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낫프로
일을 할 때 창의력이 간절해지는 때가 있죠. 아… 리스트에 하나만 더 추가하면, 아… 이거 말고 다른 사례가 들어가면 딱인데… 하는 때요. 그럴 때마다 내 머리야 일해봐! 하며 달그락달그락 뇌를 굴려보지만 어쩜 이렇게 아무 생각이 안 나지 할 때요. 난 이제 한계인가 봐, 역시 이 일은 적성에 안 맞네, 근데 이거 안 하면 뭐 먹고살지? 할 때요.
브랜드 네임을 만들고, 스토리를 쓴다고 하면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회사 다니다가 몰래 이직 준비할 때 실무진 면접에서도 들었던 질문이고요. (이직은 실패, 하하하) 아무것도 모르는 꼬꼬마일 때 전임 매니저님이 “그런 건 없어. 여러 기법들이 있긴 하지만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르더라고.” 말할 때 좌절했었어요. 어느덧 시간이 지나 매니저가 되어보니 창의력 난관을 깨부수는 방법을 조금은 알 것 같아 써봤던 방법을 공유해봅니다.
(이름을 만들 때 썼던 방법이라 다른 창의력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나. 많이 아는 만큼 다양하게 만든다.
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다 한다.
셋. 이상한 것도 끼워 넣어 본다.
넷. 아예 다른 분야에서 가져와 믹스해본다.
다섯. 중얼중얼한다.
여섯. 사전을 가까이한다.
일곱. 말맛을 살린다.
여덟. 다른 사람과 이야기한다.
아홉. 스크리닝은 최대한 나중에 한다.
열. 기준을 만든다.
하나. 많이 아는 만큼 다양하게 만든다.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인다고 하잖아요. 무언가를 만들 때 이만큼 뼈저리게 적용되는 말이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레퍼런스와 리서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새로운 브랜드와 공간이 만들어지면 가보고 느끼는 것도 생각의 그릇을 넓히기 위한 작업이잖아요. 생각의 그물을 최대한 크게 짜 놔야 건져 올릴 수 있는 월척 아이디어가 늘어나는 것 같아요. 세상에 관심을 쫑긋 기울이고 언젠가 써먹을 때를 기다리는 거죠.
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다 한다.
이름을 만들다 보면 비슷한 생각에서 맴돌 때가 있어요. 콘셉트를 정했으니 이런 톤 앤 매너의 이름일 것이다 어렴풋이 생각하며 발상을 하는데 같은 자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거죠. 정답이라고 정해놓은 것만 찾아가니까 길은 좁아지고 숨쉬기가 어려워요. 좁아터진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식적으로 생각의 핸들을 돌려 스펙트럼을 넓혀야 해요.
한글 이름을 계속 만들었다면 영어로 아니면 기호나 숫자를 활용해요. 긴 이름이었다면 짧게 한 단어로, 합성어가 많다면 자연어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이름이 많다면 상징물을 이용하는 거죠. 클라이언트가 보기에도 비슷한 이름들만 있다면 결정하기가 힘들어요. 다른 건 없나요? 반문해요. 이름을 만들 때는 보통 직관적, 연상적, 상징적으로 스케일을 나누는데 이 스케일도 한 종류일 뿐 프로젝트에 맞춰 다양한 스케일을 적용할 수 있어요.
셋. 이상한 것도 끼워 넣어 본다.
스케일을 최대한 넓혀도 멀쩡한 아이디어들 위주로 도출이 될 거예요. 일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내부 회의용이라면 이상한 거 하나씩 끼워 넣어봤어요. 보통은 심각한 회의에 잠깐 웃는 용도로 쓰이는 이름이었지만 다른 접근으로 하나씩 살아남을 때가 있었거든요. 운이 좋다면 새로운 이름으로 탄생되거나요! 혼자 발상할 때는 일 같은 딴짓으로 잠깐 머리를 식히는 거죠.
넷. 아예 다른 분야에서 가져와 믹스해본다.
그런데도 안 될 때 아예 다른 분야를 가져와서 믹스하는 거예요. 화장품 브랜드 네임을 개발하는데 건축 관련 기사나 잡지를 보는 식이죠. 그 분야에서만 쓰이는 전문용어, 본문에 쓰인 생경한 단어들이 생각의 정체를 풀어주는 단초가 될 수 있어요. 너무 달라 안 맞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미 생각이 막혔으니 어떻게든 뻥 뚫어주는 실마리가 필요해서 뭐라도 붙잡아 보는 거예요. 타율을 높이고 싶다면 프로젝트 분야 + 연관 분야를 구글링 해 단어나 생각들을 낚을 때도 있었어요.
