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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을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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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Jul 18. 2019

얼마나 많은 삶이 생략되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디테일은 초 단위인 것을.

둘째는 예정일보다 2주 하고도 반을 먼저 태어났다. 다행히 아이도 산모도 건강했다. 하지만 우리를 기다리던 현실적인 어려움들은 어느새 코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우선, 양가 부모님을 비롯해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원래 오실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예정일과 어긋나면 누군가 오려했다 해도 상황이 맞지 않았을 것이었다. 요리에 그렇게도 소질이 없던 내가 블로그에서 미역국 조리법을 찾아 (보온병이 없어) 텀블러에 담아 병원에 가져갔다. 밥은 냄비밥을 했다. 미국 온 이후로 와이프의 냄비밥은 늘 성공적이었고  맛을 익혀 둔 덕분인지 7할 정도의 맛 흉내를 냈다. 미역국은 괜찮았다. 고소한 맛이 상당히 먹을만했다. 당장 인스타에 자랑을 올렸다.


다음으로 조리원이 어긋났다. 이곳에 처음으로 산후 조리원이 생겼다 하여 우린 계약을 했다. 하지만 예정일 전후로 1주 정도의 버퍼를 두는 스케줄링 방식에 둘째의 2주 반 이른 출산은 끼어 들 틈새가 없었다. 우린 취소해야 했다.


산후 도우미 이모님 스케줄도 어긋났다. 원래 조리원 1주, 이모님 2주 일정이었으니 이모님 입장에선 3주 반이나 이르게 우리 연락을 받게 되신 입장이었다. 당연히 다른 집에서 일정을 보내고 계셨다.


우린 이모님께 최대한 이른 방문을 요청드린 뒤 2박 3일의 산부인과 입원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둘째는 새 카시트도, 차량 운행에도 큰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차고 문을 열고 차를 넣는데 와이프가 문득 감정에 북받쳐 얘기했다.

- 차고 문을 나설 때는 세 명이었는데, 들어올 때는 네 명이라니 너무 이상해.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늘 뒷좌석의 첫째 옆자리에만 앉던 와이프가 이제 조수석에 앉아 저 얘기를 했다. 어느새 뒷좌석은 앞보기 어린이용 카시트 하나와 뒤보기 유아용 카시트 하나가 차지하고 있다.


집에 오니 모든 것이 달라져 있다. 가장 작은 존재 한 명의 추가가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는 산부인과에서 들은 얘기를 되새겼다.


- 보통 서너 시간에 한 번 모유를 먹고 모유 먹기 전 기저귀를 갈면 될 테니까 보수적으로 세 시간에 한번 잡아도 하루 여덟 번만 고생하자.

- 그래도 첫째보다는 가벼우니까 여차하면 훌쩍 들어 안으면 될 거야.

- 내가 한국보다는 집에 있는 시간이 기니까 밤에도 내가 좀 더 자주 안을게. 여보는 그때 좀 자.


왜 늘 현실은 이상보다 잔인하던가. 초유는 아이가 먹기에 충분하지 않았고 배가 고픈 아이는 서너 시간이 아니라 거의 십오 분 단위로 엄마를 찾았다.


작았지만 말을 못 하는 아기는 왜 우는지 알려주지 않았고 엄마 아빠는 배고플 때, 졸릴 때,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라는 세 가지 경우를 제외하곤 첫째 때의 기억을 깡그리 잊어버렸다.


오늘 처음으로 소아과에 데리고 가는 차 안에서 와이프에게 얘기했다.

- 그때 기록으로 좀 더 남겨둘 걸.

- 진짜 너무 바쁘고 힘드니까 기록 남겨야지 해도 안되더라. 그냥 틈나면 잠이라도 자두기 바쁜 게 현실인 거야.


그런 현실 속에서 누군가 물을 것이다.

- 힘들죠?

그러면 수많은 복잡한 항목들이 머릿속을 맴돌다가 우리 입에서는 단순한 대답만이 나오고 말 것이다.

- 다 그렇죠 뭐~


얼마나 많은 삶이 생략되는가.





이렇게 나는 오늘도 기록이 아니라 감상을 남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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