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거 아니라는 무심한 듯한 대답이 마음을 흔든다. 은혜는 꼭 갚아야 하는 게 아니었나? 은혜를 뼈에 깊이 새긴다는 각골난말, 잊지 않고 은혜를 보답한다는 결초보은을 사람의 도리로 배워왔다. 그런데 뭘 갚냐고 되묻는다. 뒷마무리가 중요하다고 배웠는데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거 아니라니.
삶의 여유와 지혜로 다가온다. 인간미가 느껴진다. 열을 주어야만 열을 받을 수 있다면 인생 사는 게 무슨 재미가 있을까? 받은 만큼 주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래서 세상살이가 퍽퍽하고 재미가 없었나 보다.
20년 직장생활 동안 마음의 짐을 차곡히 쌓아왔다. 힘든 순간 힘이 되어 준 동료, 어긋나던 시절 곁에서 모른 척 이해해 주시고 기다려 준 선배님, 허드렛일로 고생했던 후배까지 고마운 분들의 은혜가 가슴에 차곡히 쌓였다. 사람의 인연이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지금은 곁에 없지만 언제가는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무게감이 어깨를 짖누르곤 했다. '뭘 갚아요'라는 대사 한 마디에 차곡히 쌓아왔던 마음의 짐이 한순간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20년의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나의 노력만으로 이룬 것은 아니었다. 보이지 않게 힘이 되어주고 도와준 동료, 선배, 후배가 있기에 아직까지 일꾼으로 생존해 있다. 자의든, 타의든 떠난 동료에 대한 애환이 가끔 가슴을 먹먹하게 하였다. 꼭 그분들에게 갚아야 하다는 책임감이 남아있었다. 꼭 그분들에게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지금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갚으면 되는 것이다. 나 역시 말하겠다.
"뭘 갚아. 세상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거 아냐"
일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본다. 일 처리는 깔끔해야 한다. 뒷마무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업무를 깔끔하게 마무리해야 하는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깔끔하지 못한 일 처리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동료를 험담하고는 했다.
반대로 생각해 보니 깔끔한 일 처리가 미덕이 아닐 수 있다. 그 일을 도와주며 인정받고 성과를 얻는 부과적인 기회가 되기도 한다. 더불어 고용 창출까지. 모두가 깔끔하게 일을 처리한다면 재경, 기획, 감사팀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사는 일꾼 세상을 위해서는 깔끔하지 못한 여백의 미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세상 깔끔하게 사는 거 아니라는 한 마디에 그동안 쌓인 마음의 짐을 벗는다. 깔끔하게 완벽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에 벗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