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관계
공원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문이 닫힌 칸 안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곳은 꽤나 크고 깨끗했다. 내가 들어서기 전까지 그는 그 공간의 유일한 점유자였다. 다른 칸 모두가 비어있었고 나는 작은 볼일이었기에 그의 재촉자가 될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나를 의식한 듯 헛기침을 냈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그가 70 정도 되시는 어르신일 것이라 추측했다. 그리고 어쩐지 그 헛기침에 담긴 속내가 '나를 재촉 마시오.' 보다는 '나는 곧 나갑니다.'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데 칸막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거울로 넘어보니 코트까지 제대로 갖춰입은 70대 노신사였다. 그는 내 뒤로 와서 정확하게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게 되었소. 먼저 좀 씁시다.'
내 옆 세면대는 비어있었다. 하지만 그는 무언가 급한것에 쫓기듯, 그저 출입문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내쪽 세면대를 원했다. 나는 순순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갖춰진 것이 없군.'
그는 손을 씻고 바람으로 손을 말려주는 기계를 마다한 채 휴지를 찾으러 다시 칸막이 중의 하나로 들어갔다.
나는 그런 그를 뒤로하고 나왔다. 그때였다. 누군가 화장실 문을 열었다는 사실만으로 어떤이가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곱게 차려입으신 할머니 한 분이 화장실 앞에서 어떤 기대를 담아 내쪽을 바라보셨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서두르신 이유를 짐작했다.
손을 미처 다 닦을 겨를이 없었던 듯 그는 휴지를 한웅큼 쥔 채 코트를 펄럭이며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할머니와 나란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이 참 예뻤다.
미소를 띠며 내 가족이 있는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찰나에 내앞을 지나쳐 뛰어가려던 분과 부딪힐 뻔했다. 등산복 차림의 할아버지였다. 그의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두 개 들려있었다. 부딪힐 뻔 하였기에 자연스레 등산복 할아버지의 뒤를 눈으로 좇았다.
등산복 할아버지는 앞서 걷고 있던 코트 할아버지와 할머니 쪽으로 붙어 발걸음을 함께하기 시작했다. 나는 코트 할아버지가 서두른 또 하나의 이유를 짐작했다. 등산복 할아버지가 뛰어간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등산복 할아버지는 두 개의 아이스크림 중 하나를 할머니에게 건넸고 하나는 자신이 먹었다. 코트 할아버지는 그제껏 손에 쥐고 있던 휴지조각이 민망한듯 주머니에 우겨넣어 버렸다.
그곳은 공원이었고 대부분 평지였다. 코트도 등산복도 모두 적당한 복장이 아니었다. 평지의 공원처럼 두 할아버지 가운데 있던, 그 할머니는 누구를 선택하실까.
2017년 3월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