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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을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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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Jul 07. 2018

새벽 전철.

A tale of two lives.

한국 돌아오자 마자 일이 많이 하달 됐다. 요즘같은 불경기엔 다행이라 할 일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들은 끄기가 무섭게 새로 붙었고 그 중 일부는 미처 뜨겁다 말할 새도 없이 활활 타올랐다.


스스로 인복이 있노라 말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주변의 도움이 컸고 그들 덕분에 꽤 큰 일들이 무탈히 지났다.


중요한 회의 준비를 하던 날이다. 회의 시작은 아홉시였지만 나는 운동을 놓치기 싫었고 저녁엔 회식이 예정돼 있었다. 설사 회식이 없더라도 회의 준비팀은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법이니 오후 운동은 불가능했다.


준비팀의 출근 시각은 일곱시 반. 어쩌랴. 나는 다섯시에 일어나 아침 운동 후 씻을 요량으로 부스스한 머리로 세수와 면도만 하고 다섯시 반 전철에 몸을 실었다.


예전에도 가끔 탔던 시간대인데 오랜만이어서 그랬을까. 텅 비었을 것이란 내 짐작과 달리 전철은 꽤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평소보다 좀 많이 일찍 일어난 탓에 책도 읽지 않고 바로 눈을 붙이려던 찰나, 문득 눈에 들어온 광경들이 졸음을 내 쫓았다.


우선, 연령대가 극과 극이었다. 이십대 극초반으로 보이는 젊은이들과 오륙십은 훌쩍 넘어 뵈는 어르신들로 양극화 됐다.


젊은이들은 대개 검은 계통의 셔츠에 찢어진 청바지, 혹은 짧은 치마였고 어르신들은 회색 계통의 낡은 등산바지, 혹은 편한 치마였다.


젊은이들은 모두 곯아 떨어졌고, 어르신들은 잘 틈도 없이 바빠 보였다.


젊은이들은 아마도 밤샘 유희를 마친 클러버들 같았고, 어르신들은 새벽일을 가시는 분들 같았다. 어느 한쪽을 부지런하다 칭송하고 다른 한쪽을 힐난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결국엔 그 두 쪽 다 부지런한 것이잖는가.


어쨌거나 나이도 복장(나홀로 정장이어라.)도 홀로 어색하게 중간계에 낀 나는 오히려 묘하게 객관화된 시선으로 전철칸을 훑었다. 그러다 문득 어느 부분에서 생각이 멈췄다.


그 시각 전철에 몸을 실은 클러버들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 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전부 다 그런 탓은 아니겠지만.)


그 시각부터 달리는 어른들은 목표(경제적인 것이든 직업적인 것이든) 달성하고자 잠을 쫓고 전철까지도 뛰었을 것이다.


나이로만 보자면 꿈을 좇아야 할 이들이 에너지를 방전한 채 꿈나라에 빠져 들었고, 이제 꿈을 좇기에 힘에 부칠 사람들이 없는 힘 짜내어 뛰고 있다.


성급한 일반화라는 것을 알지만, (잘 놀고 다음날을 위해 이른 새벽 전철을 타고 귀가하는 젊은이도 있을 것이니.)어쨌거나 그날 멍했던 내 눈은 그 생각과 함께 허공에서 멈췄다. 그리고 문득 며칠 전, 늘 첫차를 타고 출근한다는 어떤 분의 얘기가 떠 올랐다.


첫 차 타는 사람들의 특징이 뭔지 알아? 전철 내리자 마자 모두 뛴다는 거야. 첫 차라 여유 있게 움직일 것 같지만 정말 급한 사람들이 오히려 첫 차를 타는 셈인 듯 해.




성급한 일반화로 남을 비판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때 뭔가 멋들어진 것을 느꼈다면 내 삶에 보탬이라도 되련만 아둔한 내 생각은 저기서 멈췄다.


뭐 어쩌라고 싶지만.


아, 얻은 게 하나 있긴 하다. 그 뒤로도 종종 다섯시에 일어나 아침 운동을 하고 출근 한다. 얻은 게 아니라, 그냥 아침 잠이 없어진 건가.


그 역시 뭐 어쩌라고 ㅎ


모두 굿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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