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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을 읽고

버킷리스트 한 권 추가

by 브래드

드디어 다 읽었다.


약 3개월간 씨름을 하던 이 책을 오늘 다 읽었다. 완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역대급으로 읽는 게 힘들었던 것 같다. 여러 가지 책을 읽는 걸 좋아하지만 왠지 모르게 세기의 명작이라고 하는 책들을 하나씩 완독 하는 것이 나에게는 큰 도전이다. 이제껏 읽었던 버킷리스트 중 '코스모스', '총 균 쇠', '이기적 유전자', '사이엔스' 등 주로 과학 교양 책을 완독 했다. 읽는데 오래 걸리고 내용도 이해하기 어렵고, 중간에 잊어버리지만 그래도 역경과 고난을 정신적으로 이겨냈다는데 희열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오늘 난관이었던 이 책 완독이 큰 의미가 있고,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사실 내용의 2~30% 정도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 읽었던 '코스모스'에 감동을 받고, 과학 교양 책들을 읽어봐야겠다고 다짐을 하였고,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종의 기원'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점점 확장되는 것이 재미있고, 내용을 아주 깊게 이해하지 못하지만 내 인생철학이 '얕고 넓게 알고 두루 다양한 것에 적용하자!' 이기 때문에 전공자만큼은 아니지만 일반인보다는 좀 낫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런 책을 읽는 게 즐겁다. 물론 이 책을 한 권 읽었다고 해서 진화론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 정도만 알고 있던 내가, 자연적 분류라던지 지리적 분포, 다양한 멸정 등 다윈이 엄청나게 많은 고민을 하고 여러 가지 이론을 가지고 고민한 그 노력을 느낄 수가 있는 건 책을 읽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이 빙하기로 인한 지리적 분포에 관련한 내용이었다. 나는 빙하기에 공룡이 멸종해서 멸종 이후에 포유류가 번성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윈은 빙하기에 생물이 지리적으로 분포된 대변혁의 시기라고 강조하였다. 여러 내용 중 가장 기억이 남는 내용은 빙하가 확장되면서 남북으로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동물뿐 아니라 식물들도 넓게 퍼지게 되었다. 동물은 걸어가거나 날아갈 수 있다. 바다가 얼어있으면 얼음 위로 걸어가기도 하고, 날씨가 추워서 더 남쪽으로 날아가는 새도 있고, 추운 지방에 사는 새들은 더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식물들의 씨앗이 동물의 털에 붙어서 간다거나, 새들이 먹어서 대변으로 배출된다거나, 죽은 새들의 위에 남아있던 씨앗이 뿌리를 내린다거나 하는 내용으로 식물이 확장해 나가는 걸 설명하였다. 뿐만 아니라 직접 실험을 해서 오랜 기간을 보관한 씨앗이 실제 싹을 틔울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생명의 신비로움은 알면 알수록 더 신기한 것 같다. 또한, 빙하기가 끝나면서 육로가 끊기거나 고립된 경우에 해당 지역에 토착 생물이 되어 각자 진화해 나가는 경우도 설명했다.


지리적인 특성과 화석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서의 해석이다. 이 부분을 설명할 때 생물에 대한 내용보다는 지구과학 책인지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었다. 퇴적 환경의 중요성, 지층의 침강과 융기, 침식과 기록의 손실 등 각종 지층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과 이런 인고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그 안에 화석을 품고 있는 그 자체를 매우 경이롭다고 했다. 유물이 땅에 묻혀있는 것과 화석이 있는 것을 비교했는데, 유물이 매장되어 있는 지각은 빈약하다고 평가했으나 화석은 암석층이 엄청난 풍파와 시간의 경과를 견디며 만들어낸 엄청난 행운이라고 했다. 내가 생각을 해도 지각층이 현존하는 것도 매우 신비로운데, 거기에 생명체가 들어있고 화석으로 발견되어 연구를 한다고 생각하니 신비로웠다.


