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디렉터로 일할 때는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었다.
잘 떠올리면 인정받았고,
조금 과해도 한 번쯤은 밀어볼 수 있었다.
CD가 되고 나서는 역할이 달라졌다.
내가 낸 아이디어보다
팀의 아이디어를 통과시킬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일이 됐다.
회의실에서 나는
가장 먼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오래 듣는 사람이 됐다.
이 자리에 오고 나서
제일 어려워진 건
‘맞다’와 ‘괜찮다’를 구분하는 일이었다.
좋아 보이지만 위험한 안과,
무난하지만 힘이 없는 안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항상 계산하게 된다.
예전에는
“이게 더 재미있잖아요”라고 말하면
어느 정도는 통하던 순간들이 있었다.
지금은 그 말 뒤에
“근데 이게 통과될까요?”라는 질문이
자동으로 따라온다.
광고를 오래 할수록 아이디어 자체보다
그 아이디어가 놓일 자리를 먼저 보게 된다.
누가 이걸 싫어할지,
어디서 문제가 될지,
어느 선까지가 가능한지.
이런 판단들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 판단들이 나를 보호하는 건지,
아니면 점점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CD라는 자리는
정답을 내리는 자리라기보다
후회가 덜 남는 선택을
계속 반복하는 자리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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