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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Apr 12. 2018

비정상의 정상화?

비극에서 살아남기

0. 잡상의 발단


어이없는 일이 있었다. 최근 읽고 있는 책, 얼마 전 봤던 책/드라마에서 연관되는 내용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화가 난다고 세상을 향해 고함을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전에도 그런 감정을 추스르려 글을 쓴 적 있다. '카타르시스'의 원뜻은 '배설'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글을 통해 내 감정을 쏟아내려 한다. 나중에 보기 부끄럽지 않길 바랄 뿐이다.


비슷한 환경에서 썼던 글은 이랬다. 감정을 추스르려 상당히 노력했지만 구구절절 길게 이어지는 만연체에서 감정이 드러난다. 퇴고(란 것을 원래 잘 안 하지만.)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피로한 상태였다.

https://brunch.co.kr/@crispwatch/21




1. 인생은 비극이다.


인생은 슬프고 아픈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겪는 기쁨들은 그에 비하면 얼마나 작고 초라한가.


최근 읽고 있는 책에서 유사한 문맥이 나왔다. (Joseph Campbell, 『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 언제나 그렇듯 정확한 인용은 아니고 기억에 의한 복기다.) 왜 희극보다 비극이 더 많은지 얘기하는 문단의 지나가는 구절이었다. 생각 없이 책을 읽다가 마주한 이 문맥에서 나는 그만 멍해졌다.


희극보다 비극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더 크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옛 성인들부터 주변의 필부들도 그리 얘기했다. 슬픈 이야기를 보고 눈물을 쏟는 데서 감정의 순화가 이뤄지는 것일까? 아니면 엄청난 비극을 목전에 두고 '그래도 내가 낫다.'라는 안도감에서 되레 위안을 받는 것일까?




2. 사이코패스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나쁜 녀석들"에서 박해진은 사이코패스 역을 맡았다. 그는 연쇄살인범으로 수감 중이었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은 누명이었다. 관련해 작가의 인터뷰를 본 적 있다. 사이코패스라고 다 범죄자는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에 그런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했다. 역으로 모든 범죄자가 다 사이코패스인 것도 아니다.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물론 필요충분조건도) 아닌 것이다. 그냥 케이스 바이 케이스일 뿐이다.




3. 비극인 인생에서 상처받지 않으려면 사이코패스가 되어야 하나.


얼마 전 읽었던 『체험으로 읽는 티벳 사자의 서』에서 저자는 말했다. 사후 세계에 들었을 때 자기 본성을 깨달아 윤회(다시 태어남) 없이 깨우침을 세계로 가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그런 모든 기회를 놓쳐 다시 윤회를 하게 된다면 동물이나 식물보다는 그나마 판단을 할 수 있는 인간계로 가는 게 낫다.


종교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기서도 인간의 삶을 고통으로 인식한다. 비극인 셈이다. 윤회라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핵심은 삶이 비극이라는 점에 있다.


비극에서 나 자신을 지키며 살려면 사이코패스가 유리하다. 남이 나에게 공격을 해도 무덤덤하고 내가 남에게 한 공격에도 감정이입이 없다. 소위 cool한 모습이다. 허나 따지고 보면 공감 능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4. 그래서 많은 이들이 얘기한다.


책이든 대중 매체든 입을 모아 얘기하는 구절이 있다. '자존감을 지켜라.'. 내가 살기 위해 사이코패스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런저런 사건과 감정에 치여 일상생활도 감내하지 못할 정도가 되면 안 된다. 누군가는 명상을 하고, 누군가는 나를 공격한 타인을 향해 기도를 하며, 누군가는 자뻑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이겨낸다.


사실 정답은 간단하다. 그냥 동일한 상황에서 서로 한 발짝만큼만 양보하면 된다. 화가 난 사람은 말을 좀 골라하고, 잘못을 한 사람은 잘못을 인정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 않다. Ray Dalio가 얘기한 '낮은 수준의 자아'는 여러 관계들을 거치며 결국 사회의 무질서를 만들어냈다.




5. 그럼에도 기댈 곳은 하나다.


조만간 올릴 시간의 힘 시리즈에 언급하겠지만, 이번에도 동일하다. 시간의 힘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서로의 앙금이 좀 아물고 사건도 좀 더 해결되면 그렇게 멀어졌던 사이도 다시 한걸음 서로에게 다가서게 되는 거다. 예전에 장모님이 공유해 주신 좋은 글이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말일 뿐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다시 상기할 가치가 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힘이 되길 바란다.


후회하고 후회하여도 마음 다짐은 늘 바르게 하리라.
오늘은 또 반성하여도 내일은 희망이어라.




* 다 쓰고 발행 버튼을 누르려다 보니 문득 황정민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그가 했던 말을 빼놓을 수 없지 않겠는가.


"인생은 비극이야.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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