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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을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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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Jun 22. 2018

나는 말로만 변화를 외치고 있었다.

변화는 평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하는 것임을.

처가에 들렀다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이었다. 딸은 카시트에 앉은 채 뒷자석에서 잠들었고 밤은 점점 깊어져 주변은 고요했다. 모처럼 와이프와 둘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순간이다.


부부 사이의 대화에서 소재의 제한이 있겠는가. 문득 며칠 전 회사 복도에서 마주친 후배들이 생각났다. 앵클팬츠가 유행이라지만 회사에서 발목이 도드라진 바지를 입고 목이 낮은 양말에 닥터마틴스러운 굽높은 로퍼를 신은 복장을 보게 된 것이 놀라웠다. 그것도 미국에 가 있던 근 1년 사이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나는 짐짓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런데도 복장에 대해 아무 내색 안했지. 농담으로도 안했고 그저 아무것도 못 본 건처럼, 늘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야. 심지어 속으로 그런 것을 느끼는 것 자체가 꼰대래. 나는 꼰대스럽게 생각을 한 건 아니고 여보한테 얘기하려고 생각을 정리한 것 뿐이야.


와이프는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웃음이 잦아들 때쯤 가파른 호흡을 붙잡고 겨우 말을 꺼냈다. 나는 '어쨌거나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것 자체가 꼰대'라고 놀릴 줄 알았다. 대개의 대화는 어느정도 예측 가능성을 띠잖는가.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의 것이었다.


그거 몇년 전부터 바뀔 수도 있었는데, 몰랐어?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되물었다. 몇년 전이라니, 언제? 그때도 앵클팬츠가 유행했던가?


아니. 핵심은 그게 아니었다.


몇년 전 내가 신입사원이었을 때, 그 때도 통통 튀는 신입들의 센스와 아이디어가 있었을 것이다. 그때 유독 나이가 많았던 나는 큰형으로서 큰오빠로서 동기들 틈바구니에서 알게모르게 이런저런 조언을 한단 핑계로 그들의 센스가 발현되는 것을 막았으리라. 적어도 그 발현의 폭을 좁혔으리라.


내가 지금 후배들의 변화를 용인하든 못하든, 그것을 내색하든 삼키고 참든, 이 모든 것은 다 평가일 뿐이다.


나는 내스스로가 변화를 이행할 수 있었는데도 그저 한걸음 떨어져 평이나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운 나쁘게 나와 함께 들어온 젊은이들의 센스를 좁히면서 말이다.


돌아오는 몇시간의 운전이 지겨울 법도 했건만,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건지 소름이 돋는 턱에 시간이 가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날 세시간여의 귀경길, 휴게소 한번 들르지않고 차를 몰았다.




언제쯤 바보같은 짓을 그만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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