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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여행자 Sep 20. 2023

승무원 장수생이 10년 차 승무원이 되기까지

'포기'하는 것을 포기했다

나는 승무원을 준비하는 장수생이었다.


돌이켜보면 승무원이 되기까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항공과를 졸업한 나는 졸업이 곧 항공사 취업을 보장해 줄 거라는 철없는 생각을 했다. 덕분에 근거 없는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고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승무원 면접 준비를 했다. 간신히 기준 점수를 넘긴 토익 점수 외엔 아무런 경력과 스펙도 없었다.

첫 지원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 당시에는 '불합격'이라는 결과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면접관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새삼 느낀다.


따라주지 않았던 운과 높은 경쟁률을 핑계로 댔고 '그다음 지원에는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과 함께 항공사 채용 지원을 이어나갔다. 좋게 말하면 꿈에 대한 우직함이지만 사실 미련함이었다. 그렇게 나는 의미 없고 발전 없는 지원을 15번이나 했다. 수차례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나니 하늘을 찔렀던 자신감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지하 10층까지 낮아진 자존감으로 채워졌다.


이때부터였을까. '아 뭔가 잘못됐구나'라는 걸 직감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수정하고 준비해나갔다. 지금까지 준비해 놓은 면접 답변과 자료들은 모두 쓰레기통 행이 되었다. 그리고 내면의 진짜 내가 누구인지 괴로울 정도로 생각했고 그 고뇌가 자기소개서와 면접 답변에 묻어 나오도록 했다. 승무원 면접은 지식을 요하는 시험도 아니고 필기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다. 명확한 정답이 없기에 더욱 막막했다. 그 과정에서 함께 준비했던 대학 동기들은 승무원이 되어 하나둘 떠나갔고 주체할 수 없는 열등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지방에 살았던 나는(어쩌면 시골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 흔한 스터디, 과외를 하기 어려운 환경이어서 오로지 혼자 준비를 해야 했다. 당시에는 승무원 준비생을 위한 온라인 카페가 활성화되어 있었는데, '장수생 모여라' 카테고리에 있는 푸념과 같은 글들을 보며 남일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때론 소외감을 느꼈다. 계속되는 불합격에 나보다 가족들이 더 실망을 하였고 언젠가 엄마의 포기할 줄도 알아야 된다는 말에 속을 태우기도 했다.

모든 과정이 깜깜한 망망대해에 놓인 나룻배 신세처럼 느껴졌다.


돈 한 푼 못 버는 취준생으로만 지낼 수 없기에 관공서에 취업을 했고 직장을 다니면서 승무원 준비를 손에 놓지 않았다. 그러던 중, 회사 2년 차에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승무원 공채에 지원을 했다.

운이 좋게 서류 전형에 합격을 했고 실무면접 때는 주어진 질문에 열심히 답변을 했으나 말빨 좋은 다른 지원자들에게 기가 눌렸고, 임원면접에서는 관심받지 못하는 병풍이었다. 마지막 신체검사를 앞두고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급격하게 살이 빠졌는데 저체중이라 최종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담당 의사의 말은 나의 멘탈을 부수기에 충분했다.


최종 결과 발표날.

항공사 채용 사이트에 접속해 응시번호 입력을 앞두고 멍하니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쉼 없이 깜빡이고 있는 커서가 서둘러 입력하라고 독촉하는 듯했다.

'축하합니다. OOO 님은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16번의 지원 끝에 마침내 보는 문구이다.


'포기'를 거부하는 것.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닐까. 끝을 알 수 없는 불확실의 안갯속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용기와 무모함이 필요하다. 이것이 최종 목적지에 이르를 수 있는 가장 간단한 해결책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날의 벅차오르는 감격스러움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10년 가까이 비행을 하는 승무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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