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시민 작가가 매불쇼에 출연해 제기한 'ABC론'이 화제다. 'ABC론'은 이재명 대통령 지지층을 가치와 이익을 기준으로 분류한 정치적 분석이다.
A그룹 (가치 지향):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의 가치를 공유하는 '코어 지지층'
B그룹 (이익 지향): 자신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 친명을 자처하는 그룹으로, 위기 시 가장 먼저 등을 돌릴 수 있는 '라이트 지지층'
C그룹 (혼재): 가치와 이익을 모두 추구하는 지지층
유시민 작가는 이익만 쫓는 B보다는 어려울 때 곁을 지키는 A그룹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B그룹이 친명임을 내세우는 것을 비판했다.
이 단순한 구분은 매우 강력하다. 한 장의 벤 다이어그램이 최근 정치 이슈를 빠르게 빨아들이는 이유다. 나는 유시민 작가의 분석을 심리학의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가치와 이익 구도는 인간이 정보를 처리하고 판단을 내리는 인지 시스템의 구조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심리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판단이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증명했다. 흔히 Dual Process Theory로 알려진 이 이론은, 인간의 사고를 빠르고 직관적인 체계(System 1)와 느리고 분석적인 체계(System 2)로 구분한다. Dual Process의 의미는 인간이 판단할 때, 하나의 경로만 갖는 것이 아니라, 두 경로를 동시에 작동시키되, 상황에 따라 어느 한쪽이 더 우세하게 판단을 이끈다는 데 있다.
A그룹 즉, 가치나 도덕적 판단은 직관적 체계에 강하게 의존한다. Jonathan Haidt는 도덕 판단이 기본적으로 직관에 의해 먼저 일어나고, 그 이후에 이유가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먼저 '이건 틀렸다'는 느낌을 갖고, 그 다음에 그 판단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만든다. 그리고 이 과정은 매우 빠르고 확신에 차 있다. 그래서 도덕적 판단은 논리적 검토보다 앞서며, 논리를 압도한다.
반면, B그룹 즉, 이익을 중심으로 한 판단은 System 2의 경로를 따른다. Daniel Kahneman과 Keith Stanovich의 연구가 보여주듯, 인간은 분석적 사고를 통해 확률, 비용, 효용을 고려하며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 과정은 상대적으로 느리고, 더 많은 인지 자원을 요구한다.
그런데, Herbert Simon이 제시한 bounded rationality 개념이 보여주듯, 인간의 합리성은 근본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처리할 수 없고, 제한된 자원 속에서 ‘충분히 괜찮은’ 결정을 내릴 뿐이다. 결국, 인간은 도덕적 직관과 계산적 판단 사이에서 끊임없이 오가며 이 둘은 종종 충돌한다.
그렇다면 이 두 판단을 동시에 다루는 것이 가능할까? C그룹의 심리학적 근거가 바로 Integrative Complexity다. Suedfeld와 Tetlock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사고는 단순히 하나의 관점에 머무르는 수준에서 벗어나, 서로 상충되는 관점을 동시에 인식하고, 나아가 이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통합적 사고는 도덕과 효율을 동시에 고려하는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즉, '옳은가'와 '효과적인가'를 분리하지 않고 함께 다루는 방식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반전이 존재한다. Tetlock의 연구는 통합적 사고가 반드시 더 나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통합 수준이 높아질수록 판단은 정교해지지만, 동시에 결정 속도는 느려지고, 정치적 상황에서는 오히려 불리해질 수 있다. 즉, C그룹과 같은 교집합이 이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여기까지가 유시민 작가의 분석을 심리학자의 눈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유시민 작가가 놓치고 있는 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유시민 작가의 분류는 A-B-C가 비교적 안정된 특성처럼 존재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심리학, 특히 조직심리학의 연구는 인간이 가치 중심형이나 이익 중심형으로 고정된 존재라고 보지 않는다. 인간의 판단은 고정된 성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특정한 상황에서 활성화되는 상태(state)의 성격이 더 강하다. 같은 사람도 어떤 순간에는 가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다른 순간에는 이익을 중심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전환을 촉발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대표적인 것이 스트레스와 인지적 부담이다. Baumeister의 자아 고갈(ego depletion) 연구나 다양한 cognitive load 연구들은 인지 자원이 부족해질수록 사람이 복잡한 판단을 유지하지 못하고, 보다 단순한 하나의 프레임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쉽게 말해, 여유가 있을 때는 가치와 이익을 함께 볼 수 있지만, 압박이 커질수록 사람은 둘 중 하나만 붙잡게 된다.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정체성이다. Motivated Reasoning 연구는 사람들이 진실을 있는 그대로 찾기보다, 자신의 신념과 정체성을 지키는 방향으로 정보를 해석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비교적 일관된 패턴이 나타난다. 자신의 가치가 위협받는다고 느끼면 사람은 더욱 강하게 옳고 그름의 판단으로 기울어진다. 반대로 비판이나 실패를 경험해 심리적 부담이 커지면, 그것을 견디기 위해 더 냉소적이고 계산적인 판단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가치와 이익은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강화되거나 약화되는 상태에 가깝다. 따라서 누군가를 단순히 A형, B형, C형으로 나누는 것은 설명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어도, 인간 판단의 실제를 충분히 보여주지는 못한다.
