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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Sep 13. 2019

예측 불가 시리즈 (1) : 자녀

힘들었지만 기억에 남는 하루

 SNS에 올라오는 신규 게시물이 뜸하다. 뭔가 허전하단 느낌을 애써 무시하며 습관처럼 인스타를 열었다. 순간 누군가 사진을 올렸다. 실시간 사진이었다. 반가운 마음이 들던 것도 잠시, 나는 흠칫 놀랐다. 지금이면 한국은 새벽 네 시였던 것이다. 급히 카톡을 넣었다. "안 자냐!". 답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내 스스로 깨우쳤다. 한국은 연휴 전날이었던 것이다. 이는 새벽 네 시까지 놀아도 부담이 없 소리였다. 또한 향후 며칠간은 SNS가 한적하리란 얘기이기도 다.


해외에서 맞이하는 한국의 명절은 오히려 고즈넉해서 잡상에 적합하다. 마치 뭐랄까.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서울에 남았더니 휑한 서울 한복판 거리의 모습에 놀랐던 기억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시리즈를 기획(?) 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이전의 시리즈 글들은 여기에 묶어 놓았다.)

https://brunch.co.kr/brunchbook/crispwatchbook2



1.

와이프 생일만 떠올리면 나는 꽤나 슬프다. 왜냐하면 함께 하지 못 했던 적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디 딴 데 가서 논다고 그런 것은 아니다. 떨어져 있던 순간은 모두 내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출장을 나가 있었다. 모두의 축하를 받을 때, 가장 큰 축하를 해 줘야 하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 정작 해외에 있었던 것이다. 와이프는 그 허전함을 혼자서 감내해 왔다. 그러다가 이렇게 우리 가족이 모두 미국에 나오게 되었다. 나는 가슴 한편으로 내심 그 미안함을 갚을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기대했다.


2.

드디어 와이프 생일이 다가왔다. 미국에서 맞는 첫 생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어디로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 보장돼 있었다. 갑작스러운 출장이란 것이 생길 리가 없는 파견이지 않는가. 하지만 친척이나 친구 없이 온전히 우리 가족만 있는 상황이라 사전에 몇 가지 양해를 구해야 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차가 한 대라 몰래 빠져나가 케이크를 사 올 수 없었다. 선물도 마찬가지였다. 다행이는지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와이프는 현 상황에서 뭔가 새로 사기 애매하다 했다. 그래서 조금 우습지만 케이크는 내가 출근 한 사이 와이프가 사다 놓고, 선물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3.

그래도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작은 비밀 계획을 세웠다. 일단 카드 정도는 몰래 살 수 있다. 그것도 두 장을 사서 하나는 내가, 다른 하나를 딸에게 쓰게 하면 좋을 것만 같았다. 아침엔 일찍 일어나 미역국을 끓이기로 했다. 그리고 집에 올 땐 몰래 꽃 한 송이를 사는 것이다. 퇴근도 일찍 해서 둘째를 내가 계속 안아주면 될 터였다. 짧지만 와이프에겐 굵은 휴식이 되게 하리라.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생일 전날, 와이프의 눈치를 피해 첫째를 위층으로 데려가고 몰래 빼 둔 카드에 편지까지 성공적으로 쓰게 다. 이후 나머지는 모두 내 컨트롤 영역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다음날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출근하며 테이블에 카드 두 장과 미역국을, 퇴근길엔 장미꽃과 굵은 휴식을. 아, 꽤 멋진 남편이구나.


4.

생일날 아침, 첫째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침부터 양비론에 빠졌다. (* 양비론 : 아이에게 종종 보이는 현상으로, 이것도 싫다 and 저것도 싫다를 무한히 반복하는 형태를 지칭한다. 95%이상의 확률로 심한 짜증을 동반한다.) 전날부터 '내일이 엄마 생일이니 기쁘게 축하해주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당혹스러웠다. 아이의 컨디션은 내 컨트롤 영역을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무서운 꿈을 꾼 건지, 날씨 탓인지, 단순히 기분이 좋지 않은 건지, 어제 유치원에서 놀이가 과해 피곤한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아이는 가장 축하를 받아야 할 엄마에게 가장 큰 짜증을 내고야 말았다.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일어나기 싫어! → 그럼 유치원 가지 마 → 싫어 유치원은 갈래! → 그럼 어서 일어나서 밥 먹어 → 싫어 밥 먹기 싫어! → 그럼 먹지 말고 가 → 싫어 배고파! 등의 양비론에 스쿨버스를 놓칠 뻔하였다고 한다.)


둘째는 아침부터 엄청 울었다. 이제 생후 7주짜리 아이가 무엇을 하겠냐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둘째는 와이프 생일 이틀 전부터 갑자기 7~8시간 통잠을 자며 부모에게 큰 기대감을 안겨줬던 터였다. 잠이 부족했던 모두에게 단비 같은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던 그는 엄마 생일을 맞아 새벽에 다시 수시로 깨고, 깨면 울고, 달래려 안으면 일어나라고 또 울었다. 울음소리로 가늠컨대 배앓이도 아녔고, 성장통도 아녔다. 고통에서 비롯되는 날카로움이 없는, 안아달라는 칭얼거림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더 속상했다. 왜 그게 하필 엄마 생일에 다시 시작하느냔 말이다. 둘째의 울음도 역시나 내 컨트롤 영역이 아니었다.


