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창을 열면 시작 페이지로 설정된 포털 사이트가 나온다. 어느 날 부동산 메뉴 쪽에 '독특한 평면도를 가진 아파트'에 대해 다룬 글이 보였다. 호기심에 눌러봤더니 대부분 전망을 좋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러한 모양새가 나왔다고 적혀있었다. 이와 더불에 또 하나 눈에 띄는 게 있었다. 그 아파트들이 대부분 비싸다는 사실이었다.
바깥이 잘 보이는 아파트일수록 비싸다.
숙소도 전망이 어떠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난다.
모텔도 천정이 열리는 곳이 더 비싸다.
차도 뚜껑이 열리면 비싸다.
시계도 내부 구조를 볼 수 있는 건 비싸다.
대체로 투명한 것들은 비싸다.
그러나 어찌하여 비닐우산은 우산 중에 제일 싼 것일까?
재화의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파악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만약 앞선 사례들만 보고서 '옳거니, 투명한 것들은 다 비싼 것이로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조너선 하이트의 책에는이와 유사한 맥락의 실험이 나온다.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을 보여주는 예인데, 실험 참가자에게 일정한 수의 나열을 보여주고서 그에게 검증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를 준 다음, 규칙을 맞추게끔 하는 것이다.
보여준 숫자 : 1, 3, 5
- 혹시 7, 9, 11 도 규칙에 맞나요? (대답 : 예)
- 그럼 123, 125, 127은 어때요? (대답 : 맞습니다.)
- 옳거니! 규칙은 2씩 증가하는 홀수입니다.
정답은 그저 '증가하는 수의 나열'이었다. '어라, 아쉬운 오답 아닌가?' 싶었는데, 뒤에 나오는 하이트의 설명이 중요했다. '확증 편향에 빠지면 자신이 맞는지에 대한 근거만 찾을 뿐, 틀릴 수도 있다는 근거를 찾지 않는다.'
예를 들면, 그는 혹시 모를 마음에 '2, 4, 6 도 맞나요?'라든지 (홀수라는 가설이 깨진다.), 또는 '1, 4, 7 도 맞나요?' (2씩 증가라는 가설이 깨진다.), 아니면 '1, 3, 2는 어때요?' (증가라는 가설이 깨진다.)라는 식의 질문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재화의 가격 결정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얼마나 올바른지에 대해 언제든 적용할 수 있는 얘기다. 확증편향에 빠지게 되면 자기 생각이 정말 옳다고 믿게 된다. 반증을 발견한 뒤 눈을 뜨고 나면 비로소 놓친 부분에 아쉬워 하며 이마를 칠 뿐이다.
그래서 열린 사고가 중요하다. 인정상으로야 'A 말도 옳다. 그래 B 말도 옳다.' 하는 황희 정승의 마인드가 좋다지만, 현실적으로는 'A 말도 옳을 수 있다. 그리고 B 말도 옳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정도가 되레 더 낫다.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가장 열려있는 분이 있다. 누구의 말에나 동조하는 줏대 없는 사람이란 소리가 아니다. '언제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가슴에 품고 있다는 뜻이다. 그 상대가 한참 어린 신입사원일지라도 말이다. 내가 이분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열림이 진실되기 때문이다. 진실됨은 사고가 열려있는 방향이나 범위를 보면 알 수 있다.
흔히 열려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 분야가 한정되기 십상이다. 학자라면 자신이 공부하는 영역에서는 최대한 의견을 수렴하려고 하지만 그 외의 영역에서는 아집을 부리는 경우를 상상하면 되겠다. 혹은 직장에서는 열려있지만 가정에서는 닫힌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 분의 경우에는 회사/가정, 업무/개인사 등 영역이나 상대방 연령대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가장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가족들에게서도 그들의 의견을 듣고, 항상 가장 바른 길을 찾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지난 주말에 청소를 마치고 피곤해서 잠시 앉으려던 참인데, 가족 중 한 명이 콩나물을 다듬자고 하더라고. 좀 쉴까 하던 차라서 잠깐 망설이긴 했는데, 곰곰 생각하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그것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는 거야. 그래서 두런두런 둘러앉아 콩나물을 다듬었지."
나는 시중에 나온 경영서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경영학 이론서 말고, 'xxx 사장의 일하는 법' 류의 책을 말한다.) 그러나 그분이 추천해 주시거나 선물해 주시는 책은 최대한 높은 순위로 두고 읽어보는 편이다. 늘 열린 분이 어떤 부분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