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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제이 Feb 13. 2020

내가 기내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

비행기에서 술을 마시면 벌어지는 마법에 관한 이야기

나는 술을 잘 못 마시는 편이다. 이 나이가 되고 나서 소주 한 병 정도는 가까스로 마실수 있게 되었지만,  소싯적에는 소주 한잔을 먹고 게워내기도 한 웃기면서도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주량을 늘려보겠다고 노력을 했던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량이 늘기는커녕 쌍코피를 흘리며 앰뷸런스에 실려갈 뻔한 적은 몇 번 있다. 20대 초반 객기 넘치던 시절, 친구들과 놀러 간 강원도에서 술을 진창 들이붓고, 여행 내내 술병으로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술을 마시 얼굴이 붓고 토마토같이 변하 나 같은 사람겐, 술을 마실수록 독이 된다고 했다. 그것도 모르고 내 몸에 계속해서 독을 주입시켰다. 주량 늘려서 어디 써먹겠다고 그렇게 무모했는지 모를 일이다.






승무원일을 하고 처음으로 휴가를  받았다. 9개월 만에 한국에 가게 됐는데 어찌나 신나던지, 자축을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우아하게 와인을 먹어보자! 비록 초라한 플라스틱 컵에 담긴 레드와인이었지만 기분 좋은 여행길에 딱이다. 이제 재미있는 영화를 한편 보면서 천천히 발효된 포도의 맛을 음미기만 하면 된다.  홀짝홀짝 한잔을 다 비우고 나니 얼굴이 벌게지면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속도 울렁거렸다. 화장실에 가서  조금 게워내야지 싶었다. 내 경험상 알코올 때문에 괴로울 때는 토하는 게 최선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화장실로 가는 길이 구만리처럼 느껴졌다.



겨우 당도한 화장실에는 이미 서너 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서있는 것조차 힘이 부쳤는데  소심해서 화장실을 먼저 쓰면 안 되겠냐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자리에 쪼그려 앉아있다가 차례가 돌아 들어가려고 일어난 순간 눈앞이 핑핑 돌기 시작했다. 체면 하고 그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 앉아버렸다. 승무원들이 다가와서 괜찮냐고 었다. 내가 고개만 끄덕이며 숨을 거칠게 쉬자 그중 한 승무원이 산소통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산소마스크를 쓰면 훨씬 나을 것 같았지만 절하면서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난 괜찮아. 잠깐 어지러워서 그런 거라서 이대로 조금만 더 앉아있을게. 걱정 마"



승무원이 첫 휴가길에, 기내에서 술 먹고 뻗어서 산소통을 썼다고 하면 해고당할 것 같아서 그 제안을 거절했다. 숨 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직장 사수하기 라니. 지금에야 생각하면 어리석기 짝이 없지만 그때는 그랬다.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이런 일로 해고를 당하거나 하는 일은 결코 없다.



이런 경험으로 해 나는 기내에서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기압이 높아지면 산소의 양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어서 뇌로 들어갈 산소량도 부족해진다고 한다. 래서 음주를 할 경우 지상에서 보다 더 빨리 취한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대다수이다.






가끔 기내에서 엄청난 주량을 자랑하는 승객들을 만났다. 그들은 앱솔루트 보드카와 같은 독한 술을 짧은 시간 동안 연달아 서너 잔을 마시고, 이렇게 외친다.



한잔 더!



이런 경우 아무리 할 말 다하는 외항사라 할지라도 승객에게 '당신 취했어. 그만 마셔'라고 하진 않는다. 갖다 주겠다고 대답하고 최대한 시간을 끈다. 이 시간 동안 지쳐서 잠이 드는 승객도 있지만, 성이 나서 콜벨을 누르는 승객도 있다.



내가 아까 분명히 보드카 한잔
더 달라고 했을 텐데?



승객은 살짝 화가 난 상태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보드카를 네 잔이나 마셨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희석'단계이다. 보드카에 얼음과 물을 되도록 많이 섞는다. 이쯤 되면 '보드카 향이 나는 얼음물'이다. 



승객을 기만하냐. 어디서 물타기를 하냐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승객들의 안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승객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승객들의 안전도 포함된다. 쩡하던 사람이 술에 취하면 어떤 행동을 할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다. 나처럼 기내에서 술 마시고 졸도 직전까지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른다. 고도가 높고 저기압, 저산소 상태의 기내에서 술을 마시는 행위가 지상에서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에서는 분 좋은  축하주나, 피곤함을 달래려는 달디단 술 한잔도 신중히 마셔야 한다.  몸은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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