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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Dec 22. 2017

회사와 개인의 적절한 관계는? (2)

개인은 회사에 대해 얼마만큼의 기대를 가질 수 있을까?

0. 잡상의 발단


사실 이 카테고리로 2편을 쓸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시리즈로 생각한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동료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일견 회사를 향한 분노로 보이는 감정들이 실상은 '인정받고 싶다'거나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가깝다고 느끼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이에 대해 생각을 좀 하다 보니 개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회사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다. 원래 체계가 없는 게 내 사고의 특성이긴 하나, 그래도 브런치에는 조금이나마 정리하는 차원에서 굳이 카테고리를 나눠 2편으로 적어본다.


참고로, 1편은 여기.

https://brunch.co.kr/@crispwatch/46




1. 사람은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사람의 본능이 아닐까 한다. 어린 아기들도 어떻게 하면 부모가 좋아하는지 파악하려 애쓰지 않던가. 그 이론을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다양한 욕구 단계론(또는 성장이론)에도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매슬로우는 4단계 자아존중(Self-Esteem)의 욕구로 이를 표현했고, 그 밖의 인간 성장이론에서도 정신적 충족(독립성 확보 등)을 상위단계로 표시했다. 굳이 고상한 이론을 따지지 않더라도, 당장 누가 당신의 성과나 역량에 대해 깎아내리는 발언을 한다면 그 사실여부를 차치하고서 우선은 반감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다.


내가 하는 일마다 원더풀!이라는 평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 그러나 회사는 나만을 바라봐 주지 않는다.


당연한 지식이라 머리로 이해하긴 쉬워도 몸으로 행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본능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상대를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인터넷에서 친구관계, 연인관계, 부부관계를 오래 지속하려면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알면서도 이를 행하기 어려운 것은 상대를 존중한다는 것이 일견 나를 낮춘다는 (=내 존중은 뒤로 밀리는) 것과 유사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1:1로 맺어진 관계에서도 실행이 쉽지 않을진대 1:다수로 맺어진 회사는 오죽할까. 심지어 회사는 감정이라는 것이 없고 판단력이 없어 나를 존중하는 기능조차 없다. 물론 회사에서 나를 존중하는 것은 회사라는 무형의 존재가 아니라 그 안을 채우고 있는 구성원들일 것이다. 회사의 구성원들은 왜 나를 잘 인정해주지 않는 것일까? 상대방이 나보다 훨씬 높은 직위에 있어 나를 칭찬한다고 한들 그의 자존심은 상처받을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도 우리는 칭찬을 받기 힘들다. 상처받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3. 일단 계약관계는 중립적인 것이란 사실을 인지하자.


우리는 계약으로 맺어졌다. 아직 회사 구성원들은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해 나를 개인적으로 괴롭히더라도 우리는 이런 전제를 믿고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좀 더 일하기 좋은 일터가 된다. 하지만 이는 논점을 흐리므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계약은 어필과 인정이 아니라, 요청과 실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어떤 일을 해 내면, 잘했다고 박수를 쳐 주는 게 아니라 그에 상응한 대가(고과나 연봉)로 보상을 하는 게 계약의 본질이다. 항상 일에서 감정(호오)을 배제하라고 주장하는데 그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4. 칭찬은 하는 사람 기준이다.


그럼에도 우린 사람이다. 고과나 연봉도 좋지만 기왕이면 그런 보상을 받을 때, "홍길순 대리, 수고했어. 이번 성과가 아주 뛰어나!"라며 추켜세워주면 누이 좋고 매부 좋지 않은가. 참고로 조직 관리 차원에서도 이는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게, 실적이 뛰어난 (혹은 조직의 가치를 잘 지키는) 직원을 공공연히 칭찬하는 것이 주변 동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잭 웰치도 이를 상당히 강조한다.) "나도 저렇게 (실적을 잘 내거나, 가치를 잘 준수) 하면 인정을 받을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동료들을 상상해 보라. (질투를 하는 소수도 있을 수 있지만.)


사람에 대해 말을 하니 사람의 성향으로 다시 풀어보자. 당신이 남을 칭찬하는 경우를 곰곰 생각해 보자. 앞서 언급했다시피 타인의 칭찬은 상대적으로 나의 깎아내림을 뜻하기에 행하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혹시 이런 칭찬으로 상대방이 자만심에 편승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도 섞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감정을 차치하고서 가장 중요한 관점은, 칭찬은 '하는 사람의 기준을 충족시켰을 때'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즉, 받고 싶은 사람이 암만 안달이 났어도, 하는 사람의 성에 차야 비로소 칭찬이 겉으로 드러난다는 말이다. 




5. 기대를 버리라는 말은 너무 슬프다. 


많은 경우 술자리에서 이런 푸념을 하면 우리는 빈 술잔을 채워주며 쓸쓸히 얘기한다. "그냥 기대를 버려. 그럼 세상이 편해.". 그러나 기대를 버리라는 말은 너무 슬프다. 우리 인생의 대부분, 최소한 절반 이상이 얽매이는 게 직장 아니던가. 


1) 인정을 하는 주체의 기준을 파악하라. 당신은 100을 갖다 줬다지만 상대의 기준으론 10에 못 미칠 수도 있다. 

2)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라. 그건 당신의 입장이다. 내가 이걸 해냈다고 해서, 내가 그 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당연히'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3) 유사한 맥락인데, 원인과 결과 분석을 냉정히 하라. 명문대를 나왔다는 것은 '수능성적이 좋았다.'와 연관이 된다. (고교시절 성적이 내내 우수했다는 사실까지 가려면 내신의 비중이 높은 명문대라는 전제가 더 필요하다. 하물며 똑똑하다는 사실까지 가려면 얼마나 많은 전제가 필요한가.) 변호사 시험에 붙은 것은 변호사 자격을 가진다는 것뿐이지 그게 곧 성공과 부를 뜻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내가 한 업무/성과가 부서에서 잉여의 칭찬까지 해 줄 만한 것인지 분석을 해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칭찬받아 마땅한데 내 주변이 너무 목석같아 아무도 인정 가득한 대화를 해주지 않는다면, 마음 편하게 당신과 기준이 잘 맞는 사람과 술 한잔 하라. 적어도 그 부서/회사는 당신'만' 칭찬을 못 듣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그런 것일 테니까. 


오늘도 직장인들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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