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무얼 먹을까 고민을 하다 냉장고 문을 연다. 냉동실에 숨어있는 대패삼겹살을 발견하고는 어제 본 유튜브를 떠올린다.
'그래, 매콤달콤 대패삼겹살 제육볶음 도전!'
제육볶음의 주재로는 돼지고기지만 맛을 완성하는 것은 부재료 야채이다. 맛의 풍미를 한껏 올려주고 고기의 비린내를 없애주는 양파, 대파, 청양고추는 필수지만 초등학생 아들을 생각하니 주저하게 된다. 양파와 대파를 요리조리 피해서 고기만 쏙 쏙 골라먹을 아이 모습에 피식 웃으며 대파와 양파를 넣는다. 청양고추는 매우니 생략한다지만 양파와 대파는 양보할 수 없다. 골라 먹기 편하게 크게 크게 썬 아빠의 배려를 아이들은 알까? 대파를 골라내며 투덜거리겠지?
냉동실에 깊은 잠을 자고 있던 대패삼겹살이 매콤달콤 제육볶음으로 완성! 쫘잔~~~ 역시 양파와 대파 있어야 더 먹음직스럽다. 청양고추와 당근이 빠지니 살짝 아쉽지만, 만족!
아빠표 제육볶음
배가 고팠던 것인지 아이들이 맛있다며 엄치척을 해 준다. 뿌듯함은 잠시, 아이들이 떠난 식탁에는 대파와 양파가 수복이 남아있다. 서로를 위로라도 하는 듯 서로를 부퉁 켜 안은 채 뭉쳐있다.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나는 유난스러운 편식쟁이였다. 대파, 양파 물론 모든 야채를 싫어했다. 쌀알만큼 작은 야채조차 허락하지 않고 젓가락으로 골라냈다. 덕분에 어른이 된 지금 젓가락질만큼은 자신있다. 유난스러운 편식쟁이의 모습을 떠올리니 아이에게 잔소리를 할 자격이 있나 피식 웃어본다.
아이들이 남긴 대파와 양파를 먹는다. 작은 조각이 입에 들어가면 독이라도 되는 듯 매의 눈으로 골라내던 남자아이가 그릇에 남겨진 대파와 양파를 골라 먹고 있다니! 나도 이제 아저씨가 되었구나, 아빠가 되었구나, 어른이 되었구나, 나이가 들었구나라는 생각에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
어른이 된다는 건 골라내던 양파를 골라먹게 되는 것
우리 아이도 세월이 지나면 양파와 대파가 메인 요리와의 어우어지는 조화와 풍미를 느낄 수 있겠지. 양파, 대파, 마늘, 생강, 청양고추는 맵고 씁쓸한 맛과 향으로 그 자체만으로는 피하고 싶은 재료지만, 주 재료와 어울려 음식의 맛과 풍미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에서의 슬픔, 고통, 아픔, 외로움과 닮아있다. 우리를 괴롭히지만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성숙해지고 행복을 더 깊게 느낄 수 있다.
양파, 대파를 즐기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삶의 역경을 이겨낸 어른으로 성장했다는 것은 아닐까? 세월이 흘러 아이가 성인이 되어 양파, 대파, 마늘이 잔뜩 들어간 제육볶음에 소주 한잔할 그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