종에 대한 분류가 지금도 변화하고 있을 수 있다. 종에 대해서 종ㆍ속ㆍ과ㆍ목ㆍ강으로 분류하는 건 예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종류끼리 묶은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분류의 기준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또한 계층구조로 표현하였고, 이를 '생명의 나무'로 표현한 부분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그리고 종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기보다는 '변종'이 일어나고 있는 연장선상에 있다고 설명했다. 변종이라고 하면 돌연변이정도만 생각할 정도로 알지 못했는데, 지속적으로 변종에 의해 진화해 나가는 내용을 얕게나마 알 수 있었다. 설명이 매우 어렵게 되어 있어서, 제미나이를 활용해서 표로 정리해서 읽어보니 좀 이해가 되었다.

분류표.JPG <다윈의 관점으로 예상 분류표>



이외에도 생물의 멸절, 잡종, 본능, 생존 투쟁 등 정말 책의 두께가 이해가 될 만큼 많은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다윈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연구하고 실험하였는지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이 책이 세기의 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게 이해가 되었다. 예전에 이 책을 평가한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첫 번째가 한 문장이 몇 페이지나 되어야 끝나는 필체 덕분에 읽기가 힘들고, 두 번째가 비둘기의 지루한 이야기가 책의 절반이라 그 인내심을 버티면 경이로운 내용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눈치채셨겠지만 내가 감명 깊게 본 내용들이 다 후반부에 나오는 내용들이 대다수이다. 거진 초반 내용은 비둘기로 설명을 많이 하는 이론적인 내용들이라 거의 수면제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조금이라도 개념이 잡혔고, 다시 한번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게 했었던 것 같다. 예전에 '코스모스'를 읽을 때만 해도 다 읽고 나서 다시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당분간 이 책은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다. 좀 더 내공이 쌓이고 나서 노년에 다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살아가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이런 책들을 읽으면,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 하찮게 여겨진다. 수십억 년에 걸친 이 경이로운 생물의 진화 선상에 내가 오늘 회사에서 기분 나쁜 일, 일이 안 풀거나 실수를 한다거나 하는 이런 일이 얼마나 사소한 일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더 좁은 지역에서 서식하는 생물들은 더 넓은 지역에서 서식하는 또 다른 생물들에게 굴복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더 넓은 지역에서 더 많은 개체를, 더 다양한 형태들이 존재할 것이므로 생존투쟁이 더욱더 치열해서 완벽함의 기준 자체가 더 높을 것이다."


"어린 뻐꾸기가 의붓 형제들을 밀어내거나 개미가 노예를 만들거나 맵시벌과 유충이 살아있는 애벌레의 몸을 파먹는 것 같은 그런 본능들을 특별히 주어지거나 만들어진 본능이 아니라 배가시키고, 다양화하고, 강한 것을 살리고 약한 것을 죽이면서 모든 유기체의 진보를 이끌어 내는 일반 법칙의 작은 결과들로 보는 편이 나로서는 한결 만족스럽다."


"자연은 변이를 일으키려는 자신의 계획을 흔적기관이나 상동구조를 통해 드러내려고 고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물이 매장되어 있는 지각은 드물게 우연히 만들어진 빈약한 모음집으로 생각해야지, 잘 꾸며 놓은 박물관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화석을 함유한 거대한 암석층의 퇴적은 여러 정황이 비정상적으로 동시에 일어남으로써 만들어진 것이며, 연속된 암석층 사이의 공백은 엄청난 시간의 경과를 의미한다는 것이 인정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최고의 대상인 고등 동물은 자연 및 기근과 죽음으로부터 탄생한 것들이다. 처음에 몇몇 또는 하나의 형태로 숨결이 불어넣어 진 생명이 불변의 중력 법칙에 따라 이 행성이 회전하는 동안 여러 가지 힘을 통해 그토록 단순한 시작에서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어 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는,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 다윈 '종의 기원'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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