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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Oct 09. 2019

직장 상사와 의견이 같으면 아부인가요?

그것이 바로 우월 전략이긴 합니다.

상사와 같은 의견을 내는 행위는 직장인에게 분명한 우월 전략이다. 굳이 복잡한 게임 이론을 차용하지 않더라도 이것을 해석하는 일은 쉽다.


1. 직장 상사의 의견이 좋을 때

1) 나도 동의 : 설명이 필요 없다.

2) 나는 부정 : 좋은 의견에 대한 부정이므로 상사로부터의 신뢰도 하락, 동료들로부터의 논리성 평판 하락


2. 직장 상사의 의견이 나쁠 때

1) 나는 동의 : 위기의 순간에 상사 옆자리에 있음으로써 "강한" 신뢰 획득. 동료들로부터 비판 받음

2) 나도 부정 : 동료들로부터의 평판 유지/상승, 상사로부터 신뢰도 급락 (브루투스, 너마저!)


상사의 의견이 좋을 때 이에 동의하는 것은 당연히 좋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상사의 의견이 나쁠 때다. 왜냐하면 이때 동의하느냐 부정하느냐에 따른 상사로부터의 평가 차이 폭이 크기 때문이다. 위기의 순간에 옆에 있어 주느냐 아니냐의 문제인 탓이다. 그러다 보니 동료들로부터의 평판 차이도 커 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도 상사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우월 전략인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상사가 고과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월 전략이므로 이것을 따르는 것이 무조건 좋을까? 답은 묘하다. 개인으로 봤을 때 우월 전략이지만 집단 전체로 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용의자의 딜레마 게임이 대표적인 예다.) 만약 내가 부서원들의 의중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예를 들면 부서 넘버 2) 자리라면, 부서장과 내가 동의하는 순간 그 일은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즉 좋지 않은 의견을 회사가 택하게 되는 셈인 것이다. 


그래서 얼마 전 유행했던 책들*에서 직원들의 솔직함을 그토록 강조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아니라 회사 전체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집단의 의사결정에 대한 것은 이 책들을 참고하면 된다. 내가 여기서 짚고 싶은 것은 2-1)을 선택한 개인에 대한 것이다. (* 참고로 앞에서 언급한 책들의 대표적 예로, Ray Dalio의 "Principles"나 Robert Kegan 등이 지은 "An everyone culture" 등을 들 수 있다. 정말 좋으니 일독을 권한다.)


우리는 이 사람을 '아부하는 이'로 규정지어야 할까?




평가는 상호적이다. 상사와 후배가 의견을 달리하는 상황에서는 중간에 낀 내가 어떤 입장을 선택하든 어느 한편으로부터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때 내 개인의 입장에선 상사 편을 드는 것이 우월 전략이지만 이게 장기적으로도 옳다고 봐서는 안 된다.  상사가 물러나고 나서 내가 부서장이 되었을 때 부서원들이 모두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 우리는 다방면으로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1. 무엇이 "나쁜 결정"인가?


과연 우리는 하루 일과 중 얼마를 회사, 나아가 국가를 고려하며 일을 하고 있을까? 나쁜 결정이라 함은 좋게 봤을 때는 '내가 생각하기에 회사가 수익을 올리기에 적합하지 않은 전략이다.'라는 쪽이다. 그러나 좋지 않게 보면, '내가 하기 싫은 일이다.'인 경우가 될 수 있다. 


2. 무엇이 "나쁜 사람"인가?


우리는 때론 편향된 시야를 가진다. 뉴스에서 '어느 날 출근했더니 내 책상이 화장실 앞에 놓여 있었어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봤다고 생각해 보자. 대부분은 회사를 욕한다. 반면 회사에서 아무 일도 안 하고 조용히 있다가 월급만 받아가는 사람을 볼 때는 개인을 욕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와 같은 직원이 앞선 뉴스 속 주인공일 수도 있다. 반대로, 우리가 욕하는 사람도 엄청난 인재였다가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회사로부터 상처를 받아 그리된 것일 수도 있다. 즉, 우리는 그저 우리와 입장을 달리 하는 사람을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있다.


더불어 이런 고민도 함께 해 보면 좋다.


- 무엇이 "아부"인가? 조직에 반해서 사리만 챙기는 것? 어쩌면 다수에 반하는 소수를 보며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저 그 사람의 말투나 표정을 보고서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아부는 나쁜 것인가? 내 평판을 높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은 당연한 진화심리학적 귀결 아니던가? 나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 왜 아부하는 사람은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가? 그 사람만의 잘못인가? 제도적으로 언로가 막혀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다른 이들이 의견이 아니라 불평만 내고 있진 않았는가? 




그 결정이 아부인지 아닌지는 자신의 입장을 다른 부서원에서 얼마나 설득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만약 이때 자신의 얘기가 설득이 아니라 '변명'처럼 들린다면 그것은 아부에 가까울 것이다. 물론 그 입장을 듣는 이도 자신의 주장만 고집하는 태도를 벗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고등학생의 논술 결론 마냥 늘 뻔한 도덕적 결론에 도달하긴 하지만, 이는 뒤집어 생각하면 그만큼 기본적 원칙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타인의 입장에 나를 대입해 보는 행위가, 괜히 거의 모든 종교에서 황금률로 추앙받겠는가?





어떤 회사의 인사 담당자가 하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지원자의 성별이 한쪽으로 쏠리고, 그 내용도 너무 자기자랑 위주라서 문제가 무엇일지 고민한 끝에 입사 지원서의 포맷을 바꿨다고 한다. 그러자 지원자의 성별, 지원서의 내용에 균형이 갖춰졌다고 했다. 때로는 제도적 개선이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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