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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을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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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May 21. 2018

넓은 벌판에 서다.

웅장함 혹은 막막함.

거대한 평야를 본 적 있다. 나는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차에서 내렸다. 햇빛을 막아주는 것이라곤 바람밖에 없는 그곳에서 그나마 내 눈을 가렸던 선글라스도 벗고 맨살의 그 광경을 마주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 하나, 높은 빌딩 하나 없었다. 교과서에도 산이 70%라는 우리나라, 그것도 회색 빌딩이 즐비한 서울에 익숙했던 나는 처음 바라 본 말 그대로의 지평선을 보고 막막함을 느꼈다. 크게 숨 한 번 들이키면 자유를 느낄 줄 알았건만 정작 내가 느낀 건 막막함 내지는 무서움이라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어릴 적 삼촌들이 아버지 말씀이라면 아무도 토를 달지 않고 수긍하는 점이 궁금했다. 물론 아버지 자체가 법 없이 살 분이라는 평을 듣는 분인 데다 주로 말하기보단 듣기 위주로 대화를 이끄시는 분이라, 그런 분이 뭔가 하는 말이니 그저 잘 따라 주시는 것이라 짐작은 하고 있었다.


내가 머리가 좀 커지고 문득 그 질문을 꺼냈을 때 둘째 삼촌이 하신 말씀이 아직 귓가에 맴돈다.


"우리가 너무 가난해서, 맏이였던 네 아빠는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도 막노동 나가서 돈을 벌어 오셨다."


그렇게 번 돈으로 동생들은 학업을 마쳤으니 아버지에게 감사한 마음이 커 아주 큰 이견이 아니라면 아버지 말씀을 들어주신 것이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때 그 대지를 앞에 두고 나는 젊었던 시절의 아버지 마음이 떠올랐다. 막막함을 느끼고 이내 무서움이 다가오자 그랬던 것 같다.


아버지도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버지는 그때 얘길 잘 안 하신다. 성격이 원체 조용하신 편이다. 본인이 공부를 오래 하지 못했음에도 내게 공부를 강요하신 적이 없다. 내가 성적이 꽤 나오고 그 와중에 사춘기랍시고 "내가 전국 수석을 한 뒤에 보란 듯이 가장 낮은 과를 들어가서 시골 가서 살란다."라고 치기 어린 얘기를 해도 그저 묵묵히 들어주셨을 뿐이다.


그런 분이다 보니 과거를 여쭈어도 "그때 일자리 구한다고 돌아다니다가 여기 와서 네 엄마도 만났으니 운이 좋았지." 하실 뿐이다.




아버지도 무서웠을 거다. 막막한 현실이 두렵고 원망도 되었을 거다. 학벌 때문에 더 높이 올라가거나 더 나은 직장을 구하지 못해 화도 났을 거다.


아버지도 젊은 날이 있었다. 남들 나팔바지 입고 다닐 때, 본인은 기름때 묻은 작업복 입고서 잘 나가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나이가 있었을 거다.


* 엄마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따로 써 보려 한다.




좋아하는 영화 중에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일본 영화가 있다. 나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가족을 일구고 그들과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시간이 덧대어지니,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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