이점에서 CARAT은 꽤 유용한 설명 도구가 된다. 왜냐하면 CARAT은 사람들이 어떤 심리적 조건에서 어떤 판단이 더 쉽게 활성화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CARAT은 성격 요인을 고정된 특성으로 보지 않고, 특정 요인이 다른 특성의 발현을 촉발하는 구조로 본다. 특히 형평민감성(ES)과 조직기반자긍심(OBSE)은 각각 서로 다른 방향의 트리거로 작동한다.
형평민감성은 Dark 특성의 트리거다. 형평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은 불공정의 신호를 매우 빠르게 감지한다. 이 신호가 위협으로 해석되는 순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키아벨리즘이나 사이코패시와 같은 Dark 특성이 쉽게 활성화된다. 마키아벨리즘은 상황을 보다 전략적으로 해석하게 하고, 무엇이 옳은가보다는 무엇이 생존과 성과에 유리한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갈등 상황에서도 도덕적 분노로 반응(겉으로는 그럴 수 있음)하기보다, 계산과 선택의 문제로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면, 한 번 이익 중심의 판단으로 이동한 상태에서, 어떻게 다시 가치 중심으로 돌릴 수 있을까? 핵심은 형평민감성 자체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불공정 신호를 ‘위협’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조직기반자긍심(OBSE)이다.
자신이 조직 안에서 존중받고, 의미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사람은 동일한 상황에서도 이를 생존의 위협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낮다. 이때 Dark 반응으로 이어지던 경로는 약화되고, 대신 원만성, 성장 마인드셋, 자기효능감과 같은 Bright 특성이 활성화된다. 판단의 초점 역시 '어떻게 유리해질 것인가'에서 '어떻게 더 나은 해결을 만들 것인가'로 이동한다.
불공정을 줄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 불공정을 어떻게 경험하게 만드는가다.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불공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려 하지만, 자신이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불공정을 ‘활용’하려 한다.
B그룹으로 분류돼 소위 긁힌 사람들을 보자. 이들은 자신들이 받는 불공정 이슈에 매우 민감하고, 이를 위협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면 이들을 계속 B그룹으로 규정하고 배제하는 것이 과연 해법일까? 누구든 고정된 이익 추구 집단으로 규정하는 순간, 그들은 더 강하게 방어적으로 반응하고, 더 계산적인 선택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분류가 행동을 강화하는 자기충족적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A-B-C를 고정된 특성으로 보기보다, 상황에 따라 이동하는 상태로 이해해야 한다. 같은 사람도 어떤 조건에서는 가치에 기반한 판단을 하고, 다른 조건에서는 이익 중심으로 반응한다. 그리고 그 이동은 개인의 본질보다는, 그가 처한 심리적 환경과 해석 조건에 더 크게 좌우된다.
따라서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누가 A인가, 누가 B인가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사람이 A처럼 행동하고, 어떤 상황에서 B로 이동하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이동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다. 이를 이해하려면 CARAT의 성격지능 프레임이 필요하다. 핵심은 사람을 B에서 A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심리적 조건이 어떤 판단을 불러오는지를 이해하고, 그 조건을 설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