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나의 오랜 지인 A와의 대화는 항상 찝찝함으로 끝났다. 내가 예민해서 그렇겠지, 악의는 없었겠지라고 합리화를 하면서 그녀와의 만남을 계속 이어나갔다. 요즘 인간관계에도 미니멀리즘과 손절이 유행이라지만, 나는 원래부터가 관계의 폭이 넓지 않다. 그래서그런 유행은 따르지 않는다.그런 유행에 편승하다주변에 남는 사람 하나 없을까싶어, 인연을 끊는데는신중하고 또 신중하다.
이런 불편한 만남이 이어지자 나는 우리의 시간을 복기하기 시작했다.무슨 이유일까. 그녀는 정도 많고 나와 통하는 점이 많은 편이다. 사람을 잘 챙기고 솔직한 매력도 있다.그런데 왜 나는 그녀와의 대화가 이제 편칠 않나. 카톡을 둘러보다이유를 찾았다.
그녀는 서로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능숙한 스킬을 이용해서매번 나를 가르치고 타박하고 있었다.나보다 한참 육아 선배인 A는 나에게 꿀팁을 주기도 했지만,동시에 내가 의견을 내면 자연스레 묵살해버리기도 했다.
'네가 아직 몰라서 그러는데'
'내가 해보니 그건 아니더라'
'애가 조금 더 크고 나면 너도 알겠지'
'너 그렇게 하면 안 돼'
나보다 아는 것도 많고 경험해본 것도 많으니, 내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점은 백분 이해한다. 진심으로 생각해서 한 말일 것이라이해하고 넘기려 했다.그런데 말이다. 상대방에게서 한번 불편한 점을 찾아내면 계속 눈에 들어간 모래알처럼 걷잡을 수 없이 그 점이 대단히도 거슬리는 법이다.
특히 나는 육아라는 건 누구한테는 딱 들어맞는 방식이었어도 다른 누구에게는 맞지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육아용품도 마찬가지이다. 백인백색이다. 나는 점퍼루로 살뜰히 휴식시간을 챙긴 경험이 있기에 그것을 최고의 육아용품 중 하나로 꼽는다. 그런데 누군가에겐 무용지물이었다고 한다. 아기를 앉혀 놓으면 울고불고 난리였다나. 그래서 자기의 육아경험이나 본인 아이의 잣대로 남의 집을 평가하고 단정 짓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평가는 반드시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녀의 육아지적은 그래도 넘길 만한 수준이었다.나는 여전히우리 관계에 있어 불편함과 정신승리의 어딘가에 위치해 있었지만, 그런 사소한 이유로 오래된 인연을 잃고싶지 않았다.
내가 불편함을 느꼈던 이유는 이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건 그녀의 '땅바닥에 공 내던지기식'의 대화 스타일이었다.
예를 들어 내가 '말레이시아 여행 어땠어요? 많이 더웠죠?'라고 형식적인 대화의 캐치볼을 던졌을 때 그녀는 그공을 받고 반대쪽 땅바닥으로 집어던졌다.
'그럼 말레이시아가 덥지. 추웠겠니?'
대부분의 대화가 이런 식이 었다. 농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재미가 없고, 기분이 나빠서 그런가 하면 표정을 살피면 그역시도 아니다. 애초에 기분이 나쁠 대화의 소재도 아니다.
제삼자가 이 대화를 듣는다면 속시원히 결론을 내릴 것이다. 그녀가 나를 싫어해서라고. 그런데 그 반대이다. 그녀는 나를 너무 좋아하는 동생이라고 치켜세운다. 실제 행동도 그러했다. 알뜰살뜰 챙겨주기도 하고, 아낀다는 표현도 적잖이 한다.
그녀의 이런 모습들이 가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녀의 화법이 언제부터인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런 식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나의 자존감이 낮아지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왜 애초에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했을까'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한 걸까'
그녀를 원망하기 전 나 자신을 자책해보기도 했지만, 이런 나로 태어났는데 어찌하랴. 사람이 바뀌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그녀에게 서운하다고 말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좋은 결말보다는 부정적 결말이 그려졌다. 이제는 천진난만하게 서로의 피드백에 쿨해지는 나이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들으면 뒤로 서서히 물러나게 되는 법이다.
나는 그래서 그녀와의 휴식기를 잠시 가지기로 잠정 결론 내렸다. 분명 장점이 많은 사람이고, 나와 잘 맞는 부분이 있다. 그랬으니 오랜 시간 큰 문제없이 관계를 지속해온 것이다. 다만 지금은 우리 관계를 '쿨다운' 시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누군가 한 명이 변하면 정말 좋을 것 같고, 그렇지 못하다면 내가 쿨해졌으면 한다.정말 사소할 수도 있는 이런 문제가 아직은 우리의 관계를 깨지 않길 진심으로 바랄뿐이다.
얼굴에 주름이 생길수록, 나는 간절히 생각한다. 생각보다 말의 힘은 크니까 그 힘을 남용하거나 오용해서는 안된다고 말이다. 말을 하는 건 공짜지만, 내뱉는 데는 책임이 따른다.
그리고 기왕이면 타인에게는 좋은 말만 하자고 자주 다짐해 본다. 나는 공짜로 남들의 기분을 좋게 해 줄수도 있고, 그들의 자존감도 올려줄수 있다.말 한마디로 천냥 빚까지는 못 갚아도 대출기한을 연장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