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를 처음 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이게 정말 기계가 만든 거라고?', '인간보다 나은 것이 아닌가?'
AI가 만든 소설, 그림, 보고서, 코드 같은 결과물을 처음 보는 순간은 경외(awe)였다. 인간 능력의 경계를 넘어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제 인간의 창의성도 끝난 것 아닐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AI도 별거 아니네.”,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처럼 보였던 AI가 어느 순간 비교 대상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하향 비교 대상이 된다.
최근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발표된 연구 “Does Artificial Intelligence Cause Artificial Confidence? Generative Artificial Intelligence as an Emerging Social Referent”는 바로 이 변화의 심리를 설명한다. 연구자들은 이 현상을 Artificial Confidence(인공 자신감)라고 부른다. 그리고 더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과정이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사회심리학에서 인간의 자기평가의 원리를 잘 설명한 이론이 바로, Festinger의 사회적 비교 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이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만으로 자신을 판단하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와 비교한다. 예를 들어 내가 일을 잘한다는 것은 동료보다 일을 잘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교 과정은 의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자동적으로 주변을 기준점으로 삼는다.
여기서 연구자들은 최근 하나의 중요한 변화를 지적하는데, 바로 AI가 인간의 새로운 사회적 비교 기준(social referent)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AI 결과물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능력과 비교해 자신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
연구자들은 이를 검증하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에게 시나 창의적 아이디어 같은 결과물을 보여주고 이렇게 설명했다.
- 집단 A: 'AI가 만든 작품'이라고 안내
- 집단 B: '사람이 만든 작품'이라고 안내
심리학 실험이 대부분 그렇듯, 작품의 내용은 동일했다. 단지 출처만 다르게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참가자들에게 물었다.
- 나는 이런 과제를 잘할 수 있다.
- 나는 창의적인 사람이다.
- 나는 이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결과는 명확했다. AI 작품을 본 집단의 자신감이 더 높았다. 즉, 실제 능력의 변화 없이 AI와 비교만으로 자신감이 상승했다. 흥미로운 점은 참가자들이 이런 Artificial Confidence를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출처: Reich, T., & Teeny, J. D. (2026). Does artificial intelligence cause artificial confidence? Generative artificial intelligence as an emerging social referent.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사람들은 비교 대상이 사람일 때에 비해 AI일 때, 창의적 콘텐츠(Creative Content)에 대한 자신의 자신감은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창의적 콘텐츠의 저자 능력(author’s ability)에 대해서는 AI 저자보다 인간 저자의 능력을 더 높게 평가했다. 즉, 사람들은 창의 영역에서 AI를 인간보다 덜 유능한 창작 주체로 인식하면서 이를 무의식적인 하향 비교 기준으로 사용하고, 그 결과 자신의 창의적 능력에 대한 자신감은 오히려 더 높게 형성되는 경향을 보였다. 한편 사실 기반 콘텐츠(Fact-Based Content)에서는 AI와 인간 저자의 능력 평가 차이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에서도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첫 번째 이유는 기술에 대한 경외는 빠르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은 처음에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반복 경험이 쌓이면 사람들은 점점 기술의 한계를 발견한다. AI의 맥락 이해 부족, 반복되는 표현, 미묘한 감정 표현의 한계 등의 기술적 약점이 보이기 시작하면 AI는 더 이상 경외 대상이 아니라 평가 대상이 된다.
두 번째 이유는 인간은 비교 기준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정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 향상 동기(self-enhancement motive)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비교 구조도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하향 비교로 이동하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처음엔 천재로 보였던 사람들을 자주 접하다보면 자신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 번째 이유는 AI가 안전한 비교 대상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비교하면 위협이 생긴다. 동료가 더 뛰어나면 불편하고, 자존감이 흔들린다. 하지만, AI는 다르다. AI는 승진 경쟁자도 아니고 사회적 평판 경쟁자도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편하게 '인간이 더 낫다.'고 얘기할 수 있다. 이때, AI는 자연스럽게 하향 비교 대상이 되는 것이다.
AI는 동시에 두 가지 상반된 효과를 만든다. 한편으로는 AI는 인간 능력을 위협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자신감을 높인다. 그런데, 우리가 AI를 보면서 느끼는 자신감은 실제 능력 향상이 아닌, 자기 인식의 착각이다.
따라서, AI 시대에는 단순히 AI를 잘 사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이 정말 높아진 것인지 판별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 능력은 인간이 AI와 함께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심리적 메타인지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