 비로소 깊은 영향력을 가진다. Craik & Lockhart(1972)의 처리수준 이론(Levels of Processing)은 이 지점을 명확히 설명한다.
1972년 Craik & Lockhart는 기존의 저장소 중심 모델(감각기억-단기기억-장기기억)을 뒤집는 혁신적인 주장을 내놓는다. 기억의 지속성은 저장 위치가 아니라 처리의 깊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 표면적 처리(shallow processing): 금방 사라짐, 듣고 끝난다.
- 의미적 처리(semantic processing): 오래 남음, 이해하고 기억한다.
- 자기참조 처리(self-referential processing): 가장 오래 남음, 정체성에 연결돼 행동변화로 이어진다.
이 이론은 칭찬의 효과를 설명할 때 완벽히 들어맞는다. "잘했어"가 쉽게 잊히는 이유는 얕은 처리(shallow processing)이기 때문이다.
“잘했어.”, “좋았어.”,“고생했어.” 이런 말들은 표면적 처리에 머문다. 구체적 맥락이 없고, 행동과 의미 연결도 없으며, 정체성 연결도 없다.
Treisman의 선택적 주의이론에 따르면 주의 필터를 통과하지 못한 정보는 쉽게 제거된다. Anne Treisman은 인지심리학에서 주의(attention) 연구의 형성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학자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이후 행동경제학과 인지심리학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Daniel Kahneman과 결혼해 학문적, 개인적 삶을 함께했다는 사실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영역, Treisman은 기초 인지(어떤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느냐) 분야를, Kahneman은 고차 인지(어떤 판단을 하느냐)를 연구했지만, 인간 정보처리의 핵심을 공유했다.
Treisman이 제시한 감쇠 이론(attenuation theory)은 기존 Broadbent의 완전 필터 모델(filter model)을 정교하게 보완한 접근이다. Broadbent는 불필요한 자극이 초기 단계에서 완전히 차단된다고 보았지만, Treisman은 이 설명이 현실의 주의 현상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인간의 주의가 특정 정보를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도가 낮은 자극의 강도를 감쇠시키는(attenuate) 방식으로 처리하며, 그 자극들이 여전히 낮은 수준에서 인지 시스템에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개인적 의미를 갖거나 중요도가 높은 자극은 감쇠된 상태에서도 주의 필터를 통과해 의미 처리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 Treisman 모델의 핵심이다.
시끄러운 장소에서도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 들리는 이유, 단체 사진 속에서 당신의 얼굴이 눈에 띄는 이유, 개인적으로 중요한 단어가 배경 속에서도 갑자기 튀어나오는 이유가 바로 이 메커니즘이다.
"너다운 강점이 드러났어"가 왜 사람을 움직이는가? 깊은 처리 + 자기참조가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네가 강조해 온 정확함이 이번 의사결정의 핵심이었어.” 여기에는 세 가지 인지 과정이 동시에 일어난다.
- salience: 중요한 순간(Issue)와 행동(Action)을 명확히 지목
- deep semantic processing: 의미적 연결 제공
- self-referential encoding: “이건 내 강점이다”라는 정체성과 연결
자기 관련 정보는 정체성 기반 기억 저장 회로가 작동한다. 이후 사람들은 이 정체성과 일관된 방식으로 행동하려 한다(Swann의 Self-Verification Theory).
1. High Salience × High Relevance (최고의 칭찬)
— 정체성 강화 + 행동 변화
사례: 기획팀의 꼼꼼함을 정체성으로 가진 분석가 J
J는 스스로 정확성과 정교함을 강점으로 생각하고 있고, 동료들도 그 부분을 인정한다.
리더의 칭찬: “오늘 회의에서 너가 분석한 시나리오 B가 팀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아주 크게 기여했어. J가 데이터의 정확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그 강점이 그대로 드러났어.”
J의 내부 처리 과정:
- Salience: “어떤 순간에, 어떤 행동이, 어떤 결과를 냈는지”가 매우 구체적
- Relevance: 나의 핵심 가치인 ‘정확성’과 직접 연결
- Processing depth: 의미적 처리 + 자기참조 처리로 깊게 저장
결과 행동: 행동 패턴이 ‘나다움(identity)’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강화, 정체성 기반 동기(identity-based motivation)가 활성화되어, 리더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행동한다.
