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둡다.
퇴근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메신저가 깜빡였다.
거래선의 급한 부탁을 받았는데,
도와 줄 수 있어요?
영업부서 동료였다. 다행히 시간을 조금 낼 수 있는 날이었다. 나는 다시 자리를 고쳐 잡고 메신저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가 다루는 품목 중 하나가 산도(Acidity, Ph)의 영향을 받는데 용매(Solvent)로 쓰인 물이 평소보다 온도가 높아 산성을 띠는 바람에 공정에 작은 오차가 생겼다고 했다. 큰 문제는 아니었고, 이를 설명하는 자료만 간략히 만들면 됐다.
우리는 각자 자료를 찾기로 했다. 온도가 올라갈 수록 물이 산성을 띤다는 자료는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온도가 0도 이하로 떨어졌을 때의 산도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 각 포털에서 국문과 영문으로 다양하게 찾는 시도를 했지만 결과는 허탈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지금까지의 결과를 공유할 겸 우리는 한 회의실에 모였다. 그리고 이내 푸념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 학자들도 놓치는 게 있나봐요.
- 그러게 말예요. 아무도 0도 이하에서 산도가 어찌되는지 연구를 안 했더군요.
- 하.. 얼음과 물을 다르게 본 것 아닐까요? 왜 물이 0도 밑으로 내려가면 얼잖아요.
- 그렇다고 얼음의 산도를 검색해 봐야 뭐 하겠어요. 어차피 얼음이 되면 용질이 녹지도 않을 거..
순간 우리는 눈을 마주쳤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얼면 용매로서의 기능이 없지 않은가!
그는 문제에 봉착했었다. 그러나 다행히 간략한 설명이면 되는 것이었다. 그는 급히 나를 찾았다. 나는 급히 화답했다. 우리는 급히 인터넷을 뒤졌으나 허망하게 두 시간 여를 날렸다.
서둘면 바보가 된다. 차분히 생각하는 시간을 오 분만 가졌어도 회의실에서 대화 나누던 그 시각에 우린 이미 집이었을 것이다.
https://brunch.co.kr/@crispwatch/71
그래도 우린 추억을 하나 만들었으니까. 라고 자위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