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삶을 살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철근육 Feb 17. 2019

어른답게 살아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와이프는 백화점 식품코너에 먼저 들어가 있었다. 몇 분 늦게 딸 손을 잡고 그곳을 향하던 나는 출입구 바로 앞 시식코너에서 범상치 않은 옷차림의 사내가 견과류를 맨손으로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손에는 상처가 있었던지 낡은 붕대를 어설프게 감고 있었다. 노숙자인 듯 아닌 듯, 최소한 도인 정도로 불릴 법한 그를 뒤로 하며 나는 딸 손을 잡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코너 아르바이트생은 겁에 질린 듯했지만 어찌할 바가 없었다. '보안 요원은 어디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려던 찰나, 다행히 그 사내는 몇 번의 시식 후 그 자리를 떴다.


어떤 고함도 없었고 누구도 비명을 지르거나 하지 않았다.




식품코너에서 와이프를 만난 이후로 쭈욱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사람이 사람을 안 좋게 바라보다니. '어른'이 되자고 다짐을 매번 해도 당장 내 눈앞의 판단에는 흐려지는 수준이라니. 그를 내쫓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그가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있는가? 나는 왜 이렇게 이기적인가?


장을 보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장보기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고 와이프가 계산을 하는 동안 나는 딸의 손을 잡고 먼저 식품코너 바깥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자 아까 그 남자를 무서워했던 아르바이트생이 다가와서 친절하게 딸에게 말을 걸고 인사해줬다. 착한 분인걸 알자 아까 얼마나 무서웠을지 더 걱정이 되며 생각이 다시 복잡해졌다.


그러던 찰나 와이프가 나왔고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우리가 있던 부근의 시식 코너 견과류를 짚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와이프 손을 끌며 얘기했다.


먹지 마.


와이프가 놀라며 왜 그러냐 물었다. 나는 속삭이듯 얘기했다. '아까 노숙자로 보이는 분이 먹었던 코너란 말이야.'


그 말을 들은 와이프가 나를 나무라며 얘기했다. "그런 이유였다면 다르게 전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까처럼 화들짝 손을 끌어버리면 그분(아르바이트생)이 당황하거나 민망했을 수도 있잖아."




나도 모르게 그랬노라며 얼렁뚱땅 넘겼지만 돌아와 샤워하는 내내 아이에게 잠자리 이야기를 하는 내내 내심 마음이 무겁다. 나이가 들수록 차분해지기는 커녕 되레 성격만 급해지고 시야가 좁아지는 것 같다.


그 결과, 착하던 그분에게 되레 가장 큰 상처 내지는 당황스러움을 안겨주고 말았다. 어쩌면 그녀는 퇴근 후에 그 노숙자 같았던 사람보다 내가 더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눈엔 테리우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