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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여행자 Feb 10. 2024

모든 것은 다 안개 때문에 ep1

비행을 망친 안개의 위력

휴대폰 알람이 울어댄다.

이제 막 잠들려고 하는 찰나 들리는 '알람 소리는 미간에 주름을 찌푸리게 만들기 충분하다.

 '아.. 오늘도 잠 한숨 못 자고 비행을 해야 되네.'

  새벽 1시, 다낭에서의 짧은 레이오버를 마치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 준비를 해야 한다. 호텔 침대에서 한참을 뒤척거리다가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몇 년째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며 비행 생활을 하지만 밤에 잠 못 자고 비행하는 건 연차가 쌓여도 적응하기 힘들다.



  방 안으로 빛 한줄기 들어오지 못하도록 단단히 쳐놓았던 암막 커튼을 걷었다. 눈앞에 들어오는 호텔 테라스 밖 풍경이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

 짙은 안개가 자욱하다.

 오랫동안 비행을 하며 다낭에 자주 왔었는데 안개가 이렇게까지 심한 날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23층 호텔방에서 밖을 바라보니 구름 속에서 마치 공중부양하고 있는 것 마냥 바깥 풍경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안개로 흠칫했지만 공항으로 갈 픽업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아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약속된 픽업 시간이 되어 기장님들과 크루들이 하나둘 로비에 모였다. 평소 같았으면 레이오버 하는 동안 푹 쉬었냐는 인사말을 주고받지만 이날은 다들 안개 이야기부터 꺼낸다.


 "기장님, 저희 갈 수 있는 거죠?"

 "글쎄요. 한 시간 뒤부터는 안개가 좋아지는 걸로 나와있긴 한데 일단 지켜봐야 될 것 같아요."


 설마 하는 마음으로 기장님께 물어보았지만 다소 찝찝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도 '한 시간 뒤부터 좋아진다'라는 말은 나의 불안감을 조금은 잠재울 수 있었다.

 픽업 차에 올라타 공항까지 가는 동안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불이 나서 연기가 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단 1m도 보이지 않을 만큼의 안개가 짙었다.



  날씨 걱정하는 사이 승무원들을 태운 픽업 차량이 다낭 공항에 도착했다. 출국장을 나서려고 하던 찰나 공항 스피커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한국에서 출발해서 다낭으로 착륙하려던 타 항공사 비행기가 안개로 인해 다낭에 착륙하지 못하고 나트랑으로 회항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기장님을 포함한 우리 승무원들은 그 방송을 듣고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ㅇㅇ씨, 지금 회항했다는 방송 맞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후배에게 말을 건넸다.


 곧이어 줄줄이 다낭에 도착해야만 하는 비행기들이 다른 도시로 회항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이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기장님은 출국장을 나서지 않고 공항 한켠에 앉아 잠시 상황을 지켜보자고 했다.

 비슷한 시간에 출발해서 한국으로 가는 다른 항공사 승무원들도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 옆자리에 앉아 같이 대기를 했다. 서로 가벼운 목례를 하고 별다른 대화는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은 틀림없었다.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대기시간. 공항 구석 자리에 앉아 승무원들은 휴대폰으로 의미 없는 시간 확인만 한다. 1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다낭 지점 직원이 나타났다.


 '이제 출발할 수 있는 건가?'


 일말의 희망과 기대를 가졌지만 예상과는 다른 답변을 직원에게 듣고 만다. 안개가 걷히지 않아 오늘 밤 당장 출발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결국 기장님과 승무원들은 다시 호텔로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당장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게 답답했지만 한편으로는 호텔 가서 쉴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새벽 시간, 호텔로 돌아와 다시 체크인하러 온 우리의 모습을 보고 호텔 직원들은 안쓰러운 듯 바라본다.

 타고 가야 할 비행기가 언제 다낭에 도착할지 모르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모두가 오늘 새벽에는 출발하기 어려울 거라고 판단했다.

 방은 레이오버 하는 동안 내가 사용했던 같은 방으로 다시 배정받았다. 새벽 시간이라 방 청소가 되어 있지 않아 내가 헤집어 놓고 간 침구가 나를 반긴다.

 새벽 3시가 넘은 상황. 좋지 않은 날씨로 한껏 예민해진 상태였는데 방에 돌아오니 긴장이 풀린다. 긴장 속에 숨어있던 잠이 그제야 몰려와 몽롱해진다.

 비행을 위한 풀 메이크업을 한 것이 아까웠지만 곧장 샤워를 끝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가 얼마나 폭신하게 느껴지는지 잠이 스르르 든다.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방에 있는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설마,

싸늘하다.



PS. 지금으로부터 1년 전쯤 일이었어요. 오랜 시간 동안 비행을 하면서 겪어볼 일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종종 당혹스러운 IRRE 상황이 생겨요. 연차가 쌓여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이유!

글 쓰다 보니 내용이 길어지는 듯해 다음 내용은 ep2에서 만나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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