5.

아침에 컨트롤 영역 밖의 일들이 닥치자, 도미노가 무너지듯 많은 것들이 스러져 갔다. 미역국은 끓일 여유조차 없었다. 그나마 와이프가 아이들을 보는 사이, 출근 준비를 하며 내가 첫째 도시락을 싼다는 게 그만 마카로니를 완전 망치고 말았다. 이건 맥앤치즈가 아니라 마카로니와 치즈를 넣은 죽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아침 회의에 늦었다. 회의를 마치고 오니, 딸의 양비론에 대한 스토리가 카톡에 남겨져 있어 속이 답답했다. 게다가 그렇게 안 오던 택배가 굳이 오늘 왔다. 오전 10시에 온다더니 오후 2시에서야 도착한 택배를 기다리느라 와이프는 눈도 잠시 붙이지 못했다. 오후에 좀 쉬려던 찰나 집에 전기가 나갔다. 집의 문제인지 단지 전체의 일인지 알 길이 없어 와이프는 불안해했다. 하교한 딸을 데리고 와이프가 자신의 케이크를 사러 나섰더니 오후의 정전 때문에 마트 문은 닫혀 있었다. 그래서 와이프는 아이 둘을 태운 채 좀 더 먼 마트로 차를 돌려야 했다. 나는 조금 더 일찍 퇴근했으나 갑작스런 비 때문에 꽃을 사러 들르질 못했다.


6.

아침이 아닌 저녁, 뒤늦게 내가 미역국을 끓이는 사이에 와이프는 갈비찜을 했다. 밥을 먹고 비로소 케이크 하나 앞에 두고 노래를 부르니 이미 시각이 10시가 넘었다. 정신없었던 하루 일과에 비해 참으로 조촐한 파티였다. 와이프가 우스개 소리로 얘기했다. "빨리 지나가길 기도한 생일은 처음인 것 같아.". 파티가 끝나기 무섭게 다른 일들이 겹쳤다. 대강 씻기고 재우려 했던 첫째는 놀이터에서 모래 놀이를 했는지 머리카락 구석구석 모래 알갱이가 숨어 있었다. 둘째는 밤에도 안아달라며 여전히 목청 높여 울었다. 나도 와이프에게 얘기했다. "힘내. 30분만 지나면 내일이야."


7.

하루가 지난 다음날 놀랍도록 모든 것이 평온했다. 마치 오늘이 어제였다면 참 아름다운 생일이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딸은 웃으며 침대에서 눈을 떴고, 둘째는 늦은 아침까지 곤히 잤다. 나도 회의를 잘 마쳤고, 날씨도 눈부시게 좋았다. 그런데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어제 와이프의 생일이 내겐 특별했다고 말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 많은 일들을 다 인지하고 기억하며 그중 상당 부분을 함께 겪었다는 , "정말로 함께 하는" 생일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좋았든 싫었든, 편했든 힘들었든 그 옆에 가족이 함께 했던 것이다.


8.

터울이 있는 둘째라 나도 와이프도 무척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이프가 계속 얘기하는 것이 있다. "첫째에 비하면 지금 너무 쉽고 행복해.". 첫째보다 둘째가 더 귀엽다는 뜻이 아니다. 첫째 육아 때는 내가 야근에, 출장에, 회식으로 집에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둘 다 잠을 설치든 팔목이 아려오든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 이제야 여보가 첫째 때 엄지와 검지 사이가 아프단 말이 와 닿아." (아이를 안으려고 손을 자주 펼치다 보면 엄지와 검지 사이가 아프다.)


"아, 이제야 여보가 팔목과 발목이 아프다 했던 말이 와 닿아." (아직도 내 몸무게만큼은 헬스장에서 드는 나였기에 까짓 5Kg 아기가 뭐가 무겁냐 했지만, 육아의 시간이 길어지니 잠깐잠깐 안았던 것으론 상상할 수 없었던 무게감이 느껴졌다.)


"아, 이제야 여보가 공원의 시계가 소중했단 말이 와 닿아." (밤 중 수유를 하러 깨면 와이프는 우는 아이를 달랠 겸 베란다에 가서 밖을 내다봤는데, 그때 집 뒤 공원에 있던 시계가 그리 고마웠다고 한다. 뭔가 홀로 깨있는 것 같다는 외로움을 덜어주거니와, 지금이 몇 시인지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새벽에 애기 때문에 깨면 시간 확인이 어려워 곤혹스러운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9.

이 모든 감정을 섞어 결국 대화 끝에 내가 붙이는 말은 한결같다.

"아, 정말 나는 부족한 아빠였구나. 미안해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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