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부여

글쓰기는 의미부여다.

by 띤떵훈



나에게 글쓰기는 의미부여다. 일상, 사물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훈련이 글쓰기다. 매일 에세이를 쓰며 느끼는 것은, 소재가 한정적이라는 사실이다. 일기가 아닌, 에세이를, 그것도 매일 쓰기 위해선 의미부여가 필요하다. 컵에 콜라를 따르면서, 일과가 끝나고 양말을 벗으면서, 트름을 하면서, 방구를 끼면서 인생의 어떤 부분을 담아내야 한다. 친구가 지나가는 말로, '날씨 개춥다.' 라고 하면, 여기에서도 글감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의미부여를 잘하는 사람이다. 몇몇 고수의 글을 보면 핵심을 찌르는 행간이 있다. 의미부여는 뼈다귀 하나에 살을 붙혀서 형태를 만드는 일이다. 어떤 동물의 뼈가 될 지는 글쓰는 사람 손에 달린 것이다. 이 연습을 꾸준히 한 사람은, 반대로 붙어 있는 살 속에 어떤 뼈가 있는지 알 수 있다. 그게 독해력이고, 행간을 읽는다는 행위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성장하면 앞서 말한 고수가 된다. 하고 싶은 말을 행간에 숨겨 옮기는 사람이다.

일기를 자주 쓰는 편이었는데, 투자한 시간에 비해 문장력이 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일기는 그 날 있었던 사실과 감정의 나열이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의미부여, 일상적 사건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지 그랬니라고 질타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럴 여력도, 의욕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그런 연습을 해볼까 한다. 아직 능력이 부족해, 능숙하게 작은 소재를 큰 이야기로 확대할 수 없다. 몇 문단 분량의 에세이를 쓰려면, 큰 주제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사랑, 연애, 봄 등. 대분류 안에 소분류가 많아서 소분류를 깊게 파지 않아도 분량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예를 들어 보겠다. 논문 형식을 빌려 쓰면 보기 쉬울 것이다.

사랑
1. 사랑의 정의
2. 인간의 사랑
1]가족의 사랑
1)어머니의 사랑
2)아버지의 사랑
3)친척의 사랑
2] 친구간의 사랑
1)초등학교 친구
2)중학교 친구
3)사회 친구
3] 대중매체 속의 사랑
1)드라마 속 사랑
2)코미디 속 사랑
3)뉴스 속 사랑
3. 자연의 사랑
4. 동물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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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457] 긴 코 사슴 벌레의 사랑
109. 신의 사랑
1]기독교 신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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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63 무슨무슨교 창조신의 3834번째 아들, 무슨무슨신의 사랑

이렇게 끝이 없다. 그러니 구성에 대해 설명하는 것 만으로도 작은 에세이를 만들 수 있다. 당연히 깊게 파고들 필요도 없고, 간단하게 소재를 가져올 수 있다. 구글에 '사랑'이란 단어를 각 나라 말로 치면 몇 억개의 결과가 나올 터이다. 반대로 [콜라를 따르며 깨달은 사촌 누나의 사랑] 이란 소재를 쓰려면, 순전히 나의 이성과 경험에 의지해야 한다. 구글도 네이버도 이번엔 도울 수 없다. 어떤 형태로 만들 것인가, 어떤 인문학 지식을 도구로 쓸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순전히 자기 몫이다. 글쓰기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라고 하지만, 그 통념에 반대 표를 던진다. 많은 사람들에게 글쓰기는 무를 가장한 유에서 유를 뽑아내는 행위이다. 특히 요즘처럼 인터넷에 자료가 널린 시대에는 더 그렇다. 적당히 자료 찾고, 조합하는 걸로 글을 쓰는 것이다. 의미 부여의 경우 진정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의미부여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그 것 뿐만이 아니다. 작업을 하며 찾아낸 의미는 그 자체로도 값지다. 목적을 갖고 수단으로써 쓴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부산물이 생긴다. 세상을 더 넓게 보는 시야이다. 어찌보면 억지 기부와 궤를 같이 한다. 사회적 명망을 얻기 위한 '억지' 활동이지만, 결국 누군가는 그로 인해 도움을 받는다. 글쓰기 실력 향상을 위한 억지 활동인 의미부여는, 결국 인격과 생각의 확장을 불러 온다.

옷 취향에서 나의 성격과 역사를 알아보고자 했던 에세이를 글쓰기 동호회 '파운틴' 게시판에 올렸다. 며칠 동안 댓글 몇 개가 달렸다. 그중 한 파운틴 회원이 아무 것도 아닌 건데, 너무 의미부여한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 말이 맞다. 내가 에세이를 쓰는 이유는 의미부여를 위함이다. 글을 쓰다 보면, 핵심을 단번에 잡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분명히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는데, 그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여러 문장을 덕지덕지 붙힌다. 그러다 누군가가 명쾌하게 한 문장을 세상 밖으로 꺼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내게 파운틴 회원의 '의미부여를 한다'는 말이, 그토록 찾았던 한 문장이었다. 나는 매번 글을 쓰며,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문장이다. 이 사건을 글로 남겨야 해. '의미부여'란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나의 에세이야. 블로그를 켜서 의미부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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