다섯. 중얼중얼한다.
누군가가 불러줄 때 의미를 갖는 게 이름이잖아요. 단어가 이름으로 바뀌는 순간에는 계속 중얼중얼한 것 같아요. 스토리를 쓸 때도 입으로 뱉어보면서 문장이 연결이 되는지 확인했고요. 이제 막 이름이 된 단어들은 나조차도 생경해서 계속 불러봐야 해요. 불러보면 확신과 탈락의 기로에서 대차게 결정을 내릴 수 있거든요.
여섯과 일곱. 사전을 가까이한다. / 말맛을 살린다.
이 일을 좋아했던 이유 중에는 사전을 가까이한다, 연필을 많이 쓸 수 있다는 사소한 이유도 있었어요. 즐겨찾기에 국어, 영어, 영영 혹은 다른 언어 사전을 끼고 언어의 숲에서 쓸 적절한 땔깜을 구했어요. 사전은 말맛을 살릴 수 있는 좋은 부스트업 재료예요. 콘셉트 단어를 낚을 때도 좋고요. 특정 스펠링으로 시작하는 단어나 대구를 이루는 발음을 찾을 때 유용하죠.
단어를 캐다가 뜻에 자신이 없을 때 영어사전이나 영영사전을 찾기도 하고요. 이국적인 북유럽 언어를 활용해서 이름을 만들기도 했답니다. 다만 요즘은 자연어를 기반으로 직관적으로 뜻이 이해되는 이름을 선호하는 추세라 이전에 비해 사용빈도는 줄었어요. 저는 비슷한 발음의 단어로으로 말맛을 살리는 걸 좋아해서 사전 덕을 꽤 봤어요. 아니면 짧은 한 단어를 선택해 각 철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식으로 이름을 만들기도 하고요. 트렌드 코리아에서 자주 하는 기법처럼 말이에요.
여덟. 다른 사람과 이야기한다.
회의 전에도 생각나는 아이디어나 이름을 팀원에게 계속 묻곤 했어요. 자신이 없을 때 확인하거나, 좋은 안인 것 같을 때 같이 즐거워하는 용도로요. 단어는 좋은데 의미를 못 붙이겠으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빌려 완성하는 거죠. 창의력을 샘솟게 하는 집단지성! 회의 때 너와 나의 이름이 합쳐져 숨통이 트이는 멋진 이름이 탄생하거나 그동안 거론되지 않았던 개념이 만들어지기도 하죠. 혼자 아이디어를 빌드업하기 벅찰 때 다른 사람에게 기대 보거나 집단지성의 위대함을 믿어본답니다.
아홉. 스크리닝은 최대한 나중에 한다.
무언가 만든다면 일단 앞으로 쭉쭉 나가봅니다. 하나 하고 브레이크, 하나 하고 별로니까 삭제하는 방법은 속도도 안 나고 재미도 떨어뜨려요. 마이크로 하게 자기 검열하다가 좋은 아이디어들도 사라질 수 있으니 스크리닝은 최대한 나중에 하기를 추천드려요. 오히려 안 좋다고 생각하는 아이디어 두 개가 합쳐져서 괜찮은 하나가 될 수도 있어요. 숲이 울창해지려면 나무가 일단 많고 쑥쑥 자라야 하니까 미리부터 싹을 자르지는 말자고요.
열. 기준을 만든다.
이 모든 일이 의미를 가지려면 기준이 필요합니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무엇이 모자란 지 길을 잃을 때 잡아주는 나침반이 있어야 해요. “왜 이렇게 만든 거죠?” 물어봤을 때 “이런 기준이 있었어요!” 하는 근거도 되고요. 정해진 콘셉트를 나는 이렇게 해석했고, 그래서 이런 이름이나 스토리가 나왔다 하는 설득의 틀이 됩니다. 많은 가지 중 하나를 추릴 수 있는 몸통이 기준이에요. 일의 시작할 때 그리고 마무리는 기준 점검이에요.
쓰다 보니 길어졌지만 창의력을 샘솟게 하려면 일단 많이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열 가지 과정 모두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결과를 맺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파밧! 아이디어가 나오는 순간은 없더라고요. 일상에 집중하더라도 포커싱 한 주제가 머리에서 무의식적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좋은 아이디어나 이름이 나왔어요. 샤워할 때 문득 하는 식으로요. 부지런히 머리를 움직여야 창의력도 쑥쑥! 마법사도 연습을 해야 진정한 마법을 하는 것처럼 창의력도 의식적으로 머리를 굴리다 보면 얍! 하고 발휘될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