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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Dec 01. 2018

차 파실 때 유명 업체보다 돈 더 드립니다.

다 생각이 있다.

미국에 있을 때의 일이다. 짧은 기간 파견을 갔던 터라 나는 차를 사지 않고 렌터카를 이용했다. 몇 번의 렌트와 반납을 반복하며 대부분 큰 업체를 이용했지만 가끔 중소 업체의 차를 빌려야 할 때가 있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런 업체들의 상당수는 중고차 매매를 함께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 건 광고 중 유독 인상을 끈 문구가 있었다.


OO업체(대형업체)보다 백 불 더 드립니다!


일견 희한한 일이었다. 영세 업체는 대규모 업체보다 자금력도 부족하고 사람도 모자랄 터였다. 그런데 백 불을 더 준다니! 그래서인지 차를 빌리거나 반납하러 갈 때 매장엔 타던 차를 팔려는 손님들이 꼭 한두 명씩은 있었다.




한국에 돌아 오고도 한참 뒤 어느날, 샤워를 하다가 문득 이 생각이 났다. 무슨 특정한 이유는 없었다. 그날 회의를 하다가 원가 절감에 대한 이슈가 있었을 수도 있고, 그저 노곤한 일과에 미국 시절을 그리다가 거기까지 생각이 치달았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 문구를 자주 보던 미국에선 그리도 무던 하더니 한국에서 샤워를 하다가 문득 답까지 떠 올랐다. 하여간 잡상이란 희한하다.


앞서 말했다시피 영세 업체는 대규모 업체보다 모든 것이 부족하다. 그런데 대형 업체보다 값을 더 쳐 준다는 광고를 하는 이유도 바로 그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또 한번 희한한 세상이다.




차를 팔려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에게는 최대한 비싸게 값을 받고 차를 팔려는 유인이 생긴다. 어느날 그는 길을 지나다가 그 광고 문구를 보게 된다. OO업체보다 백 불을 더 준다고? 귀가 솔깃해진 그 사람이 가장 먼저 취할 행동은 무엇일까?


바로 OO업체로 가서 견적을 받는 것이다. 그곳은 규모가 큰 업체다. 차량 점검 설비도 최신이고 기술자도 많다. 그러한 전문가들이 차 값을 2,000 불로 판단했다고 하자. 그 다음 그가 취할 행동은 "수고하셨습니다."하고선 영세업체로 가서 2,000불 짜리 견적서를 내밀어 2,100불에 차를 팔면 된다.


일견 영세업체가 눈 뜨고 코 베이는 격 같다. 하지만 하나하나 따져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그 이유를 살펴보자.




영세 업체는 설비도, 인력도 부족하다. 그런 입장에선 누군가 팔고자 가져 온 차의 정확한 상태를 알기 힘들다. 검사를 하려 해도 대형 업체에 비해 검사 비용이 더 든다. 만약 엄정한 검사를 하는데 드는 비용이 120불이라고 해 보자. 그렇다면 OO업체의 견적서를 받아오는 사람에게 100불을 더 쳐주는 제안을 함으로써 120불이 아니라 100불만 내고 좋은 설비와 인력으로 차량 상태를 점검한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즉 웃돈을 얹어 주는 것이 되레 경비를 절감하는 효과가 되는 셈이다.


자 그러면 OO업체는 매번 우수한 퀄리티의 검사로 견적만 내 주고 차를 뺏겨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OO업체도 검사 비용을 받으면 된다. 설비와 인력이 우수하고 풍부하므로 검사 비용은 영세업체보다 낮다. 이를 80불이라 해 보자.


OO업체는 검사 비용으로 80불을 얻는다. 차주는 80불을 내고 얻은 견적서를 갖고 가서 영세업체에 100불을 더 받고 차를 팔아 20불을 남긴다. 영세업체도 120불은 들어야 견적을 낼 것을, 이웃 대형업체 손을 빌어 점검하고선 100불만 차주에게 줬으니 20불 이득이다. 멋진 윈윈 게임이다.


만약 경제학 교과서에서 이를 다룬다면 이어질 스토리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시장은 Arbitrage(차익실현)을 허용하지 않으므로 OO업체는 갈수록 검사 비용을 올리다가  어느 순간 차주는 영세업체를  가더라도 이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 된다. (아마도 120불 검사비에서.)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균형(Equilibrium)이라고 부른다! And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 :)




하지만 현실에선 영세업체의 광고 문구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유는 여러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1. 고급차를 가진 사람에겐 높은 차값에 비해 100불은 작다. 즉 작은 이윤을 더 얻고자 영세업체로 가는 것 보다 100불을 포기하고서라도 큰 업체에 파는게 여러모로 속 편하다. (고급 차량의 이탈)


2. 영세 업체는 자금력이 부족해 모든 차량에 일괄적으로 100불씩을 더 얹어주진 못한다. 폐차 직전인 소형차 견적이 30불 나왔는데 이것까지 100불을 얹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그들은 광고 문구에 조그맣게 (혹은 계약서 약관 등에) 한정 문구를 넣는다. '단, 일부 차량의 경우 제외'. 이건 마치 70% 바겐세일 문구를 보고 들어 간 옷 매장에서 절대 다수의 괜찮은 옷들이 '단, 일부 품목 제외'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고 실망하며 발걸음을 돌리던 우리네 모습과 유사하다. (불량 차량의 이탈)


그렇다면 영세업체가 다룰 수 있는 차량은 대강 범위가 정해진다. 그럭저럭 괜찮은 급의 중형 차량 정도가 그것이다. (아주 상태가 좋은 소형차와 상태가 아쉬운 고급차량도 포함된다고 봐도 된다.) 이 급의 차량은 공급 대수가 많다는 특징이 있다. 그말은 대규모 업체와 영세 업체가 시장을 가르더라도 둘 다 손해 볼 여지가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검사 비용은 균형으로 수렴하지 않았지만 취급하는 차량의 종류가 한정된 범주로 수렴했다. 이렇게 두 업체는 공존을 한다.




넛지 전락 같은 것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나는 학부 시절 경제학을 전공한 만큼의 지식만 갖고 있을 뿐이다. 그 이상의 설명이나 분석은 내 능력 밖이다. 그렇다면, 대학 보다 더 오랜 시간을 머무르고 있는 직장에서 이를 접목해 볼 부분이 없을까?


1. "그 회사 (부서, 부서장  등으로 치환 가능) 가지 말고 우리 회사 (부서 혹은 '나와 함께 일하러') 오세요. 거기보다 연봉 더 드릴게요." 라는 말을 하는 입장이 되어보자. 진짜 우수한 인력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 사람들의 행위엔 (내눈엔 그것이 때론 납득이 안가거나 값어치가 없어 보여도) 다 이유가 있다는 말도 연관 지을 수 있겠다.


3. 진짜 경쟁력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한 인재는 작은 이익을 남들보다 조금 더 얻기 위해 몸도 고생하고 시간도 날아간다. (앞선 예를 빌리자면 100불 벌겠다고 두 군데를 돌아다녔지만 수중에 남는 것은 20불 뿐이다. 아차, 기름값도 더 들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 필부필부인 우리네 삶이다. 그 20불이 어디야? 하며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들 수도 있고, 100불 따위 신경도 안 쓰이게 값어치를 높이겠어! 하며 자기 계발을 해도 된다.





곡고화과(曲高和寡). 곡이 높으면 화답하는 사람이 적다는 뜻으로,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이다. 글을 쓰다가, 문득 오버랩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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