2. High Salience × Low Relevance
— 강한 압박, 방어적 태도 및 반발
사례: 마케팅팀의 감각형 디자이너 H
H는 창의성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팀장은 수치 기반 논리를 강조하는 편이다.
리더의 칭찬: “이번 캠페인 디자인을 빠르게 수정한 건 좋았어. 하지만 다음부턴 분석적 접근을 좀 더 강화해. 앞으로는 숫자 중심으로 정확하게 결과를 내야 해.” (칭찬처럼 시작하지만 끝은 지시/통제)
H의 내부 처리 과정:
- Salience: 매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메시지 (주의는 끌림) 하지만 Relevance: 자신의 정체성과 충돌(나는 숫자로 평가받는 사람이 아니다)
- Processing depth: 자신을 부정하는 신호로 의미 처리로 Reactance 발생.
결과 행동: 작업 참여도 감소 및 상사와 거리두기. Salience만 높으면 칭찬이 아니라 압박이 된다.
3. Low Salience × High Relevance
— 좋은 말인 줄은 알지만, 구체화가 되지 않아 인정 결핍을 느낌.
사례: 신입사원 L (성장형)
L은 스스로 성장 마인드가 강하고, 작은 배움에도 의미를 둔다. 그러나 팀장은 말수가 적고 칭찬을 단순하게 한다.
리더의 칭찬: “어… 요즘 많이 좋아졌어. 계속 그렇게 해봐.”
L의 내부 처리 과정:
- Salience: “무엇이, 어떤 점에서, 어떤 상황에서 좋아졌는지” 아무 구체성 없음.
- Relevance는 사실 존재함: L은 노력하고 있고 L 입장에선 피드백이 중요함.
- Processing depth는 shallow로 처리됨. L은 리더가 자신의 노력의 핵심을 못 보고 있다고 느낌
결과 행동: 의욕이 반감되고 관계 신뢰가 약화됨. Relevance는 잠재되어 있으나 Salience 부족으로 인정 욕구 충족 실패.
4. Low Salience × Low Relevance
— 칭찬인지도 모르는 무의미한 말
사례: 업무 몰입이 높은 전략팀 K
팀장은 바빠서 평소 직원들과 짧게만 소통한다.
리더의 칭찬: “괜찮았어. 수고했어.”
K의 내부 처리 과정:
- Salience 없음: 구체성 결여
- Relevance 없음: 가치·정체성·의도와 연결되지 않음
- Proocessing depth: 표면적 처리, 즉각적 휘발
결과 행동: 칭찬 효과 없음. 이 영역의 칭찬은 심리적, 인지적 영향력이 사실상 없음.
Salience × Relevance 프레임은 구조적 질을 통해 칭찬의 효과를 설명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힌다. 다름 아닌 Relevance를 정확히 맞추는 문제다. 사람마다 가치가 다르고 강점이 다르고 의도가 다르고 동기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CARAT의 성격지능(Personality Intelligence)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CARAT은 12요인 기반으로 개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행동의 기반이 되는 성향, 정서적 반응 패턴과 성정과 몰입의 트리거를 정교하게 파악한다.
즉, CARAT 요인을 아는 리더는 무작정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심리 구조에 맞는 Relevance를 정밀하게 조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 R(회복탄력성) 높은 사람에게는 “문제 해결자로서의 너”
- GS(성장마인드셋) 높은 사람에게는 “성장 과정에서 드러난 너”
- T(조직신뢰) 높은 사람에게는 “신뢰를 중요시 하는 너”
- ES(형평민감성) 높은 사람에게는 “기준을 세우는 너”
이렇게 정체성 스키마에 정확히 닿는 칭찬이 가능해진다. Salience는 ‘방법’, Relevance는 ‘대상’, 그리고 CARAT은 ‘정밀한 매칭 시스템’이다.
칭찬이 효과를 가지려면 Salience(보이게 하는 힘) × Relevance(내 이야기로 처리되는 깊이), 이 두 가지 축이 동시에 작용해야 한다.
그런데 Relevance를 정밀하게 조준하려면 그 사람의 심리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CARAT의 성격지능(Personality Intelligence)은 리더에게 그 사람의 내부 지도를 읽는 능력을 제공한다. 좋은 칭찬은 사람이 아니라 정체성을 움직인다. 그리고 정체성을 움직이는 리더십 뒤에는 반드시 성격지능이 있다.
이것이 조직에서 칭찬이 진짜 힘을 발휘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