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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부터 자를까요?

내 가슴의 상처, 실망을 잘라내 주오.

by 심 취하다

아들이 장난감 도끼를 들고 장난스럽게 묻는다.

"아빠! 어디부터 자를까요?"

퇴근 후 울적한 기분으로 소파에 누워있던 나는 대답했다.

회사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 욕심, 실망을 잘라내줘!


가슴을 활짝 열며 아들의 도끼날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내일을 맞이할 힘을 아들에게서 받는다.

'고마워, 아들. 사랑해, 아들.

잠시나마 약해진 아빠를 이해해 주렴.

아빠 웃으며 내일 출근할게. 어깨피고, 당당하게'


연말이다. 승진, 보직, 퇴임, 조직변경으로 어수선하다. 다시 팀장 보직으로 임명된다는 얘기는 여러 해 동안 수차례 있었다. 여러 번 좌절된 후 마음을 비우고 지냈건만, 3개월 전부터 조직신설 계획이 구체화되며 팀장 임명설이 여러 경로를 통해 들려왔다. 연말이 되며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듯했다. 힘들게 비우고 비웠던 마음에 다시 기대와 설렘이 채워졌다.

인사발령 공지 3일 전, 상사의 호출이다.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기대하는 마음으로 방에 들어선다. 이번에 팀장으로 발탁하려고 했으나, 아쉽게 되었다며 차분히 이야기한다. 자세한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상사에게 따질 수 없었다. 나를 발탁하려고 신경 써 주신 것을 알고 있기에.


상황을 모르는 아들은 아쉬움에 씁쓸함에 누워있는 아빠를 안아 주지는 못할 망정, 도끼를 들고 위협하다니.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옛말이 맞는 것일까? 아니다. 오늘은 아들의 도끼가 외과의사의 날카로운 메스칼날처럼 느껴졌다. 아들의 도끼질이 회사에 받은 상처와 욕심, 실망을 도려내 주었다. 외과의사 장인처럼 아프지 않게 말끔하게 치료해 주었다.


좋은 소식을 기다렸건만,
아픈 상처를 받으셨나요?
여러분에게 도끼를 드립니다.

도끼로 상처를 파악!
도끼로 마음을 뻐엉!
상처는 도려내고
마음은 비워내고

오늘 도끼질 한판!
우리 같이 도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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