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객실 승무원 안전 교육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앞으로 나에게 펼쳐질 일들을.
닿을 거 같지 않던 승무원이라는 꿈은 몇 년의 도전 끝에 장수생을 졸업했고 바라던 '승무원'이 되었다.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합격 통지를 받고 입사 전까지 주어진 시간은 단 4일. 매일 밤 유니폼을 입고 비행하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니 잠에 쉽사리 들지 못했다.
적으면 100:1, 많게는 200:1의 채용 경쟁률을 뚫고 '승무원 합격'이라는 큰 산을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큰 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신입 객실 승무원 훈련 교육'.
일반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신입사원 연수를 일정 기간 동안 받듯이 객실 승무원도 입사 후 약 2 달여 기간 동안 300시간이 넘는 강도 높은 교육을 받게 된다.
안전교육이 시작되는 첫날, 누구보다 일찍 훈련 센터에 도착했고 텅 비어있는 강의실은 알 수 없는 찬 공기가 맴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2 달여 시간 동안 함께 동고동락할 동기들이 하나둘씩 강의실에 들어와 어색한 미소와 함께 가벼운 목례로 서로 인사를 나눴다.
곧이어 안전 교육을 책임질 교관님이 강의실로 들어오셨다. 등장만으로 강의실 안은 엄숙해졌고 무거운 분위기가 나를 짓눌렀다. 교관님께서는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교육 과정을 비롯해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들과 그렇지 못했을 경우 받는 페널티 등에 대해 설명하였다. 모든 내용이 낯설었지만 스쳐 지나가는 말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빨간 책. COM(Cabin Operations Manual)
COM은 비행기 구조, 응급처치, 비상착륙 훈련 등 안전에 관련된 모든 매뉴얼이 담겨있는 '객실 업무 교범'이다. 400페이지가 안되는 위협적인 분량의 내용을 교육 기간 동안 책을 씹어 먹을 정도로 달달 암기해야 하는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매주 관련 시험을 봐야 하고 모의 비행까지 통과해야 최종적으로 안전 교육을 수료할 수 있다. 만약 이 모든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가혹하지만 가방을 싸서 그대로 집에 가면 된다. 언제든 집에 갈 수 있다는 압박 속에서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겁주는 소리겠거니 했는데 실제로 교육 중간에 이런 과정이 힘들어 포기하고 떠나가는 동기와 점수가 미달되어 최종 수료를 하지 못한 동기들도 있었다.
고3 때에도 밤새워 공부를 해본 적 없었던 내가 매주 기다리고 있는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밤을 새우기도 하고 3시간만 자고 좀비처럼 출근하는 날이 일상이 되었다. 수면 부족과 시험에 대한 압박감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모두 지쳐있는 상태였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피골이 상접하다'라는 말이 딱 어울릴 지경이었다.
교육 중반쯤 됐을까. 훈련생들이 가장 어렵고 힘들어하는 과정인 비상 탈출 모의 테스트를 앞두고 있었다.
비상구 작동법이 어찌나 헷갈리는지 다음날 테스트 보는 게 걱정되었다. 좁은 자취방에서 화장실 문을 비상구라고 생각하고 삐걱대는 의자를 화장실 문 앞으로 끌고 와 점프싯으로 꾸미고 작은 생수병을 손전등으로 위장시켜 비상 탈출 과정이 몸에 익을 때까지 수없이 반복했다. 10평도 채 안 되는 자취방이 비상상황이 발생한 비행기 안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시험 당일.
"머리 숙여! 자세 낮춰!"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하는 샤우팅을 하며 걱정과 다르게 비상구 탈출을 깔끔하게 수행해 냈다. 내 차례가 끝나자 동기들의 칭찬이 쏟아졌고, 지난밤 내가 했던 짓(?)이 나름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내심 뿌듯했다.
교육을 받는 하루하루가 정말 고비였지만 이를 악물며 버텼다. 지금 돌이켜보면 살면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한 적이 있나 싶다. 반복되는 시험과 모의 비행까지 모든 순간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안전 교육을 잘 수료했다.
비행을 본격적으로 해보지 않았던 내가 안전 교육을 수료하고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아, 내가 생각했던 승무원과 정말 다르구나..'
승무원은 승객들에게 서비스만 잘 하면 되는 줄 아는 철없는 생각을 했던 내가 안전 교육 후에는 단언컨대 서비스보다 안전요원으로서 임무가 더 우선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안전 매뉴얼'로 무장된 나. 자다가 누군가 나에게 질문을 하면 망설임 없이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였다.
"자 드루와 드루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