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낫프로
인턴으로 잠깐 일할 때는 시키는 일만 하면 됐어요. 나는 직원이 아니니까 책임도 딱 그만큼만, 업무 전체 프로세스에서도 모두에게 가장 지장이 없는 일만, 창의력을 동원하는 일을 주로 했어요. 아이디어를 내고, 이름을 만들고 그때는 잘한다 못한다의 개념보다는 나만의 스타일을 어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였어요. 처음 하는 일이라 많이 미숙하고 좌절도 했지만 뭔가 하고 있었죠.
사원이 되니까 미팅도 따라다니고 매니저님 서포트도 하고 일의 범위가 늘어나서 ‘오, 나 이전보다 일을 더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몽글몽글 들었어요. 시키면 “네!” 시키면 “네!” 제일 힘든 부분은 매니저님이 커버해주셨고 “네네!” 해도 부담스럽지 않았거든요. 어쩌다 통화하는 클라이언트의 이야기도 전달 위주로, 상황이 이렇고 이런 요구를 했다, 답변은 보류한 상태이고 어떡하면 될까요? 위주로 지시를 기다렸어요.
왜냐면 나는 사원이니까! 아직 일을 척척 해낼 만큼도 아니고 한 사람의 몫을 하는 직원이라기보다 누군가의 플러스 원이나 0.5 정도로 생각했어요. 일은 열심히 했지만 딱 그 정도였던 거죠. 회사에 들어와서 1년 정도는 괜찮은 일처리 방식과 마인드였어요. 어버버버 해도 잘 따라가면 됐거든요.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어요. 2년~3년 차에도 굳이 제 의견은 말하지 않고 이렇게 전달하라면 이렇게, 저렇게 일을 시키면 저렇게 했어요. 본 프로젝트를 맡기기에는 연차가 안 돼서 기부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도 그렇게는 힘들다는 말을 거의 안 했던 것 같아요. 웬만하면 맞춰주려는 마인드로 손해를 보더라도 좋게 좋게 넘어가려고 했어요.
대표님이 어느 날 조용히 부르셨어요.
“아름님은 다 좋은데 왜 본인 의견을 내지도 않고 언제나 네네 해요?”
말문이 턱 막혔어요. 언제나 네네 하지는 않던 것 같은데, 소소하게 거절도 했는데… 그래도 대표님이나 상무님의 이야기면 따르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머리가 띵했어요. 네네만 하면 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일하는 의견 없는 사람이 되더라고요. 제가 생각했던 좋게 좋게가 누군가에게는 밍숭맹숭이 되었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지만 저는 아직도 대표님 말이 마음에 콕 남아있어요. 의식적으로 반문도 하고, 이런 얘기해도 되나 싶은 것도 말해보고, 안 될 것 같은 건 거절도 하고 눈 딱 감고 한 번만을 하루에도 몇 번씩 했어요. 거절을 잘 못하는 편이었는데 회사 다니면서 조금씩 성격도 바뀌었어요. 그리고 프로젝트 매니징을 할 때가 되니까 네네 하면 정말 바보 될 것 같았어요. 우리 회사의 입장도 클라이언트의 요구도 적당히 거절하고 합의점을 제안하고 정리를 하려면 네네 하면 안 되더라고요.
사실 연차가 조금 쌓여도 저한테 거절 의사를 밝히는 일은 언제나 미션이었어요. 뭐라고 해야 상대방 기분이 안 상하면서 의도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보통은 저는 그렇게 해드리고 싶은데, 아시잖아요… 회사의 입장이… 로 마무리),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해가 안 됐던 일도 회사의 입장에서 이야기할 때도 있었어요. 미션 완료하면 회사 생활 경험치가 조금씩 쌓였죠. 눈치껏 네네도 회사를 다니는데 필요한 능력이지만 아니 아니요를 잘 설득하면서 말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사회인으로 레벨 업하는 것 같아요. 가만히 있다가 가마니가 되어버리면 안 되잖아요. 흐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